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젤
Y A G I
음식물쓰레기봉투가 터져있었다. 외출을 하던 수연은 무심코 쓰레기장 쪽으로 눈을 돌리다 그것을 발견했다. 길고양이겠지. 수연은 자신의 앞으로 쭉 이어진 길을 한 번, 또 쓰레기장을 한 번 보곤 먼저 저것을 처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외출을 하는 것은 그리 급한 일이 아니었다. 아직은 해가 떠있을 시간이 길게 남은 이른 아침이었다.
수연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잠시 상태를 확인했다. 봉투의 중간이 터져있었다. 뭔가를 크게 빼내서 뜯어 먹은 흔적은 없었다. 바보 같은 고양이들. 뜯었으면 제대로 먹기라도 할 것이지. 수연은 입속말을 중얼거리며 건물의 유리문을 밀었다. 고개를 돌려 문이 닫혔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연의 방은 일층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며칠을 열리지 않은 문 앞의 먼지와, 언젠가 복도에 흩뿌려졌고 지금은 꺼멓게 말라있는 피를 수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지나갔다. 이제는 수연에게 딱히 무서울 것도 없었다. 수연은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수연이 이 방에 처음 왔을 때 음산하다고 생각했던 소리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복도에 울렸다.
수연은 쓰레기봉투를 현관에 두었다. 여분의 쓰레기봉투는 옷장 안에 들어있을 것이었다. 삼 리터짜리 샛노란 음식물쓰레기봉투. 수연은 이것이 자신만의 장례 방법이라고, 터져버린 쓰레기봉투를 새 봉투에 담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커봤자 십 리터 정도밖에 안 되는 음식물쓰레기봉투가 아니라 소각용 쓰레기봉투를 구하러 가야할 때였다. 그것도 가장 큰 것이 필요했다. 수연은 손끝을 세워 쓰레기봉투의 귀를 두 번 꼭 묶었다. 유난히 곧았던 준의 오른손 뼈의 장례식은 두 번이나 치러지게 되었다.
수연은 현관문을 열기 전에 도어스코프로 밖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별 생각 없이 이어오던 습관이 이런 시대에 도움이 될 줄은, 어린 날의 수연은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수연은 쌓여있는 쓰레기의 최대한 높은 곳에 그 쓰레기봉투를 올려두었다. 인류가 멸망한 이후에도 남아있을 거라던 비닐들이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수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 하나가 있었다. 아까 나올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죽으면서 목이 꺾인 건지, 그것은 고개를 이상한 각도로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수연이 있는 곳을 빤히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 뜯어 먹힌 코에 파리들이 들락날락거렸다.
수연은 발소리를 죽이고 그것을 빙 둘러 걸어갔다. 낮에는 다들 어디 길에 처박혀서 해바라기나 하고 있더니. 아무래도 그새 해의 방향이 이동한 것 같다고,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의 눈은 좌우를 빠르게 살피고 있었다.
세상의 제 2막이 찾아온 거야. 마치 낮 다음에 밤이 오는 것처럼. 어차피 우리 지구는 언젠가 다시 빙하기가 와서 모든 생물이 멸종할 예정이었다지. 수연과 준이 처음 만났을 때, 준이 수연에게 건넨 말이었다. 수연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연은 별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도 이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낮엔 해바라기, 밤엔 사냥을 하며 시간과 자신의 몸을 한꺼번에 죽이는 생물은 별로 되고 싶지 않았다.
수연은 마트를 뒤지는 대신 사람들이 떠나간 집을 주로 뒤졌다. 어느 집이나 보존식품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이제 수연은 잠긴 문을 여는데 꽤 선수가 되어 있었다. 수연이 사는 곳은 도시의 중심이면서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지역의 중심이었다. 빠져나갈 사람들은 진작 이곳을 빠져나갔다. 수연이 이곳에 남은 것은 부모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것에 자꾸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설치한 휴대폰 라디오 어플리케이션에선 부모의 연락이 아닌 바이러스의 조기 진압 때문에 도시가 봉쇄되었다는 뉴스 앵커의 말이 흘러나왔던 것을, 수연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수연이 부모의 생사 파악을 포기한 것이 그때였다.
라디오에선 많은 말들이 이어졌다. 지금은 소위 말하는 ‘좀비’ 사태이며 원인은 변종 바이러스로 추정된다던지, 바이러스는 체액으로 감염된다던지, 감염 후 고열을 앓다가 ‘좀비’로 되살아난다던지. 수연은 휴대전화의 전원이 꺼질 때까지 그 정보들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수연이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외부로 도망친 생존자 때문에 바이러스가 퍼져 진원지 구제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말이었던가.
수연은 원룸 근처에 있는 집부터 시작해서 샅샅이 먹을 것을 찾아 빈집을 털었다. 간혹 안에서 생존자가, 또는 좀비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었다. 수연에겐 대체로 좀비보다 생존자 쪽이 더욱 귀찮은 편이었다. 좀비야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아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수연은 생존자 중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수연이 준을 제 집으로 들인 것은, 수연이 준을 완전히 믿었던 것보단 준이 집요하게 수연을 따라다녔기 때문이었다.
준은 수연 또래의 남자였다. 수연과 처음 만날 당시만 해도 준은 단정하게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머리를 기르고 있어 그 당시 이미 어깨에 머리카락이 닿을랑말랑하던 수연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준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통조림을 모두 수연에게 건네며, 이것을 다 줄 테니 제발 자신을 거두어달라고 말했다. ‘거두어 주세요.’ 준은 분명 수연에게 그렇게 말했다. 수연은 그런 준을 분명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통조림이 있을 법한 곳만 골라 찾던 수연은 잠시 낯선 사람의 침대에 몸을 뉘었다. 자신의 집에 처음 찾아왔던 준이 느꼈던 감정일지. 수연이 두 바퀴를 굴러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 넓이의 침대에서, 수연은 어쩐 이유에선지 깨진 전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별로 푹신하지는 않네.
수연은 자신이 준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세상의 한낮은 너무 조용했다. 수연은 준의 얼굴을 그렸다. 섬세한 콧날과 불안하게 떨리던 속눈썹을. 생의 마지막에 자신에게 맞춰오던, 과거 언젠가는 보드러웠을 거친 입술을. 수연은 입맛을 다셨다. 죽이지 말걸 그랬나.
어쨌거나 자신은 준의 유언을 들어준 것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의 침대에는 여러 종류의 통조림이 올라와 있었다. 수연은 다시 한 번 더 통조림의 개수를 꼼꼼히 세곤 백팩에 차곡차곡 챙겨 넣었다. 종이 지도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더 편했을까. 수연은 미국에서 제작된 좀비 드라마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수연은 한국에서 종이 지도를 파는 곳이 어디인줄도 몰랐다. 수연은 자신이 지도를 제대로 읽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되면 감으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부터 수연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별로 불편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식량을 구하기 다소 좋은 조건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이 없는 유령 도시에서는 좀비도 떠나기 마련이었다. 전염성은 높지만 낮에는 경계 강도를 낮춰도 되는 것 역시 그나마 삶의 질을 높여준 것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은 자주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비교했다. 수연은 새로운 삶의 목표가 설정된 것을 내심 기뻐하기도 했다.
준과 함께 살기 전 수연이 주로 하던 것은 대체로 누워있는 것이었다. 낮에는 설렁설렁 음식을 조달하러 다녀왔다가 밤에는 문 앞에 엉성한 바리케이드를 쳐두고 침대에 누웠다. 수연은 똑바로 누운 채 양손을 배에 올리고 많은 소리를 들었다. 풀벌레 소리 아니면 비명 소리였다. 수연은 저렇게는 되고 싶지 않다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수연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물. 수연은 이 리터짜리 물 한 통을 일단 가방에 넣었다. 한 통을 더 넣을까 말까, 바닥에 앉아 고민하던 수연은 물 두 통이 들어간 가방을 메고 좁은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았다. 이 정도 무게라면 괜찮을까. 수연은 이 도시를 빠져나가고자 했다. 이 역시 준의 유언이었다. 준이 죽은 이 시점에서 수연이 굳이 준의 소원을 들어줄 필요는 없었겠지만.
사실 수연은 준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좁은 원룸에 둘이서 산다는 것도, 낯선 사람이 자신에게 들러붙은 것도 그랬다. 수연이 준에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라 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저 문을 닫지 않았을 뿐이었고 이것이 준에게 동의의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수연은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수연은 방에 돌아와서 준과 얘기를 할 생각이었다. 수연은 낯선 장소에서 언성을 높이는 것이 아무리 낮이라도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 그래요?
그냥요.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요.
그럼 다른 곳에 가면 되잖아요.
혼자 살고 싶지 않아요. 처음 만나는 사람을 따라가기로 결심했어요.
아니 그럼, 내 의지는요?
같이 살면 좋잖아요. 잘 할게요.
준은 그 말을 하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수연은 준에게서 받은 통조림 더미를 내밀었고 준은 그것을 보고서도 받지 않았다. 수연은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수연에게 필요한 것은 연대보단 생존이었다. 그리고 이는 수연에게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던 것이었다. 연대라는 것은 자신의 생존을 남의 어깨에 맡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수연은 준을 바라보면서 했다.
하지만 준은 일부러 수연의 그런 생각들을 무시하고자 했다. 그가 지칠 때까지 이러고 있으면 혹시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지. 그 때 그에게 잘 대해준다면 그는 자신이 있는 것이 사실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주지는 않을지. 자신은 타인 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라고, 준은 생각했다. 깡통 안에 혼자 들어가 뚜껑을 닫고 있다간 준은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수연과 준의 동거는 이렇게 순전히 준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수연과 준은 수연의 좁은 침대에서 등을 붙이고 잠을 잤다. 준이 바닥에서 잠을 잔 것은 동거 시작 후 고작 이틀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삼일 째 밤, 가로등 불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준은 슬그머니 침대에 걸터앉았고 수연은 아무 말 없이 벽 쪽으로 붙어 누웠다. 준은 거의 웅크리듯 잠을 자는 편이었다. 그날 밤, 수연은 자신의 마른 등으로 굽은 준의 등뼈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수연이 준의 이름을 처음으로 물었을 때도, 그들이 말을 놓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수연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대로 침대로 누웠다. 수연의 마지막 밤이었다. 해가 짧아지는 계절이 점점 오고 있었다. 수연은 속으로 가을장마를 걱정했다. 날이 흐리면 놈들의 활동력이 좋아지지는 않을까. 수연은 그 가능성을 얕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수연은 계속 이동을 하면서 장마를 대비해야만 했다. 수연은 여행을 하면 할수록 좀비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연은 진압 초에 정부에서 세운 바리케이드까지 도달하는 것을 일단은 목표로 하고 있었다. 바깥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주기적으로 헬기가 뜨는 것으로 보아 그쪽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장배터리로 작동되는 준의 라디오에서 바이러스의 확산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말을 준과 함께 듣기는 했지만.
수연은 준처럼 몸을 웅크리곤 잠을 청했다. 집 곳곳에 준의 냄새가 배어있다고 생각하면서. 시체 냄새가 아니라, 준의 냄새가.
수연은 전날 편의점에서 집어온 황사용 마스크를 귀에 걸었다. 시체를 처리하는데 황사용 마스크가 과연 효과가 있긴 할까, 생각하면서. 수연은 과거 영화에서 보았던, 검시관들이 검시를 할 때 코 밑에 싸한 냄새를 풍기는 뭔가를 바르는 것을 기억해내곤 치약이나 발라볼까 생각도 했다. 냄새가 섞이면 더 역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지만.
처음으로 날씨가 추워지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여름이었다면 준의 시체는 버티지 못했겠지. 그것은 바깥을 돌아다니는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지금보다 훨씬 썩은내를 풍기며 돌아다니는 좀비들. 수연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린 채로 화장실의 문을 열었다.
이 바이러스에는 항체가 존재한다고, 언젠가 준은 수연에게 말했다.
둘 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아 나란히 침대에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수연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떤 바이러스든 항체가 있기 마련이잖아. 준의 말이었고 수연은 ‘나는 문과야.’라는 대답으로 그 머쓱함을 넘겼다. 그 말을 듣고 준은 웃었다. 준 역시 문과라는 것을 그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준은 자신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준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고 준이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부모는 이미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준은 부모의 방에서 아버지의 복부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한 놈을 보았고,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고 했다. 준이 수연에게 통조림을 내밀며 거두어달라고 말했을 때, 준의 집 안방에는 좀비 셋이 나란히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준이 말했다. 수연은 굳이 준의 표정을 확인하지 않았다.
준이 수연을 따라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을 때가 언제부터였는지, 수연은 기억하지 못했다. 수연은 그저 준이 머리가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거울을 보며 작게 투덜거렸던 일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준은 수연에게 자신도 수연처럼 머리를 묶을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빨리 자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체모가 자라지 않는다는 걸 지금까지 소소한 축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그게 아쉽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준의 죽음 이후 수연이 이 화장실을 연 것은 이번이 딱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준의 호의에 의해서 준의 살을 발라내기 위함이었다. 이 역시 준의 유언 때문이라고 해둘 수 있을까. 준은 화장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준은 다리가 긴 편이었다. 그 긴 다리를 접느라 수연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수연은 오돌토돌한 준의 등뼈를 손끝으로 만졌다. 손으로 준의 등을 만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은 준의 얼굴을 덮고 있는 앞머리를 준의 귀 뒤로 넘겨주었다. 생전부터 준이 곤란해하던 것이었다.
수연은 자주 집 밖의 좀비들과 자신의 다른 점을 생각했다. 그들과 다른 점이 없다는 말은 수연에게 있어서 꽤 불쾌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 말을 수연에게 하지 않았음에도 수연은 스스로 그 말을 떠올리곤 괴로워했다. 수연이 준의 시체를 화장실에 처박아두고 나오지 않은 것도 그와 같은 이유였다. 수연은 자신이 훼손시킨 준의 시체를 직시하는 것이 힘들었다. 아무리 준의 유언이 있었다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선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 수연을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수연은 준의 시체를 하얀색 소각용 쓰레기봉투에 밀어 넣었다.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는 준을 넉넉하게 담고 있었다. 수연은 봉투를 눌러 공기를 빼고 쓰레기봉투의 귀를 묶었다. 그러곤 준을 안아보았다. 팔뚝이 묵직하게 눌렸다. 무겁다고,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의 마지막 식사는 준의 심장이었다. 수연은 그래도 낮에는 가스버너라도 쓸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를 생각했다. 처음 준의 팔뚝살을 잘라내어 먹었을 때 그것을 생으로 먹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수연은 비위가 약한 편이었다. 먼 과거에 먹어보았던 육회를 떠올리려 했다. 그러나 털도 없이 민숭민숭한 사람의 살가죽은 왜 이렇게 역겨운 것인지. 수연은 눈을 질끈 감고 몇 번의 헛구역질을 했다.
수연은 준의 고기를 토해내고 싶지 않았다. 준을 자신의 영양소로 완벽하게 흡수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 낸 방식이 조리를 하는 것이었다. 수연은 자취를 시작하고 얼마 쓰지 않은 식칼을 꺼내 지방 부분을 잘라내며 생각했다. 이것이 준의 고기라는 것을, 생명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수연과 준이 항체에 관한 얘기를 했던 적이 한 번 더 있었다.
준은 수연에게 수연을 한 번만 안아 봐도 되겠냐는 말을 했다. 수연이 침대 위에서 준에게 등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수연은 몸을 똑바로 하곤 준을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준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비치고 있었다. 수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항체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게?
글쎄.
죽은 사람의 피에 자신의 피를 섞어보면 된대. 피가 엉기지 않으면 항체가 있는 거래.
라디오에서 그랬어?
응.
그래서 그걸 왜 말하는데?
수연은 몸을 일으켰다. 준의 얼굴이 어둠에 가려져있어 수연은 준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준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수연은 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준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기 전부터 수연은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수연을 좋아해.
나 게이 아니야.
알아.
준은 몸을 옮겨 수연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붙었다. 수연은 그 거리에서도 준의 호흡이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연은 준의 눈에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가 궁금했다. 자신이 준을 보는 것처럼, 아무 표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까맣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수연은 준이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준의 입술은 수연의 손바닥 아래서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소리 없이 오물거렸고 수연은 손바닥에 닿아오는 준의 입김 때문에 손을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일 죽을 생각이야.
수연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준의 말이었다.
심장은 어떻게 조리를 하면 좋을지 수연은 막막했다. 아무래도 굽는 것은 곤란할 것 같아 수연은 일단 냄비에 물을 받아 그것을 삶았다. 수연은 순대를 시킬 때 간도, 허파도, 심지어 피순대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동물도 아니고 사람의 심장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보다 크지 않은 사람의 심장이 냄비 속에서 익어가는 것을 보며 수연은 긴 숨을 내쉬었다.
어느 부위를 얼마나, 어떻게 먹어야 먹는 사람의 몸에 항체가 생기는지는 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심지어 준은 항체가 있는 사람을 먹으면 항체가 생긴다는 말도 낭설일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라디오에서 나온 남자의 사연은 항체가 있는 사람을 먹으면 항체가 생긴다, 그 뿐이었다. 준은 심지어 그 남자도 사실은 항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했다. 수연과 준에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수연은 준의 시체를 먹었다. 바글바글 끓는 물을 보며 수연은 준이 자신에게 일부러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푹 삶아진 심장은 순대를 먹으며 설핏 보았던 간이랑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수연은 뜨거운 준의 심장을 두껍게 썰었다. 심장을 썰며 이미 썰어둔 것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퍽퍽했다. 수연은 자신이 잘못 조리한 것이 아닌지를 문득 생각했다. 통조림 속 음식들도 한 때는 살아 움직이던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수연은 어색해하기 시작했다. 퍽퍽하게 잘못 조리된 심장과 통조림 속 죽어있는 고기의 느낌은 분명 달랐다. 먹고 있는 것이 준의 심장이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통조림 인생을 살아왔던 수연에게 그 판단을 맡기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수연은 준에게 항체가 없어도, 자신에게 항체가 생기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항체라는 건 좀비가 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뿐이니까. 항체는 사람을 죽지 않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수연은 살아남고 싶었다. 수연은 준의 입술과 가벼운 호흡을 느끼고 난 다음날 준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준은 조용히, 자는 듯이 누워있었다. 수연이 눈을 감겨줄 것도 없었기에, 수연은 준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그 때, 준의 유언을 들어주자고 결심했다.
수연은 쓰레기봉투 안에 들어있는 준의 시체를 껴안았다. 어쩌면 준은 특이한 성벽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조히스트라던가, 아니면 그것보다 더 한 무언가가 준의 마지막을 잠식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준은 수연을 만난 시점에서 이미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예의 쓰레기장에 준을 내려놓으며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이 이제 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길고양이가 준을 뜯어먹지 않기를 비는 것뿐이었다.
수연은 쓰레기장에서 등을 돌렸다. 좀비 하나가 머리가 터진 채 하늘을 보고 누워있었다. 예전의 수연이라면 그것을 빙 둘러갔겠지만 지금의 수연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발을 옮겼다. 동질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것으로 생명을 유지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연은 명복을 비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좀비의 시체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골목보다는 확실히.
수연은 무심코 거기까지 말하곤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준과 지낸 탓에 습관처럼 생각하던 걸 말한 것이었다. 수연은 자신에게 몰린 시선을 느꼈다. 낮에는 해바라기를 위해 큰길에 몸을 붙이고 있는 좀비들이 많았다. 수연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좀비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초점이 흐리지만 어딘가 집요한 시선이 수연의 몸을 훑었다. 수연은 좀비들의 발이 얼마나 빠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낮이니까 방해요소가 많지 않을까 생각하며 천천히 옆의 건물로 발을 옮길 뿐이었다.
좀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수연은 생각해보았다. 그들은 단지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인지, 애초에 그것을 삶이라고 할 수 있는지 수연은 알 수 없었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지는대로 살고 있는 것뿐일까.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인생과 그들의 인생을 등치시키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수연은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그러고 어떻게든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연은 카운터에 남아있는 물건들을 매대 쪽으로 던지며 좀비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젠 외부의 좀비들이 이 소리를 듣고 몰려들기 전에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 자체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수연은 앞으로의 길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큰길만 따라 갈 것이라지만 자신에게 그런 것이 가능할지, 수연은 확신할 수 없었다.
준을 만나기 전엔 수연은 그냥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맹목적인 것이었다. 거기에는 맛있는 걸 먹고 싶다거나, 도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준은 어째서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을까. 준은 원래부터 한 장소에 있는 것을 갑갑해하던 사람일지도 몰랐다. 수연은 자신은 원래 준의 모습이 어땠는지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연은 세상이 이렇게 변했으니, 그런 건 별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수연은 그것을 후회했다. 준과 함께 살 때 조금 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둘걸, 싶었다. 수연이 본 준은 그저 어딘가 약간 이상한 동거인, 그 정도였다. 그 정도의 감상밖에 남아있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건물 밖으로 수연은 거리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정돈된 거리란 얼마나 무해한 것이었던가. 사방에 깔린 피냄새와 시체냄새, 사람들이 던진 물건들과 깨진 술병들을 수연은 밟으며 지나갔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온갖 냄새가 수연을 스치고 지나갔다. 수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르지만 어딘가 들어갈 곳을 찾을까 싶기도 했다.
야, 황수연! 너 거기서 뭐해!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수연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연에게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수연은 곧 살짝 열린 빵집 문으로 얼굴만 내보이고 있는 남자 하나를 발견했다. 남자는 손을 크게 휘두르고 있었다. 수연은 그에게 가까이 가서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같은 대학에 다니던 선배였다. 이 선배가 이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었던가. 수연은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교우 관계가 별로던 그가 그 사실까지 알고 있을리는 없었다.
너 부르다가 좀비들한테 죽는 줄 알았다, 야.
좀비도 별로 관심 없던데요, 선배.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아무튼 잘 지냈냐?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이 동네에 남아 있을 줄 알았다니까.
남자는 대화에 목이 마른 것 같아보였다. 수연은 빵집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남자는 굳이 그런 수연은 손목을 잡아 끌어 오븐이 늘어서 있는 안쪽 방까지 데리고 갔다. 이 남자는 예전부터 그랬다. 좋게 말하면 겉도는 사람을 놔두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호흡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수연도 남자를 별로 좋게 평가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수연은 조금 기뻤다. 그것은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였다.
남자는 셔츠 소매를 접어 올리곤 맨바닥에 그대로 앉았다. 수연은 남자가 입은 셔츠가 꽤 깔끔하다는 것에 조금 놀라며, 저도 남자를 따라 앉았다. 남자의 마른 손목뼈를 수연은 굳이 의식하지 않았다. 자신의 것도 비슷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제 앞에 자리 잡은 수연의 양손을 잡곤 흔들었다. 그것은 남자 특유의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남자가 유난히 손에 땀이 많은 편이 아니기만 했다면 썩 괜찮은 인사법이었을 것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선배는 빵집에서 지내는 거예요? 예전부터 빵 좋아하더니.
내가 빵을 좋아해서 빵집에서 살겠냐. 이 근처가 먹을 거 구하기 쉬우니까 여기서 그냥 죽치고 있는 거지. 나 살던 곳에서 시내까지 나오려면 힘들다고.
선배 어디서 살고 있었죠?
학교 근처 원룸촌에서. 거기는 다 원룸밖에 없고, 그 근처 편의점은 다 털렸거든.
수연은 그 근처 편의점을 털어버린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남자와 수연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남자는 자신이 학생회장이었던 누구를 사랑했던 일이나, 모두가 싫어했던 교수의 욕을 했던 일을 말했다. 대부분 수연이 쉽게 대응하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수연은 어쩌면 선배는 그냥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둘 사이의 정적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래서… 어디 가고 있었냐? 먹을 거 찾으러 가면 내가 좀 나눠줄게.
선배잖냐, 라고 남자가 덧붙였다. 수연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 동네를 빠져나가 보려구요.
왜? 밖에 나가면 뭐라도 다를 것 같아서? 바깥 사정 잘 알지도 모르면서 막 나가지 말어라. 그냥 몸만 상하면 나도 안 말릴 텐데 너도 죽어서 저런 꼴 나고 싶지 않을 거 아냐. 너 지금까지 잘 지내왔으면 그냥 가서 살던대로 살어.
누가 같이 좀 나가자고 해서요.
수연은 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만약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면 준은 그것을 싫다고 말할까? 수연은 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음에도 어쩐지 준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연은 더 준의 유언을 이뤄주고 싶었다. 감정적인 문제가 컸다.
수연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문득 가방을 풀었다. 수연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통조림 참치였다. 수연은 남자에게 그것을 건넸다. 남자는 그것을 받아들지 않았다. 수연은 그것이 준과 자신이 처음 만났을 때를 보는 것만 같아 슬쩍 웃음을 지으려다 말았다. 수연은 바닥에 통조림을 두곤 등을 돌려 빵집을 나섰다.
남자 말대로 수연은 바깥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보균자로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잘 알았고, 만약 준의 말대로 정말 항체가 생겼다면 정부 차원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수연이 길을 걷는 동안 준은 썩지 않는 비닐봉지 속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었다. 수연은 언젠가 준의 살이 썩어 문드러져도 그 비닐 안에 모든 것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생각했다. 언젠가 수연이 그것을 되찾으러 올 날이 올 수 있을까.
수연은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연은 익숙지 않은 침대에 몸을 눕혔다. 수연이 들어오기 전에 어떤 여자가 살고 있었을 방이었다. 수연은 극세사 이불에 몸을 넣었다. 여자의 검은 코트가 의자에 걸려 있었다. 음식물이 들어 있던 쓰레기들이 바닥에 널려있었으나 밤이 깊어지도록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수연은 여자의 운명이 안 좋은 방향으로 끝났으리라 짐작했다.
준의 방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수연은 낯선 방에서 준의 냄새를 찾았다. 수연은 자신이 설마 준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닐지 고민해보았다. 수연은 준을 떠올리며 몸을 둥글게 말곤 베개를 끌어안았다. 어째서 이 시점에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인지, 수연은 알 수 없었다.
수연은 자신이 준을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준이 전부터 하고 있었다면, 준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도시 밖으로 나가는 여행을 준과 함께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준이 죽지 않았더라면. 수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준이 죽고 난 이후 처음으로 수연은 눈물을 흘렸다. (71.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