불완전-완전

 

Y A G I

 

 

겁쟁이

 

  요모 렌지는 눈을 떴다. 달빛이 은은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공사 중인 건물의 휑한 벽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토지 권리문제로 싸우다가 결국엔 건설이 무기한으로 연장된 건물. 그곳이 그가 거주하는 곳이었다.

  물론 지내기는 폐가 쪽이 훨씬 좋았지만, 겁 없는 인간들 덕분에 그런 곳에서 잠을 잤다간 엄한 소문이 돌기 십상이었다. 차라리 이런, 누가 봐도 괴담 같은 것은 없어 보이는 공간에서 지내는 것이 나았다.

  미미한 허기가 느껴졌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허기. 요모는 멍하니 달빛을 바라보았다.

  그는 밤의 지배자이자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순혈 흡혈귀였다.

  인간의 피를 마시고,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기이할 정도의 수명에 날카로운 송곳니. 또 뭐가 있더라. 은탄환이나 심장에 대못을 박아 넣으면 죽는, 아니, 그 이전에 그저 태양 아래에만 나가도 소실되는 덧없는 생명체.

  하지만 핏줄에 내재한 두려움 때문에 그 한 걸음을 걸어나가지 못하는 겁쟁이.

  그것이 요모 렌지였다.

  순혈 흡혈귀의 고귀함. 그런 것들은 기억도 못 할 과거에 스러졌다. 본래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지만, 모두가 그렇게 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죄의식이 드는 것일까.

  요모의 어린 시절엔 자택 지하에서 인간을 키우기도 했었다. 그때는 요모가 아직 흡혈귀로서의 정체성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본디 엄했던 그의 가정에서는 곧잘 요모에게 지하에서 인간의 아이를 조달해 오기를 시켰다. 요모는 그날의 첫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지하에서 눈이 멀어가는 인간들. 제 핏덩이 하나 지키겠다고 자신을 버리는 여인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요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아이만은, 아이만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사람들. 그때 요모는 제 품속의 작은 생명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다. 콩닥콩닥, 주먹만 한 심장이 바쁘게 뛰며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다.

  요모가 하는 일은, 요모의 일족이 하는 일은 그 생명에 송곳니를 박아넣어 그것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요모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하지만 흡혈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몸. 요모는 때때로 아이를 먹었고, 연인 중 한쪽을 먹었고, 형제를 갈라놓았다. 빼앗는 것이 요모의 삶이었다. 그가 흡혈귀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주지 않은 권능을 손에 쥔 일족이기 때문에.

  그러나 인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화했고 흡혈귀의 권능을 없애는 법을 알아내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살아온 흡혈귀에게 변화란 없었고 때문에, 순혈 흡혈귀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인간과 피를 섞던가, 죽음을 맞이하던가.

  대부분의 흡혈귀는 죽음을 맞이했다. 어쩌면 다들 영생이란 것에 지긋지긋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언젠가의 요모는 생각했다.

  여하튼, 그리하여 남은 순혈 흡혈귀는 이제 요모 렌지 하나뿐이었다. 자신을 저주하는, 저주받은 종족.

  요모 렌지는 자신의 대에 순혈 흡혈귀의 핏줄을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 신청자분의 요청에 따라 장르와 이름을 미공개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S는 자리에 앉아 J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는 J의 표정에서 많은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슬픔. 고통. 애원. 부정. 연정.

  연정.

  “인사는 하지 않을게요, S.”

  S는 그저 J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J의 삶을 저지하거나 교정할 권리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긴 했지만, 그 상대가 J이기 때문에 그는 더욱 J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아끼고 싶었다. 자신으로 인해 의무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성장이라면 S 본인도 하지 못한 것이기도 했지만.

  S의 예민한 귀가 습관적으로 낯선 소리를 잡아내었다. 타닥타닥하고 무언가 장작 같은 것이 타오르는 소리였다. 소리는 J가 향한 안쪽 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점점 더 커지는 소리.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새카만 연기가 식기 상점의 천장을 얼룩처럼 덮어갔다. S는 매캐한 열기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식기 상점을 다시 열었을 때가 생각난다. J는 그것을 S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반짝이는 것을, 가장 반짝일 때, 가장 반짝이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J는 말했다. S는 그날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아래에서 따스한 햇볕과 그를 반사하는 수많은 은 식기들이 보였다. 제각각 다른 각도로 빛을 반사하는 탓에 그곳은 식기 상점이라기보다는 보석상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정교하게 그려진 접시의 그림들은 생명을 가지고 있어 곧 그 안에서 일렁일 것만 같았고 장식장에 나란히 정렬된 스푼과 포크, 나이프는 마치 천상의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SJ를 바라보았다. JS의 표정 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데에는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감상도 가지지 않을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J가 알고 있는 S라면 그러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J가 본 S란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 눈에야 철저하고 사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J가 보기에 그는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JS가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에.

  S는 눈을 떴다. 화마는 가까이까지 와있었다. 상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불길을 바라보았다. S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식기 상점의 문을 열었다. 문 위에 달린 차임벨이 나지막한 소리를 냈다.

  S 역시 마지막 인사 없이 식기 상점을 떠났다.

 

  건물은 입구 부근을 제외하곤 완전히 불에 타 있었다. 남아있던 몇 안 되는 은 식기들은 녹아내려 제 형체와 빛깔을 유지하지 못했다. S는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고 까맣게 불에 타 내려앉은 서까래를 발로 툭 건드렸다. 서까래 겉면에 묻어있던 잿더미가 작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완전히 까맣게 탔어. 신원을 파악하기엔 힘들 것 같은데.”

  안쪽에서 L 경감이 나오며 말했다. 그는 장갑을 벗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아하니 그 꼴이 엉망인듯했다. 소사체란 그런 법이지. S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안쪽 방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했다.

  그 소사체는 J일 것이기에.

  S는 사실 그의 그런 마지막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보아야만 했다. 그것이 J이기 때문에, 그 마지막을 자신이 보아야 했다. J라면 그러길 원했을 것이라고, S는 생각했다.

  검게 눌어붙은 피부. 일부분은 흰 뼈가 보였다. 그 뻘건 불의 시작 지점에서 J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S는 잿더미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블랙 오팔이었다.

  마치 불을 품기라도 한 듯 붉은빛을 감추고 있는 까만 오팔. S는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주머니에 챙겼다.

  “맞습니다. J.”

  “어떻게 그걸 알지?”

  “어제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거든요.”

  “S!”

  SL의 핀잔은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어느덧 겨울이었다. 며칠 기다리면 또 함박눈이 펑펑 떨어지겠지. S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 외곽까지 나서는 일은 그에게 이젠 습관과도 같은 일이었다. W는 항상 잔소리했지만 그걸 들은 S는 아니었다. W도 그걸 알면서도 잔소리를 하는 것이니, , 쌤쌤일까.

  S는 마차에서 내린 후 옷을 툭툭 털어 정돈했다. 이제는 겨울 코트를 벗을 계절이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시간은 정말로, 빨랐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가 곧 기억의 풍화는 아니었기에, S는 여전히 이 빵집에 다니고 있었다. J가 생전에 일했던 그 빵집. 집에서 멀리 있는 데다가 그다지 맛있는 빵을 팔지도 않고, 그렇다고 종류가 다양하지도 않지만, 언젠가 J가 일했던 바로 그 빵집. S는 오늘도 익숙하게 문을 당겨 열었다.

 

 

/약 5,000자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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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 12:00 AM [나페스]  (0) 2020.08.24

혈연

 

Y A G I

 

 

15

 

  “저기, 토오루.”

  “?”

  사사키가 토오루에게 말을 건 것은 그들이 감금된 지 약 3일가량 되었을 때였다. 물론 그것은 사사키 하이세가 식사의 주기로 판단한 정보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보다 더 오래 이곳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가가 아니라, 무츠키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였다.

  사사키에 비해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식사. 무츠키는 그런 식사를 손도 쓰지 못한 채 엎드려서 힘겹게 식사를 해야 했다.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르면 무츠키의 몸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질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사사키는 조금 초조했다.

  생각해놓은 방안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과연 얼마나 통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사사키는 입을 열었다.

  “사실은, 무츠키가 좀, 신경 쓰여서.”

  토오루는 무표정하게 무츠키를 바라보았다. 그는 사사키가 무츠키에 대해 얘기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그런 행동을 보였다.

  뭐가 신경 쓰이는데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사사키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사사키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양 말을 이어갔다.

  “더 진한 걸 하고 싶어도, 맘 편하게 못 하잖아.”

  “더 진한 거요?”

  “. 더 진한 거.”

  토오루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아이, 정말.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토오루는 부끄럽다는 듯이, 그리고 기쁘다는 듯이 사사키에게 말했다.

  “정말, 하이세 오빠는, 정말.”

  가볍게 사사키의 어깨를 때린 토오루는 곧 무츠키에게 향했다. 토오루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츠키의 머리채를 붙잡아 그를 일으켰다. 무츠키는 반항은커녕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무츠키의 숨결은 곧 끊어질 것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무츠키 언니,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어요.”

  “그냥 풀어줘. 이 집에 토오루랑 단둘이서만 있고 싶거든. 처음은, 이런 지하실보다 적어도 침대 위에서 하고 싶어.”

  그 말에 토오루는 사사키를 보았다. 얼굴은 완전히 달아오른 채였다. 토오루가 생각했던 더 진한 것이 맞았다. 지금까지 하이세를 돌보고, 사랑한다 말하고, 입 맞추고, 껴안았던 것이 이렇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이세 오빠를 이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 생각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무츠키 언니만 여기 가두면 되잖아요. 그럼 방해도 안 되고.”

  “아무리 그래도 무츠키는 내 후배야. 후배에게 성적인 행위를 알게 하는 건, 아무리 내가 남자라지만…… 부끄러운 일인걸. 우리 집 방음 잘 안 되는 거, 토오루도 잘 알고 있잖아?”

  거기다가 그렇게 되면 우리 둘만의 관계가 되는 게 아니잖아. 안 그래?

  사사키의 말에 무츠키는 마치 그의 말 속으로 퐁당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토오루는 거침없이 무츠키의 결박을 끊고, 그를 문 쪽으로 밀쳤다. 무츠키는 힘없이 밀려나 바닥에 쓰러졌다.

  “그래서 더 진한 게, 뭐예요 오빠?”

  토오루가 사사키의 무릎에 올라타 앉으며 말했다. 사사키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그 뒤의 무츠키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쓰러져 있는 무츠키. 설마 도망갈 기운조차 없는 걸까. 토오루는 사사키의 뺨과 턱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눈 감아봐.”

  사사키의 말에 토오루는 눈을 감았고, 두 사람은 입을 맞췄다.

  농염한 밀도의 타액이 서로 섞였다. 사사키는 눈을 감고 있는 토오루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는 진심이다. 하지만 모든 진심이 옳은 것은 아니었다.

  나를 희생해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사사키는 눈을 감았다. 무츠키가 몸을 일으킬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토오루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곧 토오루의 입술이 떨어졌다.

  “……무츠키.”

  “사사키 선배.”

  그곳에는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무츠키가 있었다. 무츠키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있었다. 무츠키는 힘없이 팔을 늘어뜨렸고, 망치가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커다란 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쓰러진 토오루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사키는 무츠키의 손을 잡아 그를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무츠키는 그 손을 밀어내고 다시 망치를 잡았다.

  둔탁한 소리가 몇 차례나 이어졌다. 사사키는 충분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은 무츠키에게 충분한 것이란 없을 터였으니.

 

  “괜찮아?”

  사사키는 아직도 떨리고 있는 무츠키의 어깨를 조심스레 안았다. 경찰이 곧 두 사람에게서 진술을 들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무츠키가 괜찮아지길 바라며, 사사키는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주었다.

  “……선배는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요.”

  “무츠키야말로.”

  무츠키의 떨림이 점점 더 엷어지고 있었다. 무츠키는 사사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두 사람의 악몽은 이걸로 끝인듯했다.

 

 

16

 

  “토오루!”

  “, 선배!”

  무츠키는 약간 목소리를 높여 사사키의 부름에 응했다. 그 사건 이후, 무츠키가 이사를 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제법 간만에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워낙에 큰 사건이라 어딜 가나 무츠키를 알아보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 끔찍한 기억이 있는 마을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무츠키에겐 큰 도움이었다.

  “미안해, 기다리게 했네.”

  “아녜요. 제가 일찍 나온 건데요.”

  일찍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간만에 사사키를 만나는 날이었으니까. 무츠키는 그날 이후로 사사키에게 묘한 연정을 품고 있었다. 사지를 헤쳐나온 동지애와는 어딘가 다른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K군을 짝사랑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달랐다.

  무츠키는 이런 것이 정말로 사랑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사사키가 무츠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서로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기로 약속했고, 또 그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보면 사사키도 무츠키에게 아주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토오루는 요즘 어때? 괜찮아? 나보다 더 힘든 일을 많이 겪었잖아.”

  “가끔 악몽 꾸는 것 빼고는 괜찮아요. 선배가 곁에 있어 주니까요.”

  “믿음직스럽게 여겨줘서 고맙네.”

  사사키의 말에 무츠키는 싱긋 웃었다. 두 사람은 거리를 걸었다. 벌써 졸업식 시즌이었다. 사사키는 대학에 진학한다고 했고 그 대학은 마침, 무츠키가 이사를 간 지역과 아주 가까이 있었다.

  “그나저나 머리는…….”

  “.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 같아요.”

  무츠키는 곤란한 듯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백발이 자라기 시작했다. 마치, ‘무츠키 토오루처럼. 지금은 원래의 머리카락 색보다 흰 머리가 훨씬 더 많았다. 사건의 후유증이 이런 것이라니, 얄궂은 일이었다.

  “신경 쓰이죠, 아무래도? 염색할까요?”

  “아냐, 괜찮아. 토오루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

  “선배는 역시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무츠키 토오루는 부드럽게 웃었다. 사사키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사키는 자연스럽게 무츠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무츠키 토오루는 그 온기가 너무나도 기뻤다. 이 온기가 오직 내 것이라니. 무츠키 토오루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 녹아버리는 따스함.

  “, 하이세 오빠 맞죠!”

  그때 누군가 사사키를 불렀다.

  사사키는 몸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하이세 오빠라니. 무츠키의 관심 역시 사사키의 시선을 따랐다. 그곳에는 낯선 여성이 있었다. 사사키는 반갑게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 오랜만이야.”

  “오빠, 잘 지냈어요?”

  “. 그럭저럭. , 이쪽은 무츠키 토오루. 학교 후배야.”

  여자는 무츠키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츠키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곧이어 다시 사사키에게로 시선을 돌린 여자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여자친구가 아니라요?”

  “아니야, 그런 거.”

  어째서 그 사실이 이렇게 서글플까. 무츠키는 계속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 오빠 좋아했던 거 알죠? 저 아직도 좋아한다구요.”

  “그런 말은 됐어.”

  “진심인데. 각오하라고요, 오빠! 제가 대학만 가면 아주 그냥.”

  여자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고, 사사키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고 있었다. 무츠키는 이 상황이 퍽 싫었다. 질투가 났다. 그런 말 같은 걸, 다른 사람이 하게 두는 사사키가 미웠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 여자가 미웠다.

  “아는 사람이에요?”

  “. 교외 활동하다가 알게 됐어. 간만에 보네.”

  “……. 혹시, 저 사람 이름은 뭐예요?”

  무츠키는 사사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것은,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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