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소재 #수인물
YOMI 1
눈은 차갑다. 새삼스레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몸을 웅크리고 앉아 발을 꼬리로 덮으면 어떻게든 버틸 만은 했다. 눈이 참 많이 오는 동네라고, 집 뒤뜰에서 맨몸으로 눈을 맞으며 생각했다. 아버지가 없는 존재라고 여기면 마음이 편했다. 사실 그것과 그렇게 다른 관계는 또 아니었다. 아버지라기보다는 주인님에 가까운 관계였고 나는 그저, 멍멍, 짖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애완’동물이라는 건 어쩌면 하나의 완구처럼 다루어지는 것이 숙명일지도 몰랐다. 무척 아껴 품에 끼고 있는 완구든 멋대로 먼지 구덩이에 뒹구는 완구든 그것이 주인과 동등하지 않다는 사실은 똑같았다. 같이 산다기보다는 길러진다는 것에 더 가까운 관계였고 길러진다는 것은, 무언가 채무 관계가 존재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애완동물은 애교를 떨거나 얻어맞거나 해서 그 채무를 갚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나는 그것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해서 내게 좋을 것은 딱히 없었다.
이름이라는 것은 단지 새로운 닉네임을 다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이라는 것은 새로운 페르소나일 뿐이며 그런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부여받아야한다는 것은, 나는 어쨌든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겠지. 내가 수행해야할 역할은 ‘유우(有宇)’라는 존재였다. 내게 부여된 새로운 페르소나는 귀엽고, 싹싹하고, 눈치도 제법 빨라야하는, 애완동물이었다.
“들어와라.”
“네에.”
유리문이 날선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버지는 문만 열어두고 몸을 돌려 사라졌다. 들어가기 전에 털에 붙은 눈은 깔끔히 털고 들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맨몸으로 눈발에 나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해야 해서 그렇게 했다. 이제야 발이 시렸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곧 따끔따끔 간지러워지겠지. 나는 그것을 더 참기 힘들어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발을 긁을 수 없었다. 긁으면 또 짐승 같은 짓을 한다고 혼만 날 것이었다. 나는 자신이 인간보단 짐승에 가까운 동물이 아닌지, 생각했다.
“내일 놀러나간다고 그랬지?”
“네. 친한 친구 만나려구요.”
“그래, 잘 다녀와라.”
아버지는 손수 옷을 입혀주셨다. 언 발을 데워놓은 수건으로 덥혀주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만히 아버지의 손길을 따르고 나면 아버지는 꼭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잘했다는 거다. 무엇을 칭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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