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매혹한 사람

 

 

 

  그 애의 이름은 송이었다. ‘도 아니고 하필이면 송이였다. 익숙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그 이름의 울림 때문인지, 아니면 그 뽀얀 얼굴 때문인지 그 애는 학우들에게 인기가 꽤 많았다. 반이 그 애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그 애가 반을 구성하는 어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 애는 키가 작았고, 턱선까지 자른 단발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있었다. 그 애의 별명은 눈송이였다. 이름 때문인지, 하얀 얼굴 때문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초등학교 1학년, 그 애는 나의 짝이었다.

  우리는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았다.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길 때 꼭 1번은 그 애였고 2번은 나였다. 그래서 우리는 짝이 될 수 있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도 교실 책상에 번호를 붙이자면 1, 2번인 자리였다. 점심을 먹으러 급식소로 향할 때도 우리는 복도에 키 순서대로 줄을 섰다. 당연히 나는 2번이었다. 나는 내 번호가 2번이 아닌 것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 씨여서 20몇 번이었던 나. 자꾸만 1번으로 잘못 정의되던 그 애의 성씨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를 매혹한 것은 그 애의 이름도, 얼굴도 아니었다. 등교 첫날부터 붙여진 눈송이라는 그 별명 때문이었다. 눈송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하얗고, 깨끗하고, 작으면서도 여린 이미지와 그 이미지에 어울리는 생김을 가졌다는 것이 그 애의 인상적인 점이었다. 나는 눈송이라는 그 예쁜 단어가 별명으로 아무렇지 않게 쓰일 수 있다는 것에 아주 놀랐다. 아무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그랬다. 그 애는 우리에게 송이라기보다는 눈송이였던 존재였다.

  그 당시 나는 어떤 별명을 가지고 있었더라. 단지 정 씨라는 것 때문에 정수기라느니, 정보와 사회라느니 하는 별명을 가졌던 것도 같다. 아니 어쩌면 그 때는 학우들에게 별명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을 때였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그 애의 눈송이라는 별명이 꽤 부러웠다. 동시에 그런 애가 나의 짝이라는 것이 좋았다. 상대적으로 그 애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나도 눈송이와 친해지고 싶어 했던 아이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우리는 조물거리는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둘 다 손을 잡는 것을 좋아했던가. 우리는 손을 잡고 음악실을, 미술실을, 급식소를 갔다. 한여름 맹렬한 햇볕 아래에서 우리는 운동장의 흙으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그때도 물론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애의 얼굴은 그 땡볕 아래에서도 타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 애가 잘하던 과목은 무엇이었나. 수학이었던 것 같고 음악이었던 것 같고 그것들과 아무 상관없는 다른 어떤 과목이었던 것도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떤 과목을 잘해봤자 남들과 얼마나 차이가 나겠느냐만은, 어쨌든 그 애는 공부를 참 잘했다. 선생님들에게도 그 애는 눈송이였다.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후덥지근한 교실에서 눈송이는 유난히 돋보였다.

  사실 그 애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없다. 어느 순간 그 애는 내 곁에서 사라져버렸다. 1학년을 마치고 난 뒤의 일이었다. 겨울방학 때 그 애와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 무언가를 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있으나마나한 기억 이후에 그 애가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 애를 지워버린 것처럼.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너무 어려서 기억나지 않는 일들과 매우 인상적이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일 몇 가지를 겪었다. 그러나 그 속에 눈송이는 없었다. 왜 나는 가끔 그 애를 떠올릴 생각을 못했을까. 그 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사를 갔는지 아니면 다른 일이 생긴 것인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왜 못했을까. 요즘은 그 눈송이가 내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어쩜 사람이 그렇게 깨끗하게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렸나. 눈도 되지 못한 눈송이는 결국 녹아버렸나.

  그 애의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내 인생에서 나를 처음으로 매혹해버린 존재인데, 나는 그 애의 이목구비도 기억하지 못했다. 나를 매혹시켰던 것이 다른 것이 아닌 눈송이였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여름의 초입에서 나는 그 지난날의 눈송이를 다시 한 번 더 떠올린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 방은 시원하다. 그러나 겨울만큼은 아니다. 눈송이도 그랬다. 그 애에게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사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있던 아이였다. 그 애와 손을 잡을 때, 나는 항상 오른손을 내밀었고 그 애는 항상 왼손을 내밀었다. 그래서인지 오른손이 자꾸 허전하다. 주먹을 꼭 쥐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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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소재 #수인물

 

 

YOMI 1

  

 

   눈은 차갑다. 새삼스레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몸을 웅크리고 앉아 발을 꼬리로 덮으면 어떻게든 버틸 만은 했다. 눈이 참 많이 오는 동네라고, 집 뒤뜰에서 맨몸으로 눈을 맞으며 생각했다. 아버지가 없는 존재라고 여기면 마음이 편했다. 사실 그것과 그렇게 다른 관계는 또 아니었다. 아버지라기보다는 주인님에 가까운 관계였고 나는 그저, 멍멍, 짖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애완동물이라는 건 어쩌면 하나의 완구처럼 다루어지는 것이 숙명일지도 몰랐다. 무척 아껴 품에 끼고 있는 완구든 멋대로 먼지 구덩이에 뒹구는 완구든 그것이 주인과 동등하지 않다는 사실은 똑같았다. 같이 산다기보다는 길러진다는 것에 더 가까운 관계였고 길러진다는 것은, 무언가 채무 관계가 존재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애완동물은 애교를 떨거나 얻어맞거나 해서 그 채무를 갚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나는 그것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해서 내게 좋을 것은 딱히 없었다.

   이름이라는 것은 단지 새로운 닉네임을 다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이라는 것은 새로운 페르소나일 뿐이며 그런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부여받아야한다는 것은, 나는 어쨌든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겠지. 내가 수행해야할 역할은 유우(有宇)’라는 존재였다. 내게 부여된 새로운 페르소나는 귀엽고, 싹싹하고, 눈치도 제법 빨라야하는, 애완동물이었다.

   “들어와라.”

   “네에.”

   유리문이 날선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버지는 문만 열어두고 몸을 돌려 사라졌다. 들어가기 전에 털에 붙은 눈은 깔끔히 털고 들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맨몸으로 눈발에 나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해야 해서 그렇게 했다. 이제야 발이 시렸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곧 따끔따끔 간지러워지겠지. 나는 그것을 더 참기 힘들어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발을 긁을 수 없었다. 긁으면 또 짐승 같은 짓을 한다고 혼만 날 것이었다. 나는 자신이 인간보단 짐승에 가까운 동물이 아닌지, 생각했다.

   “내일 놀러나간다고 그랬지?”

   “. 친한 친구 만나려구요.”

   “그래, 잘 다녀와라.”

   아버지는 손수 옷을 입혀주셨다. 언 발을 데워놓은 수건으로 덥혀주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만히 아버지의 손길을 따르고 나면 아버지는 꼭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잘했다는 거다. 무엇을 칭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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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집 앞마당에서 무화과나무를 기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여자는 당혹감을 숨길 수 없었다. 여자는 어렸을 때 아몬드나무를 기르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다. 고흐의 아몬드나무 그림을 좋아했으며, 당시 즐겨 읽던 소설에서 아몬드나무의 향기라는 구절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아몬드나무란 여자에게 이국의 로망과 같은 것이었다. 뽀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분수대에서 나온 물이 포말로 변하고, 그 앞에서 기타로 잔잔한 음악을 연주하는 컬이 굵은 곱슬머리를 가진 남자가 존재할 세계 어딘가의 풍경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여자가 그 로망을 접어둔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였다. 여자는 여전히 고흐의 아몬드나무 그림을 좋아했다. 하지만 여자는 아몬드를 포함한 견과류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고, 아몬드나무의 향기를 이제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런 여자가 무화과나무라는, 다소 뜬금없는 생물이 제 집의 앞마당에 심어진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웬 무화과에요?

   여자가 무화과에 대해서 아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죄를 저질러서 꽃을 안쪽에서만 피우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던가. 여자는 어머니와의 통화를 이어가며 그 이야기를 잠깐 떠올렸다. 꽃도 없는 과일이라는 거지. 아주 어린 시절의 여자는 그 이야기가 로맨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을 기억했다.

   무화과요? 아니당연히 먹어본 적 없죠.

   꽃의 맛은 떫다. 여자는 숱한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담 무화과는 떫은맛인가. 여자는 스마트폰으로 무화과에 대해 검색해보려 하다가 바로 그 스마트폰으로 어머니와 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보내준다면 먹어야죠.

   여자는 떫은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불안함이 여자를 가볍게 흔들고 지나갔다. 여자의 어머니는 손이 큰 사람이었다. 본가에는 무화과나무가 과연 몇 그루나 있을까? 키워다 팔만큼의 수많은 나무들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여자의 집 앞마당은 여자가 아는 것보다 더 몸집을 부풀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손이 큰 사람이었으니까. 여자는 단 한 그루였던 이름도 모르는 백합과의 꽃나무가 단 몇 년 만에 열두 그루로 불어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나무들은 현관의 왼쪽 오른쪽에 각각 여섯 그루씩 늘어서게 되었다. 현관을 들락거릴 때마다 맡았던 그 숨 막히는 향기를 여자는 잊을 수 없었다. 여자는 이제, 무화과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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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손때만큼 안개가 묻어있었다. 세상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나는 일부러 차도의 한 가운데로 걸었다. 그러면 곧 뒤에서 커다랗고 흰 트럭이 요란하게 경적을 울릴 것만 같았다. 그럼 나는 안심하고 죄송합니다, 하며 길가로 비켜서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습기가 가득한 바람이 불었고 키가 큰 국화의 줄기를 흐트러트려 놓았다.

   낡은 마트는 주황색과 노란색의 딱 중간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마트 앞의 작은 아스팔트 마당엔 낡은 가전제품들이 늘어서 있었다. 중고가전제품특가판매. 하지만 카키색 먼지가 내려앉은 텔레비전은 아무리 봐도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구형 냉장고는 심지어 냉동실의 칸이 반쯤 열려있었다. 텅 빈 냉동실에 손을 넣어보았다. 당연히 냉기는 하나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마트의 유리문을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자주색 조끼를 입고 카운터에 서 있었다. 손님은 하나도 없어보였다. 냉기를 맞으며 시들어가는 야채칸의 풀뿌리들을 떠올리며 몸을 돌렸다.

   멸망이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가치가 지워지고 먼지만 내려앉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발을 잠시 멈추었다가 곧 뛰기 시작했다. 지금이 너무 무서웠고 얼른 세상의 소리로 다시 둘러싸이고 싶었다. 자동차의 매연소리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가래 뱉는 소리마저 그리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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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나는 왜 모텔에서 주는 입욕제 따위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까. 나는 생각보다 큰 욕조에 앉아서도 무릎을 껴안고 있었다. 커플들을 위해 디자인 되었을 욕조는 너무 낯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외국 영화에서 나오는 작은 방에 딸린 아주 자그마한 욕조였는데. 뜨거운 물이 차게 식은 발에 닿아서 발끝이 따끔거렸다. 욕조 바로 옆에 있는 흰 변기는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거품 목욕을 해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입욕제라는 단어조차 낯선 때, 나는 처음으로 모텔에 갔고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으며 처음으로 입욕제가 들어있는 포장지를 만져보았다. 일반실엔 욕조가 없었다. 특실을 가려면 만 원을 추가해야만 했다. 특실에는 욕조가 있었고 데스크톱이 두 대에 티비는 조금 더 큰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목욕 가운. 내가 접해 본 목욕 가운은 아주 어렸을 때 수건 한 장을 몸에 둘러 그것을 흉내 낸 것밖에 없었다.

   난생 처음 써본 입욕제는 색이 예쁘지도 않았고, 장미 꽃잎은커녕 장미 냄새도 나지 않았다. 몇 번 부풀어 오르다 꺼져버린 거품은 뜨거운 물에 녹아 없어진지 오래였다. 결국엔 그냥 뜨거운 물이 남았다. 그것도 빠르게 식어가는 뜨거운 물.

   나는 배수구 마개를 열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다시 틀었다. 배수구에 모든 물이 빨려 들어갈 때까지 욕조에 앉아 있으려 했다. 거품이란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며, 조용히 물소리만 들었다. 목욕을 하고 나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사온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혼자서 퍼먹으면서 오늘 밤을 보내야지. 무료 브이오디 영화를 틀어놓고 보지도 않아야지. 나는 그렇게 밤을 새고 나면 모든 것이 리셋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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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여름이라고 나비는 해바라기 씨가 가득하다는 별로 가버렸다. 나는 예쁘고 쓸모없는 담배를 손에 들고 있었다. 내 자리는 창문 바로 앞에 놓여있는 의자였다. 너를 기다릴 때마다 앉아 있는 자리였고, 때문에 오늘 나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하늘은 상한 우유를 아주 묽은 농도로 물에 희석시켜 놓은 색깔이었다.

   나비는 햄스터였다. 많은 사람이 나비는 왜 고양이가 아니라 햄스터냐고 물었다. 나비라는 이름은 네가 지은 것이었다. 그것은 한 때 네가 나를 부르는 애칭이었고. 너는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에게 나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고 했다. 봄에 데려온 나비는 이제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이름을 잘못 지어준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더 이상 나비가 아니었다.

  너는 두 시간 째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지 않았다. 화장실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귀를 가져다 대보면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가 너의 울음을 듣기도 싫고, 듣지 않기도 싫었다. 나는 모르는 척 하고 앉아있고 싶었다.

   내 의자는 푹신하다. 네가 돈을 모아 내게 선물한 것이었다. 내 작은 몸을 폭 감싸 안을 정도로 큰 틀이 부드럽고 약간은 뻣뻣한 천으로 싸여 있는 것이었다. 나는 오트밀 색 쿠션을 사서 의자에 안겨주었다. 그것은 아주 잘 어울렸고 내 맘에 쏙 들었다.

   나는 이 의자에서 너무 오랜 시간동안 너를 기다렸다. 너는 그 어디에도 붙어 있지 못하는 껌딱지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일지도 몰랐다. 더 이상 가치도 없고, 지긋지긋하고 더러운 감상이었다.

   예쁘장한 포장지에 맛이 없는 유명한 담배를 손에 들고 있었다. 나는 담배 맛을 몰랐다. 이전에 얻어 피워 본 담배의 맛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요즘 나오는 라이터는 불을 붙이기가 너무 쉬웠다.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 끝이 천천히 타들어갔고 나는 긴 숨을 들이켰다. 피울만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담배 한 갑을 모두 태워버렸다.

 

 

 

 

*

산다이바나시 : 우유, 나비, 껌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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