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리마X흑카네키   #잭리마X흑카네키-아리마X흑카네키-아리마X백카네키 순으로 바뀜(..)   #시간 순서 꼬임 원작 시간 생각 X에요

#얓쿠님과 연성교환용 글^~^  #자캐연성급임......저가 아리마를 생각보다 잘 모르더라구요.......쩜쩜..

 

 

 

퍼즐

 

Y A G I

For. 얓쿠님

 

 

그날도 역시, 그저 그런 날이었다. 세상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그저 그런 날. 특별한 기쁨도, 슬픔도 없는 그저 그런 날. 솔직히 말해서 카네키 켄은 그런 날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카네키 켄은 딱히 특별함을 동경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는 평범하고 싶었고, 평범하게 행복하고 싶었다. 자신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그저 그런 날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카네키 켄은 언젠가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람에게는 그게 언제든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었다. 벼르고 벼르던 날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는 그런 날이. 물론 아무도 그 날이 언제 올지 알 수는 없었다. 그것은 카네키 켄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이 어둑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카네키는 프랜차이즈 편의점 로고가 찍힌 봉투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카네키는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두고 온 타카츠키 센의 신작을 읽을 생각에 들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새로 산 책의 냄새, 종이를 넘길 때 나는 버석거리는 소리,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이야기와 그것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문장들.

문장 하나하나만을 떼어 놓고 보면 큰 가치를 지니지 않지만,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카네키는 그 감각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타카츠키 센 만한 작가가 없었다. 그 유려한 문장하며, 타카츠키 센 밖에 풀어낼 수 없는 이야기 하며.

저 멀리 횡단보도의 초록 불이 점멸하고 있었다. 뛸까, 고민하던 카네키는 깜빡이는 불빛을 무시했다. 이럴 땐 좀 걸리더라도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훨씬 나았다. 카네키는 다시 수많은 책들을 생각했다. 자신을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책들, 익숙한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낯선 문장들…….

?”

카네키의 손바닥 안에서 편의점 봉투가 바스락거렸다. 카네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커다란 기타 가방이었다. 처음에는 이 시간까지 부 활동 따위를 하고 귀가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날 선 소년의 옆얼굴이었다. 얇은 안경이 소년의 코에 얹혀있었다. 그다음엔, 새벽의 색채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년의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풍채 좋은 남자였다.

심장이 두근, 하고 뛰었다.

어라? 카네키의 눈앞에서 횡단보도의 초록색 불빛이 정신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카네키 모르게 신호가 한 번 더 바뀐 모양이었다. 누군가 카네키를 지나쳐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카네키는 그 자리에 박힌 듯 서 있었다. , 심장이 뛰었지? 카네키는 고개를 가볍게 갸웃거렸다.

카네키는 횡단보도로 눈을 돌렸다. 신호등은 다시 붉게 변했고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 자동차들이 횡단보도의 흰 선을 마구 짓밟고 있었다. 카네키는 그 소년이 들어선 골목에 따라 들어섰다. 그러니까, 걱정이 됐다. 풍채 좋은 남자와 소년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냥 놓고 보면 접점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엮여서는 안 되는 부류의 사람들 같았다.

물론 그것은 편견이었다. 카네키는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소년의 뒤를 따랐다. 만에 하나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카네키는 싸움엔 별로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신고 정도는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골목은 도시의 그림자였다. 엉망으로 얽혀있는 관들이 낡은 벽에 엉겨 붙어 있었다. 소년의 뒷모습은 이미 카네키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카네키는 귀를 귀울여 봤지만 딱히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맞나? 카네키는 그러길 빌면서도, 동시에 사소한 일이 있길 바랐다.

물론 카네키 켄이 바란 사소한 일은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아니었다.

……!”

너무 놀란 나머지 카네키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카네키는 몸을 휘청거리며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어깨며 허리에선 진득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구급차! 카네키는 얼른 휴대폰을 찾았지만 그의 휴대폰은 남자의 뒤쪽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다.

휴대폰을 가지러 가려던 그 순간, 카네키는 남자의 허리춤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상처 입은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어깨가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

……피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카네키의 귀를 찢었다. 남자의 몸이 카네키 위로 드리워진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 카네키의 뺨에 뜨끈한 피가 뚝, 떨어졌다. 카네키는 그제야 자신이 땅에 등을 대고 있다는 것도, 제 위의 남자가 아까의 소년이 뒤따라가던 남자란 것도 눈치챘다. 남자의 등허리에 있는 것이 피가 아닌 카네키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라는 것도.

남자는 뭐라고 웅얼거렸지만 카네키는 그 말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먹고, 끝내고, 없애고, 뭐 그런 폭력적인 단어들. 그 단어들이 왜, 자신에게 향하는지 카네키 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흰빛이 있었다.

카네키는 그것이 소년의 손에 들린 검이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몇 번의 합이 있었다. 남자는 당황한 듯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 호흡은 소년의 검에 갈려 사라졌다. 남자는 그 꼴이 되어서도 용케 움직이고 있었다.

소년은 카네키 앞을 막아섰다. 소년의 감색 머리카락이 공중으로 한 번 떠올랐다 다시 그 하얀 목덜미에 내려앉는 것이 카네키의 눈에는 아주 느리게 보였다. 덕분에 카네키는 그 모든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젠장, 하고 소년이 날 선 말을 뱉어내는 것을 듣고서야 카네키는 정신을 차렸다. 멀리 내동댕이쳐진 편의점 봉투는 이리저리 밟혀 속에 있던 음식물들이 끔찍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소년은 뒤돌아 카네키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미끄러져 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렸다.

눈동자가 텅 비어 있다고, 카네키는 생각했다.

괜찮아요?”

소년은 카네키에게 손을 내밀었고 카네키는 흔쾌히 그 손을 잡았다. 왼손에 제 몸통보다 긴 검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 이질적이었다. 그럼에도 카네키는 이 모든 상황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 눈으로 본 사실이니, 당연했다.

카네키는 그 날 저녁을 걸러야만 했지만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새로 산 책의 페이지가 도저히 넘어가지 않아 카네키는 결국 그대로 하루를 일찍 마감했다. 카네키는 침대에 누워 좁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카네키 머릿속을 떠돌고 있던 것은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소년의 흰 목덜미였다.

 

, 이것 봐. 구울이래.”

히데는 항상 요란하게 등장했다. 교내 카페테리아 테이블에 앉아있던 카네키는 고개를 들어 히데를 바라보았다. 히데는 카네키 쪽으로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누군가 CCG에서 배포한 전단을 찍어 SNS에 올린 모양이었다.

구울이라고 꼭 괴물처럼 생기진 않았네.”

나 이 사람 봤어.”

그럼 신고해. 포상금 준대.”

아니길에서 본 건 아니고, 죽을 뻔했다고 하면 좋을까.”

, 그런 일을 되게 태연하게 말한다…….”

히데는 짐짓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카네키는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소년은 어떻게 구울에게 맞설 수 있던 걸까. 카네키는 소년의 손에 들려있던 검을 떠올렸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구울 수사관이기라도 한 걸까.

카네키는 소년의 이름이라도 물어 놓을 걸, 하고 후회했다. 생각해보면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다.

히데가 자판을 누를 때마다 히데의 휴대폰에서는 톡, , 하는 소리가 났다. 히데는 구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느니, 여러 사람들이 신빙성 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느니, 하는 말들을 전했다.

카네키, 너 얼굴 봤다 그랬지.”

. 이렇게, 마주 봤는데.”

카네키는 히데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히데는 미간을 싹 찌푸렸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

, 다시 죽이러 오면 어떻게 해?”

에이. 내가 어디 사는지 어떻게 알고.”

다니는 길에서 마주친 거 아니야?”

…….”

……, 몸조심해라.”

카네키는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네키가 조심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닐지 몰랐지만, 카네키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에어컨 춥다, 하면서 히데는 몸을 떨었다. 에어컨 때문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들은 억지로 온도 조절을 잘 못 한다면서 가게를 욕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해가 지면 외출을 가급적 금한다. 그날 이후로 카네키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던 규칙이었다. 그런데 왜, 이 구울은 카네키의 방에 들어와 있는 거지?

카네키는 머리를 굴렸다. 어두운 밤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집 위치를 발각당할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니까, 밝은 대낮에 미행을 했다는 거군. 카네키는 거기까지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다였다.

잘 먹겠습니다아.”

먹힌다. 카네키는 오금이 저린다는 말을 체감했다.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칠 수가 없었다. 카네키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단기간에 두 번이나 느낀 무력감이었다. 카네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는다. 주마등이 스쳐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다만 그 소년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렸다. 이름이 뭐였을까. 타나카, 야마모토, 스즈키. 카네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름들을 몇 갠가 나열했지만 그 소년에게 어울리는 이름은 단 하나도 없었다.

카네키의 얼굴에 뜨끈한 것이 흩뿌려졌다. 침인가. 아니면 이미 먹혀 그의 식도 안에서도 나는 사고하고 있는 것인가. 카네키는 주저하며 실눈을 떴다. 웬 천장이 보였다. 자신의 방 천장이.

이름도 모를 그 구울은, 머리를 잃어버리고 카네키의 침대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카네키는 그제야 몸이 움직였다. 몸을 퍼뜩 일으킨 뒤 카네키가 가장 먼저 본 것은 그 소년이었다. 죽기 전까지 카네키의 머릿속에 아른거리던 그 소년.

괜찮아요?”

덕분에…….”

카네키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네키는 소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선을 느낀 소년은 입술을 앙다물고 카네키를 의뭉스럽게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시선을 먼저 피한 것은 소년이었다.

실례했습니다.”

, 잠시만요!”

카네키는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려는 소년을 붙잡았다. 소년의 얼굴은 어둠 속에 묻혀있었다. 그의 표정을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카네키는 소년의 이름을 물었다. 소년은 즉각 고개를 저었다. 알 것 없다는 표시였다

저는, 카네키. 카네키 켄이에요.”

……아리마 키쇼.”

아리마는 다소 떨떠름한 듯 자신의 이름을 뱉었다. 상대가 먼저 이름을 말한 상황에서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별로 예의가 아니었다. 아리마는 고개를 까딱, 숙이고 카네키의 방을 떠났다.

카네키 켄.”

후속 조치를 취하는 동료 수사관들의 모습을 보며, 아리마는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아리마는 고개를 가볍게 왼쪽으로 젖혔다. 그 이름을 몰랐으면, 그저 지나치는 사람에 불과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별일이 없다면,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날 게 분명했다. 아리마는 곧 다른 구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기억 속에서 희석되다, 미래의 어느 순간 카네키라는 이름을, 아리마라는 이름을 간혹 떠올리곤 희미해진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관계로 끝날 운명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여태껏 잡고 있던 두 사람의 운명의 실을 새로 고쳐 쥐었다. 여신은 두 사람의 운명의 실을 왼손에 그러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카네키 켄은 종종 자신이 인간인 꿈을 꿨다. 자기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그는 자신이 인간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꿈을 꿨다. 잠을 자고 나면 항상 개운하지가 않고 괴로웠다.

자신은 무엇인가, 구울인가, 인간인가? 요시무라 씨는 그렇기에 카네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카네키 켄은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카네키 켄이 하고 싶은 것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뿐이었다.

죽을 위기를 넘기고 싶지도, 구울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구울 수사관인 아리마 키쇼에게, 적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아리마 키쇼. 어째서 그 이름은 카네키의 머릿속에서 자꾸 부유하는가. 카네키는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했다. 사실 카네키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래서 카네키는 아리마 키쇼에 관한 자신의 마음을 더욱 알 수 없었다.

언젠가 토우카의 앞에서 무심결에 아리마 키쇼, 하고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마른행주로 컵을 닦고 있던 토우카의 손이 미끄러졌다. 그러나 토우카는 태연하게 떨어지는 컵을 잡아 작업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카네키를 노려봤다.

그 이름 어디서 들었어?”

무슨 이름?”

방금, 아리마 키쇼라고 했잖아.”

. 카네키는 그제야 자신이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물아물 토우카의 시선을 피하던 카네키는 문득 토우카와 눈을 맞췄다. 토우카는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토우카도 아리마를 만난 적이 있는 걸까.

그 사람이 왜?”

“CCG의 저승사자.”

저승사자?”

아리마 키쇼의 별명이다.”

토우카는 침을 뱉듯 아리마 키쇼라는 이름을 발음했다. 그렇구나. 카네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저승사자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한 번 더, 아리마 키쇼를 마주치면 카네키는 죽게 될까.

카네키는 아리마의 손이라면 죽어도 상관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만 카네키가 궁금한 것은, 아리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밤하늘이 청명했다. 지금까지 숱하게 봐온 밤하늘인데, 오늘따라 더 그렇게 보였다. 카네키는 자신을 뒤쫓는 사람이 있는 것을 느꼈다. 안테이크에서 퇴근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식은땀이 배어 나와 카네키는 허벅지에 제 손바닥을 문질러 닦았다.

피할 수 있을까. 만난다면 싸울 수 있을까.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인간이잖아. 나는 인간이잖아.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는 없는 거잖아. 나는, 구울이 아니잖아. 하지만 그런 상황은 카네키가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싫게도 벌써 익숙해진 소리였다. 수트케이스였다. 쿠인케, 라고 했던가. 카네키의 삶은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쿠인케의 경우는 바뀐 것들 중에 나쁜 것들에 속했다.

죽고 싶지 않아. 카네키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인간을 반쯤 잃어버리고, 카네키는 지금까지 얼마의 죽음을 봐왔던가. 죽음에 가까이 있던 자들을 봐왔던가. 카네키 본인부터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먹고사는 생명이었다. 죽음이란 것이 조금 익숙해진 것도 같다고 카네키는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죽음만은 이렇게도 크고 무거운 것인가.

……카네키 켄?”

마스크를 쓰고 오진 않은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 그 전에.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였다. 카네키는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카네키는 그런 남자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왜.

바람이 카네키 쪽으로 불어왔다. 익숙한 향내가 섞인 바람이었다. 잊을 수 없는 냄새. 아주 잠깐 카네키를 스치고 지나갔던 그 냄새가 났다.

아리마. 아리마, 키쇼.”

안대.”

하아, 하고 아리마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느낌이 안 좋더라니. 사실 안대의 구울은 아리마의 담당은 아니었다. 안대의 구울은 아리마 정도 되는 사람이 담당할 만큼 위험하거나 중요한 구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리마는 자신이 안대의 구울을 맡겠다고 말했다. 마도 쿠레오의 죽음 이후였다. 안대의 구울. 아리마는 그 단어에서 불길한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아리마조차 그 불길한 기운의 정체가 바로 이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카네키 켄.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리마 씨. 저를죽일 겁니까.”

그렇게 물어보면, 안 죽인다고 말할 수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리마는 쿠인케를 수트케이스에 집어넣었다. 카네키가 기억하던 쿠인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카네키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는 이제는 하얗게 새어있었다. 하지만 안경 뒤의 그 날카로운 눈빛만은, 예전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 텅 비어있는 눈빛.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그 눈빛만큼은.

잠깐 걷지.”

아리마는 카네키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는 최대한 담담하고자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카네키의 앞에서 행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아리마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리마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아리마의 감정을 아리마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처럼. 아리마의 심장은 심하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이러다 죽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었다. 아리마는 자신을 뒤따라오는 카네키의 발걸음을 들었다.

 

아리마 키쇼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다지 원망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구울 수사관으로서의 삶이 퍽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의 삶의 목표는 구울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리마의 곁을 지나쳐갔다. 하지만 아리마는 외롭지 않았다. 처음으로 친구라는 것을 사귀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 사람 때문에, 아리마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깨달아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추억이 퇴색되지는 않았다. 외롭더라도, 아리마는 사실 별로 상관없었다. 그의 외로움은 구울을 구축하는데 원동력이 되지도,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그의 삶에 작은 외로움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 외로움을 흔들어 놓은 것이 카네키 켄의 존재였다. 아리마는 자신의 감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것을 납득하기 위해 카네키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리마의 심장 어딘가가 욱신 쑤셔오는 것이었다.

아리마는 수없이 많은 꿈을 꾸었다. 모두 카네키 켄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먼지처럼 스러저버리는 꿈이었다. 카네키는 없어져 가는 자신을 잡지 않았다. 아리마 본인도 그런 카네키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붙잡을 수 없었다는 말이, 정확했다.

자신의 삶은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저주받은 삶이 아니었던가.

두 사람은 근처 공원에 도달했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 벤치들이 드문드문 놓여있었다. 아리마가 먼저 벤치에 앉았고, 다음은 카네키였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침묵이 가라앉았다. 어느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둘 다, 너무 많이 바뀌었네요. 사실, 아리마 씨가 아닌 줄 알았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그땐, 구울이 아니었으니까.”

많은 일이 있었어요. 아리마 씨에게, 많은 일이 있었듯이.”

카네키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띄엄띄엄 아리마에게 전했다. 아리마는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카네키의 말을 경청했다. 좋은 목소리였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하고, 뭐 그런 단어들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목소리.

아리마는 카네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안대로 가려진 눈 뒤에는 아직 숨기지 못하는 혁안이 있다고 했다. 카네키의 얘기 중간에, 아리마는 손을 뻗어 그의 안대를 벗겼다.

……그렇네요. 그렇게, 됐어요.”

그럼 카네키 너는 이제구울인가.”

구울은 아니에요. 그렇다고인간은 아니지만요.”

카네키. 네가 CCG 구축 대상인 것은 알고 있겠지.”

안대의 구울, 이라면서요?”

아리마는 몸을 일으켰다. 카네키의 칠흑 같은 머리가 가로등 아래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카네키의 시선이 아리마를 따라 움직였다. 그의 시선은, 슬픔이었다. 그리고 아리마는 자신의 눈빛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아리마 씨.”

다음에는, 구축이야. 나를 더 이상 기억하지 마, 카네키 켄.”

아리마 씨!”

카네키는 아리마가 이대로 떠날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정말, 우리의 관계는 이대로 끝인 것인가. 카네키는 아리마에 손에 죽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는 건 싫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없었던 것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 싫었다.

아리마 씨, 차라리 여기서 저를…….”

수트케이스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카네키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리마의 손바닥이 카네키의 뺨을 감싸고 있었다. 아리마의 입술이 부드럽게 카네키의 입술을 짓눌렀다.

부드럽게 두 사람의 혀가 얽혔다. 두 사람의 혀는 어색하면서도 집요하게 서로를 탐했다. 카네키는 아리마의 목을 껴안았다.

두 사람의 첫 키스는. 그러니까, 눅눅한 맛이었다.

 

어이, 바보 카네키.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바보라고 부르는 건 슬슬 그만해 줬음 하는데.”

그러면 바보짓을 안 하면 되지, 바보.”

토우카는 바보, 라는 말을 부러 길게 늘여 말했다. 요사이 카네키 켄의 모습은 좀 이상했다. 하긴 원래부터 이상한 녀석이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넋을 놓고 있진 않았는데. 토우카는 카네키의 그런 모습이 아직은 썩 못마땅했다. 그가 좋은 녀석인 걸 알면서도 그랬다.

좋은 녀석인 걸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카네키는 설거지를 이어갔다. 식기끼리 부딪히며 쨍, 하는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네키는 도저히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그러지. CCG의 저승사자와 키스했다고 그러면.

그 키스가 너무 따뜻했다고 말하면.

그래서 이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면. 카네키는 속이 쓰렸다. 이제 겨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알았는데, 이젠 다시 만나면 안 된다니. 정말 글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하고 만나야만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평범하게 사랑하고, 함께 있고, 데이트도 하는 삶을. 하지만 지금 이 꼴이 뭔가. 같이 데이트를 하러 가도 카네키가 먹을 수 있는 건 커피밖에 없지 않은가.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지만, 카네키는 그 삶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리고 카네키는 꽤 그것에 충실했다. 안테이크의 일상도, 음식을 먹는 하는 것도, 시체를 먹는 것도 제법 익숙해진 일들이었다. 하지만 아리마 키쇼와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카네키는 그날 결국 찻잔을 하나 깨트렸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한번 더 만났다.

수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 뒤였다. 카네키는 삶의 궤도라는 것을 체감했다. 처음에는 작은 틈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커져갔다. 카네키 켄은 이제, 카네키 켄이라기보다는 안대의 구울이었다.

운명은 카네키를 자꾸 카네키에게서 밀어냈다. 카네키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서도 밀어냈다. 카네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자기 눈물에 자기가 질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카네키는.

카네키는.

결국 카네키는 그 이후로 아리마를 만나지 못했다. 그의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아리마가 일부러 피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카네키는 그것이 그의 배려라는 것을 알면서도 못내 섭섭했다.

하지만 카네키의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의 운명은 아예 멀어질 수 없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카네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를 넘어 아리마를 만났다. 그리고, 그를 죽이고 그를 지나가야만 했다. 아리마 키쇼가, 구울인 자신을 그냥 보낼 리는 없을 테니까.

카네키 켄과 아리마 키쇼. 만나고 싶지 않으면서도,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발밑에서 피었을 리 없는 하얀 꽃들이 피어났다. 아리마는 카네키의 뺨을 매만졌다. 이전보다 조금 살이 빠진 것도 같았다.

비슷해졌구나.”

그렇다고 같아질 순 없겠죠.”

그렇겠지. 아쉽게도.”

카네키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몇 번이고 상상해왔던 장면이었다. 아리마의 입술은 카네키의 기억보다 훨씬 더 뜨겁고, 축축했다. 카네키는 아리마에게 매달리듯 붙었다. 이것은 분명히 마지막이었다. 다음은 없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카네키는 두 사람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차가운 소나기를 상상했다. 이대로 스며들어 가면 좋겠어. 그렇게라도 평생 함께하고 싶어. 하지만 그들에게 쏟아지는 것은 소나기가 아니라 전쟁의 뜨거운 피였다.

하아…….”

누구 것인지 모를 호흡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카네키는 혀로 제 입술을 훑었다. 눈물맛이 났다. 둘은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하얀 꽃잎이 엉망으로 짓밟히고 흩어졌다.

이젠 끝이구나.”

그렇군요……. 안녕히 계세요, 아리마 씨.”

안녕, 하고 아리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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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진단메이커- 연성문장 #도쿄구울 re: 코쿠리아 침입 직전의 이야기

 

 

필수불가결

 

Y A G I

 

   “우타.”

   “, .”

   우타는 고개만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전등이 까맣게 꺼진 우타의 작업실이었다. 요모는 손끝으로 우타의 작업대를 매만졌다. 어둠 속에서 가면들이 두 사람을 텅빈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가끔,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나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

   “장난치는 거 아니야.”

   “나도 장난치는 거 아니야.”

   우타는 입 꼬리만 말아 올려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타의 눈동자는 요모를 미동 없이 보고 있었다. 우타는 잠시 시선을 유지하다 다시 작업물로 고개를 돌렸다.

   우타는 요모가 왜 갑자기, 이 작업실로 찾아왔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척안의 왕 어쩌고 하는 문제겠지. 참 요모가 그런데 관심이 있는 줄 전혀 몰랐는데 말이야. 역시 카네키 켄, 그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까.

   툭, 하고 샤프심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타는 샤프의 꽁무니를 꾹꾹 눌렀다. 결국 나는 렌지에게 그 정도 가치도 못 가지는 사람이라는 거잖아.

   “너는피에로는 뭘 계획하고 있는 거지?”

   “말했잖아 딱히 생각하고 있는 건 없다고. 그냥, 재밌어 보이는 판에 가서 노는 것뿐인데, 우리 렌은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구실까.”

   우타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질투니, 독점욕이니 하는 것과는 관계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건 뭘까? 알 수 없었다. 우타의 감정이란 것은 항상 일그러져 있어서, 우타 본인조차 그것의 정체를 가늠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

   가늠하려 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고 하는 편이 정확했다. 우타는 그저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존재였으니까. 우타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 구울로서 최고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목숨, 재밌게 살아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고, 그런 건 난 모른단말야.

   “우타, 네가 이러면 나는너와 반목할 수밖에 없어.”

   “어려운 말을 쓰네, 요모 렌지.”

  우타는 의자를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의 입술은 평소처럼 꾹 다물어져 있었다. 전반적으로 평소와 별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렌지는, 지금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지.

   “나는 카네키를 구하러 간다. 하지만 나는 그가 척안의 왕이 되는 것은 반대야.”

   “렌이 반대한다고 없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잖아. 안 그래?”

   “정말로, 카네키를 왕으로 만들 생각인가?”

   “나를 보러 와서까지 카네키, 카네키. 참 말이 많네.”

   우타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요모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요모는 꿈쩍도 하지 않고 우타를 바라봤다. 요모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 두 발을 딛고 서있었다. 우타는 양손으로 요모의 뺨을 감싸 쥐었다.

   “한 마디로,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밤이라는 거 아냐?”

   우타는 장난스럽게 요모의 양볼을 꾹 눌렀다. 요모는 제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는 와중에도 꼿꼿이 우타를 바라보았다. 차갑지는 않은, 눈동자였다. 냉랭하다기 보다는 슬픔에 가득 잠겨 어쩔 줄 모르는 눈동자였다.

   우타는 빙긋 웃으며 요모의 몸을 돌려 작업대에 앉혔다. 요모는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 밤이라는 그 말 때문일까. 우타는 요모의 상의 아래에 손을 집어넣어 그의 허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바로 그때, 요모는 그런 우타의 어깨를 확 끌어안았다. 우타의 코끝에 요모의 냄새가 훅 끼쳤다. 우타 역시 요모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우타는 요모의 목에 고개를 파묻고 눈을 감았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우타.”

   “사랑해. 사랑해, .”

   우타여전히 계획엔 변동이 없는 건가?”

   “대답 알면서 묻지 말아줄래. 지금 대답하긴 조금, 곤란하니까.”

   “왜지?”

   “즐거운 기분이 안 된단 말이야.”

   요모는 우타의 등을 넓은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었다. 요모와 함께 하는 밤은 항상 그랬다. 항상 아침이 오지 않길 바랐다. 아침이 오면 지난밤의 일들이 모두 없어져버리는 것만 같아서. 우타는 항상 그랬다.

   오늘은 더더욱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우타는 요모의 가슴을 가볍게 밀어 그를 떼어냈다. 그러곤 부드럽고, 건조한 입맞춤을 했다.

-

 

글 쓰기 싫어서 진단메이커 휘리릭 돌리고 가볍게 단문 쓰기

 

#우타요모 #요모가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

 

잃어버린다는 것

 

Y A G I

 

 

우타는 요모에게 간혹, 기회만 된다면 요모를 버리고 다른 사랑을 찾아갈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우타는 자신도 자신의 속마음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땐 분명히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말했을 텐데.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후회뿐이었다.

우타는 요모의 집 현관문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비밀번호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타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요모는 여태껏 쌓아왔던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우타에 관한 기억을 포함해서.

우타는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대신, 초인종을 눌러 요모를 불렀다. 요모는 금방 문을 열었다. 요모는 우타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무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타가 기억하던 요모는 조금 더 첨예하고 위태로웠던 남자였는데, 지금의 요모는 꽤나 편안해 보였다. 우타는 그것을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오늘도 오셨네요.”

. 걱정되니까, 아무래도.”

우타는 태연하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그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우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타는 신발을 벗고 요모의 방으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원룸이었다.

기억을 잃은 요모가 처음 이 방에 도착했을 때, 그는 방에서 낯선 사람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냄새마저 낯설게 된다는 것일까. 그런 요모가 어떻게 자신의 냄새를 뒤따라 자신을 찾아왔는가.

우타는 요모에게 과연 어떤 존재였는가.

연락도 없이 우타가 찾아오는 것은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만남은 종종 그렇게 이뤄졌다. 우타는 그날도 그런 줄만 알았다. 평소처럼 조금 날이 서있을지도 모르는 말들을 요모에게 뱉으려는 찰나, 요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냐고. 나는 왜, 당신을 찾아왔냐고.

그땐 장난인 줄로만 알았지…….

컨디션은 좀 어때?”

몸은 괜찮아요. 아직, 이 얼굴이 낯설긴 하지만요.”

곧 익숙해질 거야.”

우타우타 씨.”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요모와 달리, 우타는 요모의 침대에 풀썩 걸터앉았다. 지금은 요모보다도 우타쪽이 이 방이 더 익숙할 터였다. 당연하지. 이 침대에서 요모랑 뒹군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얇은 벽을 탓하며 신음소리를 죽였던 기억들, 달뜬 숨소리만으로 서로를 충분히 자극할 수 있었던 그런 날들, 그런 것들이 지금의 요모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남아있는 것은 우타가 겪어보지 않았던 요모였다.

우타는 요모를 사랑했던가? 지금까지 우타는 자신을 즐기는 존재로 생각해왔다. ‘연인이니 사랑이니 하는 단어들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의 쾌락을 최고로 좇는 존재라고. 요모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져온 것 역시, 요모가 자신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을 보면마치 우타가 요모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우타는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우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우타 씨, 우타 씨 하는 건 이만 그만둬 주지 않을래? 편하게 이름 부르라고.”

하지만아직 저에겐 낯선 걸요. 우타 씨는.”

고집이 센 것만은 바뀌지 않았군. 우타는 속으로 쯧, 혀를 찼다. 우타 씨라니. 요모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기억이 돌아오면 내가 이때를 평생 놀려먹을 줄 알라고, 요모 렌지. 우타는 그 말을 입속으로 씹었다. 쓴맛이 났다.

제가 왜, 우타 씨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다른 건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심지어, 저 자신마저도요.”

…….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건데.”

저랑 우타 씨가,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고 그랬죠? 그냥 아는 사이라고.”

우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인 관계라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섹스 파트너 이상 연인 미만인 관계가 맞았으려나. 더더욱 우타 자신은 기회가 되면 요모를 떠날 생각을 했다는 걸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가끔씩은, 우타 씨를 기억하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왜지?”

우타 씨랑 같이 있으면 어쩐지 편안하거든요. 사실 기억을 잃고 나서는 항상 불안한 상태였어요. 자신의 존재라는 것마저 희미해진다는 건그런 거겠죠. 하지만 우타 씨랑 있으면, 그런 걸 잊을 수 있달까…….”

요모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우타는 요모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요모의 목소리는 깊은 호수의 한 조각을 떼어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요모는 알고 있을까. 그 목소리가 우타를 설레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그래서, 우타 씨랑 제가 연인이나 되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착각이었나 보네요.”

요모, 잠깐 이리 와 볼래?”

우타는 손바닥으로 침대를 툭툭 건드렸다. 요모는 무릎에 손을 짚으며 일어섰다. 우타는 쭈뼛거리는 요모의 손을 침대로 끌어당겼다. 예상외로 요모는 순순히 끌려왔다. 우타는 자신도 요모처럼 자기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타는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요모가 기억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때의 우타는 모든 것에 확신이 있었다. 요모는 우타의 위에 얹히듯 끌려왔다. 이제 우타에게 남은 것은 충동밖에 없었다.

우타는 요모의 목을 껴안으며 요모에게 입을 맞췄다. 요모는 우타를 피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행동이었다. 우타는 요모의 입술을 깨물고, 혀를 얽었다. 그럴수록 요모는 우타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붙었다.

이렇게 하면 생각날지도 몰라.”

아직 생각 안 나니까…….”

두 사람의 말은 거친 호흡 속에서 아주 짧게 이어졌다. 달큰하게 달아오르는 숨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른 채,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입술을 다시 찾았다. 지금까지 키스 없이 보낸 시간을 보답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타. 우타는 저를 사랑했나요?”

잘 모르겠어.”

그럼 지금부터 사랑해줄 수는 있나요?”

그것도 잘 모르겠어.”

그럼 한 번 더 키스해주는 건요?”

그건, . 할 수 있어.”

우타는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있었다. 요모는 우타의 위에 올라타 부드럽게 우타의 손목을 붙잡았다. 우타는 이대로 요모를 사랑하게 되어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부터 요모를 사랑하고 있던 걸까. 아마 이것은 우타가 평생토록 내리지 못할 질문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사랑이라고 정의내리지 못할 것이어도 우타는 상관없었다. 우타는 어쨌든 자신의 곁에 요모만 있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우타는 아마 요모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상실이라면, 우타는 그래도 요모를 사랑하고 있을 터였다.

나를나를 가장 먼저 찾아줘서 고마워, .”

, , 하는 소리를 내며 요모는 우타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볐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아 엄청 단문......

뭔가를 더 써보려 했으나....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는 딱 이 정도 분량밖에 나오질 않네요. 더 뭔가를 붙이면 지금보다 글이 엉망이 될 것 같아서.... 음음 아무튼. 기억을 잃는다는 것에 대해서 더 할 말이 많을 게 분명한데 이 정도 밖에 풀어내질 못해서 아쉬움이 크네요.

#카네토우

 

 

깊은 눈물의 세계

Y A G I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내 주위를 지키던 사람들은 전부 언젠가 떠나갔으니까. 사실 자신의 친구니, 가족이니, 연인이니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는 영원히 곁을 떠나고 말 것이란 것을 모두들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있을테지. 그러니까 모두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 키리시마 토우카는 그 끔찍한 사실을 깨달았던 어느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도무지 공부가 되지 않는 날이었다. 수험 공부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나를 현실에 잡아둘 수 없었다. 카네키 켄이 떠났다. 나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내게는 그를 잡을 이유도, 권리도 없었다. 대신에 하늘에선 자꾸만 눈이 내렸다.

   차가웠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 때 카네키 켄, 너의 고백을 받았어야만 했나? 그랬더라면, 나는 너를 잡을 수 있었을까? 다시 너와 함께 안테이크로 돌아가 평소처럼 지낼 수 있었나?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을 수 있었나? 나는 다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길 수 있었는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미래는 언제나 함부로 찬란했다. 책을 덮고 스탠드를 껐다. 방 안이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 전에 침대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숨이 막혔지만 여전히 눈물을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울어봤던 적은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옛날 옛적의 기억들이 으레 그렇듯이 눈물의 기억마저 미화되어버렸는지 어쩐지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천장의 무늬를 열다섯 개 째 따라 그리고 있었다. 무늬 하나하나에 카네키 켄에게 했던 말들이 담겼다. 언제부터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 건지 찾고 싶었다. 그 기억만 도려내면 지금의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모든 순간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처음엔 분명히 싫었는데. 당장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싫었는데.

   카네키 켄을 바라보면 자꾸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어찌 할 줄 모르고 삶의 물결에 휩쓸리기만 했던 무력한 모습이었다. 그 때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었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조차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분명히 눈물도 많고 사랑도 많았던 것 같은데.

   나는 인간이 싫었다. 인간은 내 삶의 부분들을 앗아가기만 했다. 그래서 인간이었던 그 녀석도 싫었다. 고소하기도 했다. 화풀이라는 걸 알면서도 인간인 그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주 조금은 즐거웠다. 인간은 그래도 싸. 인간이니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었으니까. 카네키 켄이 인간과 구울의 어중간한 삶에 익숙해졌을 무렵, 나는 인정했다. 그가 더 괴로워하길 바랄 수 없다고. 그러기엔 그는 너무 좋은 녀석이라고.

   구울은 죄가 많은 생물이었다. 나는 카네키 켄이 구울이 된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 좋은 녀석의 삶에 어째서 이런 중죄가 끼어들었어야만 했는지. 카네키 켄 본인은 아마 내 생각을 극구 부인할 것 같지만. 짧은 웃음이 나왔다. 그 모습이 조금은 귀여울 것 같아서 다음에 보면 너는 좋은 녀석인 것 같다고 꼭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마음이 바뀌지는 않았을지 먼저 물어보기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만나면. 나는 눈을 감았다. 공기 중에 그의 냄새는 없었다.

   내일이 오면 나는 또 나의 삶을 살게 될 것이었다. 학교에 가고, 요리코의 음식을 먹고, 수험 공부를 하고, 그런 일상을. 카네키 켄의 일상은 어떻게 되어버렸을까.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그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알던 카네키 켄은 이미 이 세상에서 없어져버렸다. 그는 여전히 다정할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남을 배려하고, 남의 흠을 덮어주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나를 사랑해줄 수 있을 것인가.

   주먹으로 가슴을 세게 쳤다. 얼얼한 통증이 왼쪽 가슴을 때렸다. 그래도 자꾸 나는 가슴을 쳤다. 그러고는 몸을 둥글게 말고 그 주먹을 꼭 껴안았다. 심장이 아팠다. 심장까지 내 주먹이 닿지도 않았을 텐데 자꾸 심장이 아팠다.

   솔직히 겁이 났다. 카네키 켄이 죽어버릴까봐. 내가 알던 카네키 켄이 이미 죽어버렸을까봐. 그는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의 눈에는 너무 많은 슬픔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되었을까봐 겁이 났다. 아마 나에게 두 번의 기회란 없을 것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하지만 항상 그랬듯이, 포기하기는 너무 힘들었다.

   어물어물 잠이 떨어지고 있었다. 자고 싶지 않았는데 몸은 그게 아니었을지도. 최근에 무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카네키를 떠나보낸 이후로는 더 그랬지. 일상에 생겨버린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그 후폭풍이 몰려오는 것인지. 그래, 차라리 이대로 잠들어버리면또 내일이 오니까…… 괜찮을지도, 몰랐다.

 

   꿈을 꿨다. 카네키 켄이 나를 보고 있었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이 곧 내 얼굴 위로 떨어질 것 같았다.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던 그가 살짝 웃어보였다. , 예쁘네. 꿈속에서도 입술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되게 얇아보여서, 입술이 막 반짝반짝 하는 것 같고, 그런 것 같고.

   “깨울 생각은없었는데.”

   “아냐, 나 안 깼어…….”

   그의 목소리는 왠지 잠겨 있었다. 나는 팔을 뻗어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의 등 뒤에서 새벽하늘이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좋은 냄새가 났다. 카네키 켄의 냄새는 뭔가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아침 햇살이 눈을 찌르면 바로 이 꿈에서 깨어버릴까봐. 나는 영원히 이렇게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 때, 너를 싫어한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 들어오는 머리카락의 온도는 딱 기분 좋을 정도로 선선했다. 카네키 켄은 낮게 웃었다.

   “알고 있었어.”

   “너의 그런 점은 좀싫을지도.”

   카네키의 눈은 여전히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꿈에서 깰 때까지 입을 맞췄다.

 

   어쩌면 카네키 켄의 냄새는 착각하기 쉬운 것일지도 몰랐다. 그의 냄새는 어디에나 있었다. 책들이 가득 꽂힌 책장에 가까이 가면 그의 냄새가 났다. 햇볕에 포근하게 말린 이불에서도 그의 냄새가 났다. 가끔은 젖어있는 이슬에서도, 오랫동안 문을 열지 않은 지하실에서도 그의 냄새가 났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에서 그의 냄새가 난다고 착각하게 되어버린 것일지도.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도리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버렸다.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눈을 떠버렸다.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폈다. 뻐근하게 굳어있던 근육들이 바르르 떨리며 몸이 개운하게 풀렸다. 어제 제대로 끝내지 못한 공부를 해놓을 기회일지도 몰랐다.

   덮어놓은 문제집 위에 올라가 있는 편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 계획은 완벽하게 달성되었을 것이었다. 펜이 어제와는 다른 위치에 놓여 있었다. 고백은 다음에 한 번 더 제대로 할게. 사랑해. 편지봉투 위에 급하게 쓴 티가 나는 글씨가 놓여있었다.

   사람의 70%는 수분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책에서 읽었다. 내 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남들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내 몸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수분은 눈물이라는 점이었다. 그것들을 모두 다 흘려보내면,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지 항상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울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편지를 제대로 읽기 전에 눈물로 다 번져버릴까봐 편지를 멀리 치워두었다. 잠옷 소매로 눈을 가리고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모두가 깊이 잠든 새벽이라 다행이었다. 나는 나를 놓아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70%를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었다.

   카네키 켄. 내가 알던, 내가 사랑했던 카네키 켄은 그 빈자리를 온전히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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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0) 2017.02.18

#우타요모우타 #섹스 장면 나옵니다(오직 섹스 뿐..) #요모가 박는다 #가벼운 BDSM #카네츠키 언급 있음(짧게)

 

 

 

 

   요모의 애무는 사실 우타에게서 배운 것이 다였기에, 그의 방식은 우타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요모는 혀끝을 세워 우타의 몸 곳곳을 핥았다. 요모가 우타의 귀 아래의 목을 핥을 때 우타는 저도 모르게 몸을 바르르 떨었다. 물론 요모가 그 신호를 놓칠 리가 없었다. 달아오른 요모의 숨이 우타의 귓속으로 자꾸 넘어갔다. 우타는 그 간질거리는 감각에 어쩔 줄 몰라했다. 안 그러고 싶은데 몸이 자꾸 움찔거리며 요모의 숨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우타는 자신을 아예 놓아버릴 수도 없었다. 요모의 명령 때문이었다.

   “괜찮아. 한 번 쯤은 봐줄게.”

   결국 우타는 요모의 손에 끈적한 정액을 쏟아냈다. 요모가 혀끝으로 우타의 유두를 자극했을 무렵이었다. 요모는 그곳이 우타의 약점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러했을까. 우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요모는 제 손 안의 것을 닦아내지 않고 능숙하게 혀로 핥아 삼켰다. 우타는 그 소리를 생생히 듣고 있었다. 웬만한 상황에서는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능청스럽다고 해야할지. 지금까지 우타가 외부에 보여주었던 캐릭터는 그런 것이었다. 우타 본인도 자신이 그런 유형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섹스를 한다면 당연히 주인님의 위치에 본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사 누군가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되더라도, 이 정도로 애가 타지는 않을 줄 알았었다.

   그 뒤로 요모는 우타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우타도, 요모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것이 요모의 벌이라는 것을 우타는 요모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타는 요모가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지 확인할 수 없었다. 우타의 페니스는 요모가 그의 정액을 삼키는 소리를 들을 때부터 꼿꼿이 서 있었다. 우타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볼 수밖에 없었다. 단단한 팔뚝을 타고 흐르는 정액과 그것을 마치 고양이처럼 핥는 요모의 모습을. 요모는 정성스레 자신의 팔뚝을 핥으면서도 시선은 우타에게 줄곧 두고 있었다. 우타가 자신의 모습을 봐주길 바라는 얼굴이었다. 요모의 깊은 눈동자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런 요모가 먹고 있는 것이 자신의 정액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은 순간 우타는 더 이상 요모를 곁눈질로도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우타.”

   “?”

   “말 편하게 해. 이제 주인님 아니니까. 가만 있어봐. 손 풀어줄게.”

   요모는 정말로 지금 이 상황을 끝내려 하는 것일까? 우타는 요모가 자신의 성기 상황을 눈치 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요모는 이미 이런 플레이에 흥미를 잃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어쩌면 요모는 원래 그들이 하던 섹스로 노선을 바꾸고자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지금 우타는 요모를 박고 싶은가?

   우타의 어깨에 요모의 손이 닿았다. 일부러 자신이 사정을 했던 손을 가져댄 것일까? 우타는 짧은 애무 상황 동안 머릿속에서 수없이 그려봤던 요모와의 섹스를 떠올렸다. 요모의 아래에서 앙앙대는 자신의 모습……. 새삼 느꼈다. 요모는 존나 잘 박을 것 같았다.

   “주인님.”

   “말 편하게 하라니까.”

   “제발, 끝까지…….”

   우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살짝 떨었다. 우타의 등 뒤에서 요모가 한숨을 내쉬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요모의 손끝이 우타의 어깨와 팔뚝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요모의 입술이 목과 등을 연결하는 등의 어느 부분에 닿은 순간 우타는 몸을 움찔하며 엷은 신음소리를 뱉었다.

   “역시 발정났구나.”

   “주인님.”

   “괜찮겠어? 지금?”

   “당장!”

   어쩌면 요모에게 우타의 의견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우타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니, 우타는 정말로 그런 상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에 우타의 물건은 벌써부터 멀건 액을 흘리고 있었다. 우타는 앞으로 고꾸라지는 그 순간에도 허리에 힘을 줘 엉덩이는 아래로 쳐지지 않도록 했다. 이제 요모의 손은 우타의 허리에 있었다. 요모는 적어도 침대에서 자비로운 타입은 아니었다.

   “하아, !”

   “…… 녹진거리네.”

   “흐읏, , 거기, 거기! , !”

   “여기가 좋아?”

   숨을 쉬기가 괴로웠다. 요모의 움직임에 따라 우타의 코와 입이 자꾸 침구에 눌렸다. 어깨에 무게가 쏠려 우타는 어깨가 자꾸 아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우타는 내색하지 않았다. 딱 좋은 정도의 불편함이었다. 쾌감이 배가되기만 하는 불편함. 솔직히 말해서 우타는 요모가 삽입을 했을 때부터 갈 것 같았다. 가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물론 그것을 요모가 허락해줄리는 없었다.

   “주인님…….”

   “우타,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나는 이래보고 싶었어. 지금까지 참느라, 고생했는데.”

   “, ! 이제는, 매일 범해, 주세요.”

   우타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떠오르는 모든 말을 지껄였다. 우타에게 이런 취향이 있었던가? 우타 본인은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상황에 집중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요모는 쉴 새 없이 허리를 움직이며 우타의 등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그럴 때마다 우타는 몸을 움찔, 떨며 더욱 강한 자극을 달라고 애원했다. 더 깊숙하게, 또는 더 빠르게. 그리고 요모는 우타의 그런 요구를 충실히 수행했다.

   우타의 물건은 이미 쿠퍼액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요모는 지치지도 않는지 쉬지도 않고 허리를 움직였다. 그는 집요하게 우타의 포인트만을 노려 자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타를 끝까지 보내지 않으려하는 것이 우타는 야속했다. 우타의 목소리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여기서 가버리면 침대 더러워지잖아.”

   “하지만하아, ! 못 참 겠흐읏…….”

   “이렇게 꼭꼭 물어대는 게 너무 좋아서, 더 이러고 싶은데.”

   요모는 우타의 위로 거의 엎어지듯 몸을 숙였다. 요모의 거친 숨소리가 우타의 몸 위로 쏟아졌다. 요모는 손을 뻗어 우타의 아랫배를 더듬었다. 우타의 페니스는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간헐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요모는 우타의 물건을 천천히 매만졌다. 일부러 귀두를 자극하지 않고 손바닥을 이용해 부드럽게 자극을 가했다. 우타는 순간 튕기듯 몸을 움직였고 그 탓에 무게중심을 잃어 잠시 잔기침을 캑캑거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요모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요모는 이제 깊고 느릿한 페이스로 우타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읏, , 제발, 이젠 못 참아요…….”

   “먼저 갈래?”

   “먼저, .”

   우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 와중에도 요모와 함께 가고 싶었다. 이 타이밍에, 같이 절정을 맞이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요모는 이미 우타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우타는 머리가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글자 그대로 머릿속 어딘가가 하얗게 날아가버리는 것 같았다. 아마 마지막 순간에 요모가 우타의 목덜미를 추켜올리듯 움켜쥐었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었다. 우타는 그 순간 무의식중에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었다.

   우타가 절정을 맞이한 이후에도 요모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요모는 우타의 손목을 묶고 있던 줄을 풀었다. 우타는 입술 안쪽을 혀끝으로 핥으며 비릿한 맛을 느꼈다.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숨이 거칠었다. 팔로 몸을 받치고 엎드린 우타의 몸이 한 번 크게 들썩였다. 요모는 이미 우타의 약점을 알아버렸고 그 포인트를 한 번 더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잠시 쉴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요모는 다음 섹스를 이어갔다. 요모는 우타가 한 번 더 정액을 쏟아놓고 나서야 처음으로 절정을 느꼈다.

 

   “결국 이불 더러워졌네.”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섹스를 할 때는 말이 많아지는 타입이군. 우타는 그 말을 속으로만 삼켰다. 그런 요모가 싫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혹시라도 그 사실을 요모가 알았을 때 어떤 이유에서든 그 행동을 멈출지도 모른다고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우타는 요모가 자신을 봐줬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 요모는 정말 밤새도록 섹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사정을 하고서도 꼿꼿하게 서 있는 요모의 물건을 보고 우타는 단 침을 삼켰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지.

   “렌지는,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카네키한테.”

   “?”

   “그쪽도 가끔 한대.”

   우타는 순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 카네키 군이? 우타는 머릿속에서 목줄을 쥐는 쪽이 카네키일 것이지, 미식가일 것인지를 재보았다. 잘 떠올리기가 쉽진 않지만어쩐지 카네키 군 쪽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얘기까지 하는 사이야?”

   “어쩌다보니.”

   그 뒤로 그들 사이에 짧고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먼저 잠자리를 준비한 것은 우타 쪽이었고 자연스럽게 요모도 그 뒤를 따랐다. 여기부터는 평소 하던 섹스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은 자리에 누워서 입을 맞췄고, 머리를 맞대고 눈을 감았다. 가끔씩은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고. 어쨌든 우타가 섹스를 주도하던 때의 이야기였다. 단순히 행동만 보자면 다시 우타에게 섹스의 주도권이 넘어온 것처럼 보였지만우타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저 느낌이었기 때문에 우타도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른 말로써 그 느낌을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이었다. 그들은 언젠가 또 이런 섹스를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그리 먼 날이 아닐 것이다.

   “목줄은 버리지 말자.”

   우타는 스스로 그 느낌에 확신을 땅땅 박아 넣었다. 우타에게 이 섹스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사실은 특별함 이상이었다. 요모는 짧은 웃음을 흘렸다. 우타는 입을 몇 번 옴질거렸다. 주인님, 이라는 말을 한 번만 더 해보고 싶어서.

   “다음에는 렌의 얼굴을 보면서 하고 싶어.”

   “좋아. 기대하고 있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요모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것은 분명히 굉장히 자극적인 표정일 것이 분명했다. 우타는 잠시 수그러들었던 자신의 물건이 단단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요모라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타는 몸을 들어 요모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그새 땀이 식었는지 이마가 꽤 보송했다. 졸려? 우타의 질문에 요모는 애매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타는 시선을 요모에게 둔 채 손만 뻗어 밀어둔 목줄을 손의 감각으로만 찾았다. 요모 역시 우타의 생각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요모는 씩 웃어 보였다. 우타는 그 입술에 입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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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우타 #섹스 장면 나옵니다(오직 섹스뿐..) #요모가 박는다 #가벼운 BDSM

 

 

   “우타. ,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뭘까?”

   우타는 몸을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무겁게 닫힌 요모의 입술을 바라보면서, 우타는 조금 전에 끝냈던 섹스를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여전히 좋았지. 렌지는 체력이 좋아서, 무언가를 해보는 맛이 있다니까. 우타는 요모의 입에서 나올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 기대되었다. 지금 이 타이밍이라면 역시, 다음 섹스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겠지.

   그들이 그렇게 다양한 섹스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해볼 만한 체위는 얼추 다 해봤을 것이었다. 욕실에서 처음 요모를 보내버렸을 때, 우타는 그의 곧은 목을 한 번 물어보고 싶은 충동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섹스 전에 자신이 허락하기 전까지 사정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지말걸,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물론 요모가 수도 없이 갈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가끔씩은 제법 축축한 목소리로 애원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주인님, 하고 말하는 거.”

   “렌지는 그런 것도 해보고 싶었어?”

   “. 우타가.”

   싱긋 웃으며 요모의 머리를 매만지려던 우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우타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혀로 입술을 한 번 핥던 요모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 하고 말하는 우타를 박아보고 싶어.”

   그 말을 하고 요모는 우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몇 번 박히다보면 한 번쯤은 박아보고 싶기 마련이지. 우타가 아예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은 아니었다. 우타 쪽에서 요모를 주인님, 하고 부르게 될 줄은 물론 몰랐지만.

   우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타는 요모의 표정이 풀린 것을 확인하고 다시 몸을 돌려 천장을 보고 누웠다. 생전 없었던 독특한 섹스가 될 것 같았고, 우타는 그것이 제법 기대되기도 하였다.

 

   “저기, ?”

   “주인님, 해야지. 안 그래?”

   요모는 손끝으로 우타의 목을 톡톡 두드렸다. 두터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검은 목줄이 퍽 어울렸다. 어디서 준비했는지, 얇은 사슬까지 달려있는 목걸이였다. 우타는 침을 한 번 삼켰다. 벌써 시작인가, 싶기도 했고 이전에 그가 봐왔던 요모와 무언가 다른가 싶기도 했다. 밧줄이 손목을 조금 파고 들었는지 벌써부터 손목이 욱신거렸다. 어차피 구울이니까 좀 다쳐도 괜찮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것이 잘못했던 것이었나. 우타는 침대에 앉아있는 요모를 올려다보았다. 요모의 눈동자에선 잔잔한 불빛이 튀고 있었다.

   “한 번 해볼래?”

   “주인님.”

   “옳지. 착하다.”

   그 말을 하면서 요모는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자신의 물건을 우타의 입술에 꾹 밀었다. 우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면서도 곧이곧대로 그의 의지에 따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타는 혀로 이미 딱딱하게 발기된 끝만을 낼름 핥았다. 요모는 그런 우타의 뒤통수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우타는 몸을 가볍게 움찔, 떨었다. 요모의 것이 강제로 입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모는 이런 상황을 기다릴 줄 알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하기 싫어?”

   “그런 건 아니지만. 그게.”

   “말이 짧네?”

   우타는 심장이 뜨끔하는 기분이었다. 우타는 지금까지 요모의 이런 모습을 생각하지 못했다. 우타가 알고 있던 침대 위의 요모는 꽤나 순종적인 편이었다. 우타의 손길을 순순히 따라 반응하고, 때로는 매달리고, 기껏해야 자존심을 좀 세우는 것이 다인 그런 스타일이었는데.

   “, !”

   우타는 자신의 입안으로 밀려들어온 요모의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요모는 본격적이었다. 본격적으로 주인이 되고자 하고 있었다. 요모는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우타의 머리를 움직이는 것을 택했다. 우타의 손목이 쓸리고 있었다. 우타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극적이었다. 내가 왜, 흥분하고 있지? 우타는 속으로 자신에게 되물었다.

   처음 요모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땐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타는 버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쪽 경험이 많은 것은 또 아니었다. 우타는 박는 것을, 그러며 자신 아래에서 달뜬 숨을 뱉어내고 있는 표정을 바라보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보통 우타는 그쪽을 더 자극적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심지어 아직 삽입이 이뤄지지도 않은 상태인데?

   요모가 우타의 머리에서 손을 땐 이후에도 우타는 스스로 머리를 움직였다. 우타의 머리 위에서 요모가 길게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우타는 뒤로 묶인 손가락을 꿈지럭거렸다. 제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조금 더 깊이 빨아들이고 싶었고, 손가락으로 요모의 허리나 허벅지를 쓰다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요모가 그것을 허락할 리는 없었다. 대신 요모는 손끝으로 우타의 머리를 가볍게 밀어내어 그의 입에서 자신의 물건을 빼냈다. 어둡게 빛나는 조명 아래서 요모의 물건이 번들거렸다. 우타는 요모를 올려다보았다. 요모는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괜찮겠어?”

   우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않을 리가 없었다. 요모는 그런 우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턱을 들어 올려 자신을 보게 했다.

   “주인님이 물으면 대답해야지.”

   “……주인님.”

   요모는 상을 줄게,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이 정도로는 상을 줄 수 없다는걸까. 우타는 입술을 축였다. 반쯤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임했던 우타도 이제는 꽤나 진지해졌다. 요모는 몸을 조금 틀어 우타가 침대 위로 올라올 자리를 내어주었다. 우타는 순순히 침대로 올라가 엎드렸다. 목줄에 달린 사슬이 절그럭거렸다. 우타는 뒷목이 약간 뻐근한가 싶기도 했다. 손을 쓸 수 없어 무릎과 어깨로 체중을 견뎌야하는 것이 조금 곤란했다. 우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신의 뒤에 있을 요모의 모습을 확인했다.

   요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누가 멋대로 이러라고 했지?”

   우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여유가 없었나? 우타는 머리를 굴렸다. 여유의 문제라기보다는 습관에 가까웠다. 우타는 삽입을 즐겼다. 서로가 이 정도로 달아올랐으면 응당 해야 하는 것이었다. 우타는 그런 면에서 애를 태우는 편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우타와 관계를 가져왔던 사람들은 모두 그랬다. 우타는 솔직히 삽입으로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것이 자신있었다.

   손이 뒤로 묶여있어 몸을 들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작게 끙, 소리를 내며 우타가 몸을 일으키려하는 순간, 요모는 손바닥으로 우타의 어깨를 꾹 눌러 그를 다시 엎드리도록 했다. 우타는 요모의 뜨거운 체온이 자신의 등 위로 드리우는 것을 느꼈다.

   “발정났나봐?”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였다. 요모는 손끝으로 우타의 척추를 천천히 쓸었다. 손 다음으로는 입술이었다. 척추뼈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려는 듯, 요모는 정성을 들여 입술을 움직였다. 우타는 요모의 입술이 자신의 등에 닿을 때마다 작게 몸을 떨었다. 요모는 개의치 않고 우타의 손목을 핥다가 가볍게 깨물었다. 육식 동물의 어금니였다.

   요모는 우타의 몸을 일으켰다. 우타의 페니스는 잔뜩 달아올라 끝이 벌게져 있었다. 요모는 우타의 앞에 마주앉아 한 손으로는 물건을 그러쥐고 다른 손은 우타의 뺨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우타는 요모를 마주보았다. 언제나 깊이 잠겨있는 눈동자였다. 옛날에 우타는 그 눈동자에 빠져들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요모는 뺨을 쓰다듬던 손의 엄지를 우타의 입에 밀어넣었다.

   “, , 하아.”

   “빨아봐. 너 이런 거 잘하잖아.”

  “하아, , 하응!”

   “내 허락 없이 가면 안 되는 건 물론 알고 있지?”

   요모는 손바닥으로 우타의 귀두부분만 지분거리고 있었다. 그곳이 우타의 감각이 가장 예민한 곳이라는 건 숱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우타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새로운 자극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평소보다 온 몸이 더 예민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우타는 속으로 지금까지 우타와 가졌던 관계에서 우타에게 했던 행동들을 조금 후회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 날 우타의 가장 마지막 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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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연기

 

   섹스를 하고나면 우타는 꼭 담배를 한 대씩 태웠다. 꼭 한 대였다. 그동안 요모는 천장을 보고 누워 새된 숨을 쉬었다. 가끔씩 우타는 렌지, 하고 공연히 요모를 불러보기도 했다. 부르는데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부르고 싶었기 때문에 불렀다고, 항상 그렇게 우타는 답했다. 담배를 끄고 나면 그들을 한 차례 더 관계를 가졌다. 평균적으로 그들은 두세 번의 섹스를 했다. 주로 요모 쪽이 지쳐 떨어졌다. 마지막 섹스를 하고난 뒤엔 우타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에프터는 딱히 없는 관계였고, 둘 다 그것에 별다른 불만을 갖지 않았다. 가끔 둘 중 하나가 껴안기를 요구하면 다른 쪽이 땀으로 미끈해진 그의 어깨를 힘을 주어 안기도 했다. 잠을 잘 때는 각자 편한 자세로 잤다. 우타는 왼쪽으로 돌아눕는 것을 선호했고 요모는 천장을 보고 자는 것을 선호했다. 결국엔 우타가 요모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이 되는데, 그럼에도 그 둘은 서로의 위치를 바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런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하고 있었다. 퍽퍽한 동거 생활이었다.

   그 두 남자는 편리성 때문에 집을 합쳤다. 실제로 그들의 삶의 질은 그들이 각자 생활을 하며 가끔 만나 섹스를 할 때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그들은 서로의 삶에 그다지 간섭하지 않으며 지냈고 이전보다 더 많은 섹스를 했다. 굳이 달라진 것을 찾자면 이제는 그들이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뿐이었다.

   우타는 자신과 식사 패턴을 맞추기 위해 이 주간 식사를 미룬 요모를 바라보며, 구울에게 있어서 식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구울에게 있어서 식사란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들에게 식욕이란 축복이면서 동시에 저주였다. 그러고 보니 요모는 더는 인간 사냥을 하지 않는다던가? 하지만 요모는 사냥을 하는 우타를 딱히 탓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식탁 식탁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식탁이라는 기물보다는 단순히 인간을 먹기 위한 공간에 더 가까웠다. 에 각자가 준비해온 인간을 두고는 자기의 식사 속도에 맞춰 인간을 먹었다.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는 그곳에 없었다.

   식사 속도는 우타 쪽이 더 빨랐다. 제 몫의 식사를 마치고도 우타는 요모를 기다렸다. 자리에 앉아 요모가 인간의 살을 뜯어 삼키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요모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우타는 요모의 식사 모습을 상상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 결과물이 우타의 작업대 바로 위의 가면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식후 감사 인사를 빼먹지 않는 구울은 드물지 않을까 하고, 우타는 항상 생각했다.

 

   요모는 집에 붙어 있기 보다는 외출하는 일이 더 많은 편이었다. 낮 시간에 우타는 주로 가게에 가 있었고 때문에 그들은 같이 살면서도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적었다. 어차피 섹스 프렌드니까. 요모는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 우타의 뒤통수를 바라보곤 했다. 자신은 우타를 사랑하는가? 확실히 우타와의 섹스는 좋았다. 우타와 자신은 합이 잘 맞는 관계였고 요모는 그런 쾌락이 이제는 즐거웠다. 그러나 그것 외에 그들의 관계에 무언가 다른 것이 존재하는가?

   그런 생각을 한 이후부터 요모는 커플들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즐거워 보이는지, 그들 사이의 관계는 도대체 무엇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요모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인간과 구울의 차이일 것이라고, 요모는 자신을 달랬다.

   동거 이후 요모의 첫 휴일에 요모는 처음으로 침대에 혼자 누워본 적이 있었다. 한낮의 햇볕이 불투명한 창문을 통해 조각나 떨어졌다. 요모는 이불에서 우타의 냄새를 찾았다.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들이쉬어 봤지만 요모는 우타 냄새랄 것을 찾지 못했다. 소설이란 것은 너무도 쉽게 거짓말을 한다고, 요모는 생각했다.

   요모의 이사 후 첫 번째 자위는 건조하게 이어졌다.

 

   요모는 언젠가 처음으로 우타를 바라보고 잠에 든 적이 있었다. 우타 쪽으로 몸을 틀어 누워선 가볍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우타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입이라도 살짝 맞춰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던 날이었다. 우리가 애인도 아닌데 무슨. 그렇지만 요모는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자신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우타를 보았을 때 요모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바로 그 침대에서 혼자 처음 자위를 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구울의 체취에는 철분 냄새가 미묘하게 섞여있기 마련이었다. 죽음과 가까이 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라고, 요모는 늘 생각했다. 그 냄새는 인간의 피 냄새와는 조금 달랐다. 인간 쪽이 달착지근한 느낌을 준다면, 구울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거무튀튀한 느낌에 더 가까웠다.

   요모는 자신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우타의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우타의 냄새는 거무튀튀하다기 보다는 달착지근한 것에 더 가까웠다. 식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요모는 자신을 달랬다. 어쩌면 섹스라는 자극 때문에 잠시 코가 비뚤어져 버린 것일지도. 어느 쪽이던, 요모 자신과 우타가 섹스의 쾌감이라는 얄팍한 것으로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우타는 담배를 한 대 더 태웠다. 자신은 아직 두 번 정도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렌지는? 우타는 흘긋 요모를 바라보았다. 웬일로 몸을 일으켜 우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가 손을 내밀었다. 담배? 우타의 물음에 요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웬일이람. 우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선선히 담배를 건넸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는 요모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우타는 요모에게 직접 불을 붙여주었다. 담배 연기가 요모에게 훅 끼쳤다. 두 사람은 조용히 담배만 태우고 있었다.

   “우타.”

   우타가 필터 부근까지 담배를 태우며 한 대 더 태울까 말까 고민을 하던 차였다. 우타는 대답 없이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의 손에 들린 담배에 재가 아슬아슬하게 붙어있었다.

   “한 번 더 할까.”

   “오늘 무슨 날이야?”

   요모는 고개를 저었다. 우타가 내민 재떨이에 재를 털어버리고 고작 반 밖에 피우지 않은 담배를 꺼버렸다. 그냥. 그 말을 하고 요모는 길게 숨을 뱉어냈다.

   마침 담배나 섹스가 고프던 차였다고, 우타는 생각하며 요모를 안았다. 우타의 혀에선 아직 연기맛이 났다. 요모는 살짝 눈을 떠 우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쿵, 심장이 뛰었지만 요모는 다시 눈을 감았다. 우타의 허리를 껴안으며 그에게 좀 더 달라붙었다. 두 명 분의 연기맛은 생각보다 금방 사라졌다. 요모는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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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 FLAKE

 

 

   요모 렌지는, 언젠가 저온 화상으로 얼룩진 누군가의 무릎을 본 적이 있었다. 난로를 너무 오래 쬐고 있었다고, 그 여성은 말했다. 거미줄 같은 실핏줄이 적나라하게 번진 것이 그의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인간이란 건 그런 건가. 요모는 제 주먹을 몇 번 쥐었다가 펴보았다. 그 주먹에 단단히 박히던 몇 개의 뼛조각과 그럼에도 다시 형형히 눈을 빛내는 동족들을 떠올렸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연약한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일까.

   요모 렌지는, 그렇다면 자신은 인간을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안테이크의 차임벨이 울렸다. 인간 손님이었다. 카푸치노 둘. 요모 렌지는 커피를 내리며 곁눈으로 그들을 흘긋 바라보았다. 누군가 덧없는 것이 아름답다 말했던가. 요모는 그것을 말한 것도 인간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끓는 물에 손을 데는 일 따위는 겪어본 적이 없었다.

   요모에게 있어 덧없는 것은 곧 다치기 쉬운 것이었고 그것은 곧 사라지기 쉬운 것이었다. 비둘기들. 그리고 아리마, 라는 단 하나의 독보적인 비둘기. 그들을 자극하면 안 된다고는 하지만. 요모는 쉬운 핑계를 대며 잃어버린 것들을 잊을 수 없었다. 비둘기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 생전의 동료들을 공격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분명 구울이란 것은 시체를 먹는 존재였다. 하지만 시체를 그렇게 욕보이는 자들은 아니었다. 그런 인간들인 주제에. 요모는 더 이상 인간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살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외로움일 수도 있었다. 구울의 장례를 치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까. 요모가 아는 구울 중에서 늙어 죽은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안테이크의 점장이라는 구울이 그 나이가 되도록 살아있는 것은 그가 인간과 가까이 살아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리스크를 껴안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수많은 구울들과 관계하면서도 인간들 사이에서 부대낀다. 요모 렌지는 그만한 구울이 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저는 접대랑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요모 군.”

   점장의 눈빛은 제법 아팠다. 꿰뚫리는 듯한 감각. 요모는 그런 눈길을 받을 때마다 자신의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이런 눈빛을 가진 사람을 본 것 같은데.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이상한 선글라스를 낀 녀석이었지. 요모 렌지는 그 눈이 제법 불쾌하다고 느꼈으나 그것을 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점장의 눈빛을 오롯이 받았다. , 보거라. 당신이 내 안을 봐도 볼 수 있는 것은 없을 테니, 하는 속이었다.

   “가게 일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지. 대신 다른 일을 도와줄 수 있겠나?”

   요모 렌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창밖에선 이른 저녁부터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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