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신 우타X청소년 요모

 

 

 

 

Y A G I

 

 

신사는 요모의 생각보다 훨씬 더 작았다. 그러고 보니 요모는 그 신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다. 모두들 그 신이 힘을 가지게 될까 봐 두려워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다. 그저 다들 악신이라고만 불렀던 그 신의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요모는 자신이 죽기 전에 그 이름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신에게 먹히기 직전에 그의 이름을 물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요모는 신발을 벗고 본당으로 들어섰다. 본당 역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그 공기는 싸늘했다. 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작 며칠 전에 자기 이전의 아이가 그 악신에게 먹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발바닥이 시려서 요모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상태로 본당을 한 바퀴 둘러 본 요모가 발견한 것은 지금까지 지냈던 아이들의 이름이었다.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색이 바래있는 숨기고 싶은 비밀이 담긴 목록. 요모는 자신의 바로 앞 아이의 이름을 읽어보려 했지만 요모는 그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읽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알아서 뭐하겠어.

요모는 악신의 뱃속에 들어가서나 물어보자고 생각하면서, 이름 모를 아이의 이름 아래 자신의 이름 네 자를 써넣으려 했다.

안녕.”

요모는 펜을 그대로 들고 낯선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본당의 입구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는 맨발로 본당으로 올라와 요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비록 자신 또래이긴 하지만 그래도 낯선 존재의 등장에 요모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설마 여기에 자신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존재할 줄이야.

잔뜩 긴장한 요모와는 달리 그는 몸을 기울여 요모의 어깨너머로 그가 들고 있는 종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요모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무릎을 굽혀 앉은 채 그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요란한 차림이라고, 요모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온갖 피어싱에 흐트러진 옷매무새. 도저히 신사 같은 곳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신지, 하고 하나의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

신지. 마지막에 적혀 있는 이름.”

, 하고 요모는 다시 그 한자를 바라보았다. 신지라고 읽는구나. 생각보다 빠르게 그 이름을 알게 된 요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름을 알려준 남자는 빙긋 웃어 보였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려져 잠시 사라졌다.

거기 이름 적을 거야?”

적어야 하는 거 아닌가?”

거기 이름 적은 애들은 다 죽었어.”

요모는 그 말에 어떤 오싹함을 느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젠 눈앞에 실재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 남자의 분위기 때문일까. 요모는 펜을 조금 더 꽉 쥐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죽으러 온 곳이니까. 요모가 그 말을 하기 전에 남자는 요모가 펜을 잡고 있는 손목을 붙잡았다. 가느다란 팔에 어울리지 않는 힘이었다. 요모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아주 짧은 순간 마주쳤다.

그러지 말고. 일단은 나랑 놀자. , 심심해.”

요모는 얼떨결에 남자의 손에 이끌려 다시 본당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여름 햇볕이 따갑게 두 사람의 얼굴로 쏟아졌다. 우타는 자신이 좋아하는 곳이 있다며, 요모를 큼직한 나무 아래의 그늘로 데려갔다.

나는, 우타야.”

우타. 요모는 속으로 그 이름을 되뇌었다. 우타라니. 이상한 이름이었다. 우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요모를 빤히 바라보았다. 요모는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져서 조금 주저하다 이름을 말했다.

렌지.”

그냥 렌지야?”

요모 렌지.”

렌지라고 불러도 되지?”

요모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요모는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믿기지 않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저 좁은 계단 아래에 두고 온 줄만 알았는데.

여기엔어떻게 있는 거야?”

요모의 질문에 우타는 길게 음, 소리를 내더니 제법 명쾌한 목소리로 답을 내렸다.

갈 곳이 없어서. 몰래 사는 중이야. 매일 여기저기를 떠돌 수는 없잖아.”

여기는 악신이 사는 곳이래.”

알고 있어.”

우타의 붉은 눈동자가 선뜩하게 빛났다. 요모는 잠시 그가 이 신사에 산다는 악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카로운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요모가 본 것이 자신의 불안에 기인한 환각이라고 말하는 듯이.

매년 네 또래의 애들이 와서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

우타의 그 말이 어쩐지 무겁게 느껴져서 요모는 우타를 빤히 바라보았다. 말하는 내용과는 달리 우타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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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소재가 있음  #악신 우타X청소년 요모

 

 

 

여름

; 내가 죽을 자리

 

Y A G I

 

 

    요모 렌지의 세계의 시작은 여름이었다. 해바라기가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매미가 소란스레 날개를 떨고 있을 때 그의 세계는 시작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에 별 이유는 없었다. 그가 태어난 날이 여름이었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그의 최초의 기억이 여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세계의 끝 역시 여름이 될 예정이었다.

    요모 렌지는 새하얀 옷을 입은 채 깔끔하게 정돈된 산길을 걸었다. 요모의 전임자는 이런 일을 꼼꼼히 하는 성향의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것에 매달리지 않으면 자신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요모 렌지는 자신은 어느 쪽의 인간일지 생각하다가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아예 지워버렸다. 굳이 따지자면 전자에 가깝겠지만, 그는 청소를 아주 꼼꼼히 하는 것에 별 재능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냥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는 계단을 올라가며 지금까지의 삶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었다. 그걸 위한 계단이었고, 요모는 그것에 굳이 반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의지도 없었다. 어차피 지금까지 자신의 삶은 오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으니까.

    요모는 계단을 올랐다.

    최초의 기억은 죽음이었다. 살아남은 자만이 기억할 수 있는 바로 그 죽음이었다. 태양이 따갑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모든 것은 선명한 빛에 감싸여 천천히 데워지고 있었고 그것은 자신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 바쁜 계절이었다. 해바라기가 태양이 아닌 요모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는 그 해바라기와 시선을 마주쳤다. 물론 해바라기가 그 상황에 대해서 어떤 답을 내려줄 수는 없었다.

    요모 렌지는 그 길로 집을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눈을 꼭 감고 모른 척 넘어가려 애썼다. 요모는 여기저기를 떠돌며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을 찾았다. 그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날의 해바라기가 요모 자신을 너무 뚫어져라 바라보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요모는 그 여름날에 삶을 묶어둔 채 살아왔다. 요모를 이 시골 마을까지 이끌어온 것도 그 죽음이었다. 더는 잃어버릴 것도 없는 사람이 정착하게 되는 마지막 공간.

요모는 계단을 한 칸 더 올랐다.

이 마을에는 마을을 다스리는 악신이 있다고 했다. 매년 열일곱 살의 아이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마을에 끔찍한 병이 돈다고 했던가. 마을 사람들도 제각각 다르게 기억하는 언젠가, 제물을 바치지 않았더니 마을 사람의 반이 죽어 나갔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잡아먹어 버릴 것 같은 그 악신을 숨기려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얼마 남지 않는 사람마저 모두 다 죽어 사라질지도 몰랐으니까. 마을 사람들은 항상 죽음의 공포를 눈앞에 두고 매년 눈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 죽음으로부터 태어난 요모가 나타났다. 만약에 요모가 성년이 된 이후에 그 마을을 찾았다면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모는 고작 열여섯 살이었고,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를 마을에 받아들였다. 물론 일 년 후에 악신에게 산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자기네를 지키기 위한, 한없이 이기적인 이유였지만 요모는 그에 그다지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죽을 자리로는 나쁘지 않아 보이는 곳이었으니까.

요모는 계단을 또 한 칸 올랐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진녹색 향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요모의 발밑에서 이끼와 키가 작은 풀들이 짓이겨지고 있었다. 죽음으로 시작된 삶이었으니 죽음으로 끝나도 불만을 가지지는 않으리라. 요모의 짧은 생각이었다.

요모는 마지막 계단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요모는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 제물로서 악신을 일 년 동안 모시다가 그 악신에게 잡아먹힐, 살아있으나 죽은 상태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요모는 서슴없이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어차피 원래 자신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는 상태였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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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형성의 감각들

 

   너와 나는 종종 몸을 섞었다. 나는 땀에 젖은 너의 몸에 입을 맞췄다. 그러는 동안 너는 왼쪽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은 너무 심하게 해버렸을지도. 나는 너의 온몸에 새겨진 흉터들을 손끝으로 매만진다. 나의 동족들이 만들어낸 너의 흉터들. 나는 그 흉터 하나하나에 입을 맞춘다. 그러면 너는 애타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이리 와. 안아 줘.

   예전부터 너는 유난히 섹스를 할 때나 섹스가 끝났을 때 사람의 품을 찾았다. 이제는 굳이 그런 때가 아니더라도 추위를 핑계로 대고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곤 했지만. 너는 아직도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 위해 내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나는 그런 너의 머리를, 어깨를 등을, 차례대로 쓰다듬었다. 좋은 감촉이었다. 어쩌면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인지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었지만.

   나는 문득 너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너의 젖은 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너의 귀 뒤로 넘기며 나는 너의 얼굴을 찾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너는 더욱 더 내 품속을 파고들었다. 마치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루.

   나는 너의 이름을 불렀다. 평소라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볼 너는 지금 응, 하고 약간 웅얼거리는 목소리만 낼 뿐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무 일도 없었어.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아무 일도 없어서, 이러는 거야.

   그제야 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너의 자색 눈동자가 흐려져 있었다. 나는 너의 눈꺼풀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너는 마치 키스를 하면 잠에서 깨어난다는 어느 동화의 공주님인 양. 하지만 너는 이루였다. 그런 공주가 아니라, 이루였다.

   오늘도 구울을 구축했어.

   그래서요?

   그냥. 그냥, 그러고 나면 서월이 너를 보는 게 아플 때가 있어.

   그 말을 하고 너는 다시 내 품에 파고 들었다. 내가 알던 평소의 네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사실 이런 너의 모습도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나는 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너는 울음을 터트리거나, 어떤 말을 더 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숨을 쉬며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이루는, 죄책감을 느끼는 건가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

   너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너의 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술을 열었다.  

   그러면요?

   그냥그냥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란 게 있잖아.

   이루는 모든 것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도 사람이야.

   …이런, 어쩌죠. 이루를 더 사랑하게 되어버렸어요.

   그 말에 이루가 짧게 웃었다. 아까보다 훨씬 더 가볍고, 이루다운 웃음이었다.

   그러면 섹스나 한 번 더 할까.

   나쁘지는 않지만, 왜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되는 건가요?

   그 동안은 다른 생각 없이 서월이를 사랑할 수만 있으니까.

   저야 좋지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

   너는 내 어깨를 깨물었다. 구울의 신체에 인간의 치아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너는 종종 내 몸을 깨물곤 했다. 사랑을 갈구하는 너의 습관이었다. 나는 마찬가지로 너의 어깨를 아주 살살 깨물었다.

   너에게선 항상 위험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나는 이 위험성마저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의 스릴 따위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고 나니 이 위험성까지 사랑하게 된 것뿐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너는 모든 것이 확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나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다.

 

 

'404 not found > 서월이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지만 에로 동인이었습니다.  (0) 2018.07.13

#우타요모 #야쿠자 우타X청부업자 요모..... 이나 이 소재는 별로 안 쓰임 #괴담/저주받은 물건 소재

 

다락방의 요모 씨

 

 

 

1. 요모 씨 (3)

 

 

어쨌든, 렌지한테 부탁하고 싶은 건 그 반지 배달이야.”

왜 배달 따위를 굳이 나한테 부탁하는 거지? 이건, 시험인가? , 요즘 집주인들은 하숙인한테 이런 것도 요구하는 모양이지.”

요모는 가볍게 인상을 썼다. 요모는 찝찝한 기분을 억누르기 위해 빠른 속도로 말을 뱉었다.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요모는 자신의 말에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요모는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불쾌할 정도로 미묘한 기분. 요모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생각을 꾹 누르고 나서야 우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정작 우타는 요모의 말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요모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관심조차 없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던 요모에게 그다지 반가운 사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반응하는 대신에 요모 렌지는 자신의 규칙적인 심장 박동을 느꼈다. 요모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건 일이야. 사사로운 감정 같은 것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

요모의 심장은 그의 생각보다 금세 식어갔다. 요모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짧은 숨을 내뱉었다.

……실례했군.”

아냐, . 렌지는 그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하고 즐겁게 보고 있었어.”

눈을 찡긋하며 웃던 우타는 품에서 작은 종이쪽지를 꺼내 건넸다. 어딘가의 노트에서 찢어낸 듯, 잘린 단면이 영 단정하지 못했다. 요모는 우타의 필체로 쓰인 낯선 주소를 바라보았다. 주소만을 보고 당장 떠오르는 곳은 아직 없었다.

거기로 배달, 부탁할게.”

죽음을 부르는 반지라며이런 것을 배달해도 되는 건가?”

. 죽음을 부르기 때문에 이 반지는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지.”

우타의 나긋한 목소리가 요모의 귓가에 감겼다. 아름다움을 위해 죽음마저 받아들이는 사람. 요모는 우타 역시 그런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유형의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모는 우타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고개를 가볍게 기울이며 그런 요모를 잠시 바라보다가 순간 요모의 양 뺨을 붙잡아 끌어당기며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서야 요모는 놀란 눈으로 우타를 바라보았다.

? 뽀뽀, 기다리던 거 아니었어?”

내가 그걸 왜…….”

렌지 내 뽀뽀 좋아하잖아? 아닌가?”

요모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인상을 구길 뿐이었다. 요모는 싫어한다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이 어쩐지 싫었다. 우타는 그런 요모를 보고 후후, 웃어넘길 따름이었다. 요모는 어쩐지 우타에게 자신의 속을 읽힌 것만 같았다.

요모는 이만 가보겠다는 말도 남기지 않고 우타에게서 등을 돌렸을 때였다. , 하고 짧은 탄식을 뱉으며 우타가 요모를 불러 세웠다. 요모는 고개만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이유, 물어봤잖아.”

이유?”

왜 굳이, 청부업자. 그것도 사람 죽이는데 특화된 청부업자 렌지를 고작 반지 심부름에나 써먹느냐는 질문 말이야.”

아까 그렇게 떠벌리는 게 아니었는데. 요모는 자신의 입을 탓했다. 어쨌든 궁금한 부분이긴 했으니, 요모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어제 렌지가 렌지 방에서 상자 가지고 왔었잖아. 그거 보기보다 엄청 무거웠지이.”

우타는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이며 요모의 눈치를 살폈다. 요모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별 신경 안 쓰나. 우타는 목소리를 아주 조금 깔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그 안에는 렌지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물건들이 많았거든. 내가 입수해놓고 나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몰라서 방치한 물건들이.”

엄청나다니, 어느 쪽으로?”

그 반지랑 비슷한 느낌으로?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악질인 것들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

저주받은 물건들 말인가?”

예를 들자면, 옛날 언젠가 사람의 가죽을 산 채로 뜯어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책이라던가. 그런 것들.”

그 정도는그래도 꽤 흔한 얘기지 않아? 그런 것들이 그렇게 악질적인가?”

그렇지. 뜯어낸 것이 자기 가죽이라는 것도 흔한 이야기구.”

요모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이 흔한 얘기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타는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유쾌하게 말할 수 있는가. 요모로서는 그런 우타의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요모 역시, 죽음에 대해 아주 큰 의미를 두며 살아가는 편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이란 죽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죽고 나면 그것으로 끝. 요모는 천국이나 지옥 따위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죽음 이후에만 얻을 수 있는 고요한 침묵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가 해온 수많은 애도는, 그들이 좋은 곳에 가길 원한다기보다는 그들이 전에 없는 적막에 낯설어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그렇기에 요모는 우타의 저런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기야 우타는 따지자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 수 없는 녀석이긴 했지만. 요모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우타는 그런 요모와 눈을 마주치더니, 다시 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쨌든, 손만 대도 저주받을 수 있는 물건들을 렌지는 멀쩡히 들고 내려왔잖아? 간밤에도 별일 없다고 그랬구.”

들고 내려오는 것 정도는누가 해도 괜찮은 거 아닌가?”

그 상자를 거기에 둔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듣고 싶어?”

아니, 아니……. 그건 사양할게.”

그나저나 그쪽이 시험이었다면, 시험이었네. 렌지는 그런 시험을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사과해야겠지? 미안해, 렌지.”

완전히 놀려먹고 있군. 그리고 이 상황은 아마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았다. 요모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다지 우타에게 더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봤자 어차피 자신이 우타를 말로 이길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어쨌든 그는 클라이언트였고, 자신은 청부업자였다. 해야 하는 일이 고작 반지배달일지라도, 그것이 고객이 원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기꺼이 수행해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여전히 그는 저주 따위는 믿지 않았다. 그저 우타가 즐기는 짓궂은 농담이겠거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요모는 반지 케이스를 공중으로 한 번 던졌다가 받았다. 이제는 일을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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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야쿠자 우타X청부업자 요모..... 이나 이 소재는 별로 안 쓰임 #괴담/저주받은 물건 소재

 

 

 

다락방의 요모 씨

 

Y A G I

 

 

1. 요모 씨 (2)

 

 

요모는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이런 가게에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동시에 요모는 우타의 심미안과 자신의 취향은 영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런 마스크를 쓰면 더욱 특정 당하기 쉬운 게 아닌가. 요모는 겉면에 복잡한 패턴이 수놓아진 마스크를 매만지며 생각했다.

, 그거 렌지 취향?”

절대……. 난 좀 더 차분한 게 좋아.”

렌지도 스타일을 좀 바꿔보는 건 어때? 지금도 올블랙이잖아.”

딱히.”

요모는 가면을 제자리에 내려두고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천천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느슨한 옷 속으로 한눈에 파악하기도 힘든 정도의 타투들이 늘어서 있었다. 간밤에 요모가 손끝으로 훑어 내렸던 그 복잡한 문양들이.

우타가 의자 돌리기를 그만두고 몸을 일으키자 덜걱, 하고 의자의 바퀴와 대리석 바닥이 떨어졌다가 붙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우타가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것을 들고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로서는 아직도 우타가 자신에게 어떤 일을 시킬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요모의 일이란 게 그랬다. 어차피 모두 다 누군가를 해하는 일이었다. 적당히 뒷맛이 나쁘거나, 아주 뒷맛이 나쁘거나. 그러고 보니 섹스 파트너와의 관계도 그랬지. 요모와 우타 사이에 단 두어 걸음밖에 남지 않았을 때, 요모는 왜 자신에게는 최악과 차악이라는 결과밖에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간밤에 잠은 잘 잤어?”

그럭저럭.”

무슨 꿈 같은 건 안 꿨고?”

그런 질문을, 대체 왜.”

아아, 다른 게 아니라. 나는 그 방에서 자면 꼭 가위가 눌려서 말이야. 렌지는 그런 일이 없었나, 싶어서 묻는 거지.”

요모는 고개를 저었다. 요모는 언제나 그렇듯이, 꿈조차 없는 어두컴컴한 잠을 잤다. 마치 죽었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자신의 손을 거쳐 갔던 수많은 죽음을 복기하고 있는 것처럼.

부탁하려고 했던 건, 이거.”

우타는 제 손에 있는 것을 요모에게 건넸다. 평범한 반지 케이스였다. 요모는 무심코 케이스의 겉면을 만졌다. 부들부들한 재질의 자주색 천이 엄지 끝에 묘한 감각을 남겼다. 그래서, 이게 뭐?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열어 봐.

우타의 목소리가 나긋했다. 반지 말고 다른 것이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주 정직하게 반지가 들어 있었다. 요모의 손에는 작아도 한참 작아 보이는 반지였다. 반지의 가운데에는 육각형으로 커팅된, 요모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끼손톱 반만 한 파란 보석이 고고하게 올라와 있었다.

아마도 다이아몬드일 사실 요모 렌지가 아는 보석 중에 이런 모양을 가진 보석은, 다이아몬드밖에 없었다.흰 보석들은 마치 꽃받침처럼 반지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코 반지를 들어 올려 가게의 조명에 비춰보았다. 선명하면서도 투명한 푸른색이 백색 형광등 아래에서 기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때?”

예쁘네.”

정말, 렌지는 재미가 없다니까. 조금 더 대단한 반응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거야? 침대에서는 잘만 보여주더니.”

요모는 말없이 인상을 구겼다. 우타에게 딱히 악의를 찾아볼 수 없어서 요모는 더욱 기분이 별로였다. , 하고 숨을 내쉬며 요모는 케이스의 뚜껑을 닫았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지?”

렌지는 귀신이나, 저주이런 것들을 믿는 편이야?”

뜬금없이 들어온 우타의 질문에 요모는 무심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귀신이나 저주.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서, 요모는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그다지 해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나 그런 이야기들을 때로는 무서워했지. 지금 요모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어떤 이유던지, 살아서 요모의 목덜미에 칼날을 겨누는 것들.

죽은 것들을 항상 말이 없었다. 죽음과 같은 침묵, 혹은 죽음 그 자체인 침묵. 따지자면 요모는 그 침묵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딱히.”

그거, 저주받은 반지래.”

우타는그런 걸 믿나?”

안 믿고 싶어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으면 믿게 되는걸.”

우연이겠지.”

요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 손바닥 안의 반지 케이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그 반지를 보았을 때,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 같은 것이 있었던가? 예를 들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집요하게 그림자를 밟아오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때처럼?

딱히. 요모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청부업자로 살아오며 자신의 생명과 관련된 감각만큼은 예민하게 벼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요모는 다시 케이스를 열어보았다. 반지는 여전히 묵묵히 반짝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섯 명.”

?”

우리 친구들다섯 명이 그거 때문에 저기, 천국이나 지옥이나에 가 있단 말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손끝으로 요모의 이마를 꾹 밀려 했으나, 요모는 고개를 뒤로 물려 그 손을 피했다. 우타는 아쉬운 내색도 않고 그저 손끝을 튕겨 딱, 소리를 내는 걸로 만족했다.

그거, 소유한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반지래.”

그 다섯 명은어떻게 해서 죽었지?”

익사. 세 명은 물에서 두 명은 땅에서.”

땅에서?”

그렇대. 재밌지 않아? 땅에서 죽었는데, 익사였던 거.”

요모는 우타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을 바라보았다. 재미있다, . 다른 것보다 요모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그 부분이었다. 어쨌든 자기 밑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인데, 그들의 죽음을 재미있다고 말하는 우타는.

, 어차피 그렇게 안 죽었어도 내 손에 죽었겠지만. 보스의 물건을 건드리는 건, 그런 걸 각오하지 않고서야 못하는 거잖아?”

보스.”

? 렌지도 알고 있었잖아. 내가 렌지를 알고 있던 것처럼.”

소문에는 실체가 없는 법이야, 요모 렌지. 우타는 양팔로 요모의 목을 가볍게 껴안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역시 처음부터 알고 접근한 건가. 어쩌면 요모가 이 길로 발을 옮긴 이상 요모는 이런 일들을 운명으로 여겨야 할지도 몰랐다.

그것은 자신의 업이었다.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였다. 좆같은 세상, 이라고 요모는 생각했다. 선택지를 이것밖에 주지 않았으면서 내 선택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게 하다니.

뭐어, 렌지랑 잔 건 그거 때문은 아니었지만.”

우타의 입술이 요모의 이마를 가볍게 스치고 떠났다. 우타는 조금 전의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아까의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요모는 물끄러미 우타를 바라보던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미묘한 기분이었다. 저주니, 어쩌니 할 때보다 훨씬 더 미묘한 기분.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낯선 감정. 먼지 하나 없는 바닥에 반사된 빛이 요모 렌지의 눈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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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야쿠자 우타X청부업자 요모..... 이나 이 소재는 별로 안 쓰임

 

 

다락방의 요모 씨

 

Y A G I

 

1. 요모 씨 (1)

 

 

  섹스 파트너의 집에 세 들어 살기.

  요모 렌지는 20인치 캐리어를 나무로 된 바닥에 내려놓으며 남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보증금도 없고, 월세도 싸고, 심지어 집 주인도 같은 구울이었다. 이 모든 조건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 때문이었다.

  요모 렌지가 그의 섹스 파트너였기 때문에.

  “어때, 방은 괜찮아?”

  “……. 이 정도면, 좋습니다.”

  “말 편하게 해, 렌지.”

  “하지만.”

  “어젯밤에는 우타, 우타, 하면서 이름을 잘만 부르더니.”

  요모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야, 어젯밤에는 집주인이 아니라 섹스 파트너였으니까. 요모는 문간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선 우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래로 눈을 깔았다. 간밤의 일들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

  사실 요모는 상대가 우타만 아니었어도 그가 어떤 제안을 하던지 그대로 몸을 물리고 떠날 작정이었다. 요모는 한 번 원나잇을 한 상대와 더 깊은 연을 맺는 법이 없었다. 요모의 인생에서, 섹스로 시작된 연이 좋게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죄다 끔찍하거나, 아니면 그저 그렇게 나쁘거나. 하지만 요모는 이번만큼은 우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여러 이유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요모는, 이 관계가 최악으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짐이 되게 적네?”

  “자주 집을 옮겨서…….”

  “이제는 짐도 좀 늘어나겠다, 그렇지?”

  요모는 별 대답 없이 캐리어를 열었다. 이 집에선 오래 지낼 수 있을까. 요모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자꾸 지낼 곳을 바꾸다 보면 결국엔 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남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요모는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요모의 방은 작은 다락방이었다. 요모가 제대로 허리를 펴고 있을 수 있는 곳은 시옷자 지붕의 한가운데 밖에 없었다. 끝으로 가면 갈수록 요모는 조금씩 허리를 숙여야 했다. 요모가 결국 허리를 반으로 접어야 서 있을 수 있는 곳에 그의 침대와 키가 작은 서랍이 하나 있었다.

  문과 창문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물 때 하나 없이 투명한 창문이 저물어가는 햇살을 다락방의 마루에 이리저리 흩어놓고 있었다.

  “나는 일 때문에 집에 자주 없으니까. 펀하게 지내, 렌지.”

  “.”

  그 말을 남기곤 우타는 또 소리 없이 아래층으로 사라져버렸다. 요모는 우타가 열어두고 간 문을 밀어 닫으려 발을 옮겼다. 우타가 계단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지만 않았어도 요모는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 렌지 아직 일할 곳 없지?”

  요모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구할 생각이긴 했지만.

  “그러면 내일 나 좀 도와주라.”

  “마스크같은 건, 잘 모르는데.”

  “괜찮아, 가게 일 아니니까. 부탁 좀 할게. 이 일에 렌지가 적격일 것 같아서 말이지.”

  우타는 눈을 찡긋하고는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내 동의는? 요모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잠시간 층계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이제는 제 것이 된 다락방으로 몸을 돌렸다.

  요모 렌지는 문에 등을 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비슷비슷한 높이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분명, 어제 말이야. 우타와 함께 4구의 거리를 걸으며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그에게 형님, 형님 하는 것을 한두 번 보았던가. 요모는 직감적으로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몸 좀 쓰는 녀석한테 잘못 걸린 거 아닌가.

  다락방을 얻는 조건은 좋아도 너무 좋았지만, 단 한 가지 결정적으로 안 좋은 점이 있다면 아마 야쿠자나 그 비슷한 무리에서 한 가닥 하는 녀석이 집주인이라는 점이었다.

  “시끄러운 일만 없으면 좋겠는데…….”

  요모는 목덜미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내일 부탁한다던 일도 그와 관련된 일이지 않을까. 요모는 캐리어에서 몇 벌의 옷을 꺼내 침대 위에 두었다. 모두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옷들이었다. 화려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덧대어지지 않은 그런 무채색의 옷들. 요모는 그런 옷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지 않는 것. 청부업자로 지내왔던 요모 렌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다. 어쩌면 우타에게도 요모의 소문 따위가 흘러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문을 전할 사람이 과연 남아있는가, 그것이 문제겠지만.

  일을 이렇게 빨리 재개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요모는 길게 숨을 내쉬곤 외투를 걸기 위해 옷장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열린 적이 없었을 터인 옷장의 문이 무겁게 열렸다. 몇 개의 옷걸이가 옷장 안의 퀴퀴한 공기 속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요모의 눈에 띈 것은, 제법 커다란 상자 하나였다.

  우타가 두고 잊어버린 물건일까.요모는 테이프로 단단히 봉해져 있는 부분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매끈했다. 그것 말고는 별것 없었다. 뜯어볼까, 말까. 요모는 아주 잠깐 고민을 했다. 아주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물건을 멋대로 살펴볼 수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아래층에 있을 우타에게 가져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요모는 상자를 들어 올렸다.

어라.”

보기보다 묵직했다. 그렇다고 들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요모는 가볍게 상자를 흔들어보았다. 안쪽에서 가볍게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이것저것 들어있나 본데, 책 같은 건 아닌 것 같고. 요모는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곤 상자의 내용물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다.

우타.”

  요모는 계단을 두 층이나 내려가서야 우타를 볼 수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뭔가를 보고 있던 우타가 요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옷장에서 발견했어.”

  “, 고마워. 어디 있었나 했더니. 괜찮으면 거기, 테이블 위에 올려줄 수 있을까?”

  그 말을 하며 우타는 길게 기지개를 폈다. 가게 일은 안 가도 되는 건가. 요모는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상자를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 하고 저절로 숨이 내쉬어졌다. 아주 부담 가는 무게가 아님에도 그랬다.

상자로 가까이 다가온 우타는, 요모가 그랬던 것처럼 단단하게 붙어있는 테이프를 손끝으로 쓸었다. 요모는 우타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있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안 열어봤네? 봐도 되는데.”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 그래. 가지고 오면서 별일은 없었어?”

별일?

요모는 미간을 좁히며 한 쪽 눈썹을 올렸다. 요모는 상자를 들고 고작 두 개 층의 계단을 내려왔을 뿐이었다. 별일이 생기기 불가능한 곳은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물어봐야 할 정도도 아닌 것 같은데.

, 미끄러지거나 넘어지거나 하는 일 말이야. 계단이니까.”

딱히.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인가?”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아니라면 아닌 물건.”

우타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속을 모르겠다고, 요모는 생각했다. 요모의 안에 뭐라 명명할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았지만 요모는 그저 그 감정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하고 우타가 자기만 개운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이제 올라가 봐도 괜찮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요모는 선선히 그의 의사에 따랐다. 어쨌든 짐 정리도 아직 끝내지 못했으니.

  요모가 가뿐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우타는 끝까지 웃는 낯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우타는 퍽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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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사과님과의 연성교환  #203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Gloomy Sunday의 OST와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Sundays

 

Y A G I

For. 초코사과님

 

Sunday is gloomy,

My hours are slumberless

Dear as the shadows

I live with are numberless

Little white flowers

Will never awaken you

 

 

나연은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지나치듯 봤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이름 모를 여배우가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을 뿐이었다. 알 수 없는 나라의 언어로 불리는 노래가 왜 그렇게 나연의 가슴을 적셨던가.

나연의 손끝에서 흩어지는 바이올린 소리가 영국의 습하고 우울한 공기를 울렸다. 오늘도 영국은, 말 그대로 글루미Gloomy였다. 오늘이 일요일은 아니라는 건, 역시 아쉬운 일일까.

나연의 손가락이 섬세하게 바이올린의 얇은 현을 짚었다. 현으로부터 시작된 희미한 떨림이 나연의 몸속까지 울리는 듯했다. 나연 자신이 하나의 거대한 바이올린이 되는 느낌. 나연은 그 느낌을 좋아했다.

 

Not where the black culture's

Sorrow has taken you

 

죽음을 부르는 노래라고 했던가. 그러나 나연의 주위에는 이 노래를 듣고 죽은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 없었다. 혹시, 어쩌면 죽음을 마주한 사람에겐 이 노래가 다르게 들리는 것일까. 나연은 이 노래를 들으며 슬픔을 느낀 적은 있어도 죽음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걸보면 아직은 자신이 살아야 하는 때일지도 몰랐다.

나연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이어질 음이 울릴 현을 손끝으로 짚었다. 그때, 창문을 넘어 또 다른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나연은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며 현을 바이올린에서 떼어냈다.

 

Angels have no thoughts

Of ever returning you

Wouldn't they be angry

If I thought of joining you?

 

확인하지 않아도 저 바이올린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연은 알 수 있었다. 셜록 홈즈. 그 눈치 더럽게 없는 새끼. 나연은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당겨 닫았다. 얇은 유리를 통해 노래의 남은 부분이 흘러들어왔다. 나연은 인상을 쓰면서도 셜록의 음악을 귀에 담았다. 만약에 그에게 음악적 조예가 조금이라도 덜 있었다면. 그렇다면 나연은 그를 좀 더 싫어할 수 있지 않았을까.

 

Gloomy Sunday

 

노래의 마지막은 나연이 기억하는 원곡보다 느리고 무거웠다. 셜록은 그 영화를 본 적이 있을까. 셜록이라면 영화를 보지 않고도 그 모든 내용을 알고 있겠지. 나연은 가볍게 팔짱을 낀 채 회백색 구름이 낮게 가라앉은 하늘을 바라보다가 소파에 몸을 묻었다.

셜록 홈즈. 런던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껏 받고 있는 모자를 쓴 탐정. 그리고 그 탐정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셜록이 사랑 따위를 알 수 없다는 말이 나돌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것은 다 모르는 소리라고, 나연은 생각했다. 물론 나연 자신도 셜록의 사랑을 받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몰랐겠지만.

일층 현관의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연은 얼른 머리를 굴렸다. 누군가 올 사람은 없었다. 셜록이 자신을 찾아왔을 리도 만무했다. 셜록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바로 창문을 통해 나연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행동을 할 인물이었다. 나연은 제 옷차림을 한 번 확인하고는 일층 계단을 내려갔다. 초인종을 누른다는 건 적어도 셜록보다는 교양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내가 방해했니?”

허드슨 아주머니!”

나연은 활짝 표정을 폈다.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은 높아져 있었다. 나연은 몸을 뒤로 몇 발짝 물리는 것으로 환영의 의사를 대신했다. 어쩐지 간만에 뵙는 얼굴인 것 같았다. 자신도 이미 부인의 손길이 간절하게 필요한 나이도 아니었을뿐더러, 옆집의 두 남자가 하도 부인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 많기 때문이겠지.

나연은 부인이 자신에게 종종 뱉었던 하소연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저 집 남자들은 냉장고에 식료와 함께 시체를 보관한단 말이지. 나연은 그 말을 들으며 왓슨 박사에게 마음속으로 위로를 보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차라도 내올까요?”

아냐, 잠깐 들린 거란다.”

두 사람은 자그마한 티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누가 봐도 부인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나연은 그 웃음의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셜록이라면 알 수 있었을까. 재수 없는 그 인간이라면, 아마 초인종이 눌림과 동시에 부인의 용무를 알아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연은 평범한사람답게 차분히 부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셜록과는 어디까지 갔니?”

, 그 사람이랑 사귀는 거 아니라니까요!”

어머, 존도 너랑 똑같은 소리를 하던데.”

왓슨 박사님께도 홈즈 씨와 사귀냐고 물어보신 거예요?”

부인은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이더니 소곤거리듯 말을 이었다.

그게, , 다 큰 남자 둘이서 플랫메이트를 하면 그거밖에 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아주머니는, 정말…….”

나연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주머니를 오래 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런 모습은 마냥 엉뚱하게만 느껴졌다. , 젊게 사시는 분이라고 그래야 할지. 나연은 그런 부인의 모습을 싫어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모습이랄지. 셜록 홈즈에게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 없을 모습이었다.

 

*

 

홈즈 씨, 사람을 이렇게 갑자기 불러내면 어떻게 합니까?”

카페 안으로 들어선 나연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셜록을 보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카페 안에는 아직 몇 명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있었다. 셜록은 나연의 등장을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기도를 하듯 모은 손끝을 제 입술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자기가 불러놓고는. 나연은 그런 셜록의 모습이 싫었다.

나연. 큰 게임이 하나 시작될 거야.”

게임이라니요?”

나연이 셜록의 맞은편 자리에 앉자마자 셜록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나연은 셜록을 바라보았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니, 평소보다 더 빛나고 있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었다.

푸른색과 맑은 녹색이 미묘하게 섞여 있는 색채. 나연은 그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눈을 돌려버렸다.

별거 아니야.”

나연의 물음에 셜록은 손을 털 듯 모으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나연은 무심코 그의 입술이 평소보다 좀 더 말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용무가 뭡니까?”

이 말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무슨 말인데요? , 설마.”

맞아. 나연, 나는 나연을 진심으로사랑해.”

사랑해. 셜록의 목소리는 한겨울에나 볼 수 있는 하얀 입김 같았다. 너무 희미하고 덧없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공연히 애틋하게 만드는 목소리. 하지만 나연은 그런 셜록의 고백에도 까딱하지 않았다.

나연은 굳세게 팔짱을 끼고 셜록을 노려다 보았다. 셜록의 얼굴에선 아주 약간의 웃음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 대답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벌써 열두 번이나 들었는데.”

그걸 일일이 세고 계셨습니까? 불쾌해라.”

나연은 미간을 구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셜록은 몸을 일으켰다. 싸구려 나무 의자가 타일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였다면 셜록은 다음을 기약하며 그대로 나연을 지나쳐 갔을 터였다.

나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셜록을 바라보았다. 셜록과 이렇게 가까이 있던 적이 있었던가. 나연은 그의 섬세한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열세 번의 고백과 열세 번의 거절이 지루해질 정도로 이어져 왔는데 어째서 그의 입술이 메말라 있었는지, 나연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창밖에서 껌뻑이는 네온사인의 빨간 불빛이 테이블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연은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셜록의 희미한 숨결부터, 자신의 심장이 어떤 방식으로 뛰는지까지. 셜록에게선 아주 가벼운 남성용 스킨 냄새와 오래된 먼지 냄새와 비슷한 향이 났다.

홈즈 씨, 이게 무슨!”

말했잖아, 후회할 것 같아서.”

나연이 제정신을 찾은 것은 눈을 한 번 깜빡할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셜록이라면 고작 그 정도의 시간으로도 나연의 마음을 충분히 읽었을 터였다. 나연은 그것이 퍽 신경 쓰였다.

영국신사답지 않으시네요.”

나는 신사가 아니라, 탐정이야.”

셜록이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안녕. 셜록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곤 유유히 카페에서 멀어졌다. 나연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셜록 흉내를 내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후회할 것 같다.

나연은 굳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직접 TV의 전원을 껐다. 후회할 것 같다. 나연은 그 말의 진정한 저의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셜록 홈즈. 그는 언제부터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던 것일까.

가짜 탐정이라고, 언론에서 지껄여대는 말들은 처음부터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가짜일 리 없었다. 나연은 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눈을 감으면 다시 그날 카페의 적막함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생한 기억인데.

셜록 홈즈의 장례식은 나연의 생각보다 조촐하게 치러졌다. 런던을 떠들썩하게 했던 탐정의 종말은 그렇게 초라했다. 나연은 셜록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그녀가 셜록을 싫어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연은 셜록의 장례식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슬퍼해야 할까, 화를 내야 할까, 아니면 그의 키스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해야 할까.

그 대신에 나연은 글루미 선데이를 봤다. 그 노래를 듣고 죽어간 사람들을 떠올렸다.

 

Sunday is gloomy,

My hours are slumberless

Dear as the shadows

I live with are numberless

Little white flowers

Will never awaken you

Not where the black culture's

Sorrow has taken you

Angels have no thoughts

Of ever returning you

Wouldn't they be angry

If I thought of joining you?

 

Gloomy Sunday.

 

낯선 얼굴과 낯선 언어 사이에서 나연을 붙잡은 것은 가느다랗고 하얀 한두 줄의 자막이었다. 나연은 그제야 이 노래의 가사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나연은 셜록을 떠올리는 대신 바이올린을 들었다.

여전히 런던의 하늘은 어둡고 낮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덮어버릴 것 같은 구름들이 하얗게 모였다가 풀어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바이올린 선율은 언제나 아름답고 반짝였다. 나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셜록을 애도했다. 그리고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셜록 홈즈를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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