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Y A G I

 

 

 

요모 렌지는 굳은살이 박인 우타의 손끝을 매만졌다. 얼핏 봤을 때는 마냥 섬세하게 생긴 손인데, 만져보면 또 그 느낌이 달랐다. 요모는 벗은 몸으로 자신을 보고 누워있는 우타의 얼굴을 잠시 살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우타의 고른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굵은 빗방울이 요란하게 컨테이너의 지붕을 때리고 있었지만 요모는 그 사이에서도 쉽게 우타의 숨소리를 걸러낼 수 있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그를 알아왔고, 안아왔기 때문이리라. 요모는 우타의 손을 쓰다듬던 것을 멈추고 잠시 빗소리에 신경을 두었다. 금세 멎을 비는 아닌 듯싶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우타가 우산을 들고 온 것 같지도 않았다. 요모는 제 우산을 우타에게 들려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타가 비 핑계를 대고 늦은 저녁까지 자신과 함께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우타에게도 우타의 삶이 있는 법이었지만, 가끔씩은 상대에게 그 삶의 궤도에서 틀어지기를 종용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특히 그것이 연인도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일 때면, 무언가 조그마한 확신이라도 얻고 싶은 그런 관계일 때면 더더욱 그렇지 않은가.

요모는 여태껏 자신이 원해 왔던 것을 떠올렸다. 어렸을 때 같았으면 아마도 복수를 가장 먼저 떠올렸겠지. 그때의 그는 증오가 뭉쳐서 태어난 존재였다. 아리마 키쇼라는 남자를 쫓긴 하였으나, 요모는 사실 그 증오가 비단 그 한 남자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닌, 이 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를 증오하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가. 세계를 증오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증오한다는 것과 같았다. 어린 요모는 그것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버린 요모는 더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항상 빛은 있었다. 이렇게 쏟아붓는 장마도 언젠가 그치는 것처럼.

장마. 요모에게는 장마 같은 것이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 증오라는 것이 그의 삶의 한 궤도를 넘어서는 일일지도 몰랐다. 속에 있던 모든 것을 쏟아내고 텅 빈 곳에 새로운 것을 담아내는, 그런 과정이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요모는 자신이 그 과정을 그래도 잘 버텨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요모는 부정하지 않았다. 요시무라 씨가 요모를 붙잡아 놓는 존재였다면 우타는 반대로 요모가 마음껏 날뛰며 쌓아뒀던 것을 해소할 수 있게 해준 존재였다. 요모가 감춰왔던 욕망들이 우타의 손을 거쳐 나름의 방법으로 (그 방법이 과연 건전했는가는 둘째로 치고) 표출되었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도 그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우타는 과연 요모를 사랑하는가. 요모는 그것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요모 본인부터가 우타를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겠는가. 요모는 그저 서로 몸을 섞으며 갈증 비슷한 것을 해소하는 이 관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구울에겐 그런 것이 더 어울렸다. 사랑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눈앞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에 더욱 걸맞은 것이었다.

렌지.”

깼어?”

, 하고 우타는 아직 잠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타는 습관적으로 요모의 품을 찾았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비가 오는 바람에 습도가 높아서 함께 살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배어 나오는 날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서로의 존재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사랑 같은 것이 없더라도, 그 행동의 근간에 약간의 불쾌함이 섞여 있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삶이란 으레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요모는 우타의 척주를 손끝으로 따라 그리며 그 살의 감촉을 다시 떠올렸다. 어쨌든 그들은 살아나가고 있었다. 그 방식이 어떠한가는 그들에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 세상에서 사는 구울의 삶이란 게, 바로 그런 것이었으니까.

비가 쏟아지네.”

오늘부터 장마래.”

렌지 살은 차갑구나.”

우타의 말에 요모는 그를 더욱 꽉 껴안았다. 그의 마른 몸이 요모의 몸에 달라붙듯 와닿았다.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뒷머리를 빗어 내리듯 쓰다듬었다. 아주 귀한 것을 다루는 마냥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우타 네 살은, 차갑지는 않은 것 같아.”

그럼. 내가 누군데.”

오늘 안 나가면 안 돼?”

렌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이야.”

비가 내리는 김에.”

나쁘지 않지. 이렇게 비를 피하는 것도.”

우타는 요모의 손을 찾았고, 그 손에 제 손을 끼워 넣어 깍지를 꼈다. 요모의 심장 박동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전해져 왔다. 살아있는 감각. 그것으로 충분한 삶. 두 사람은 습관적으로 혀를 섞었다. 빗방울은 여전히 컨테이너 지붕을 수도 없이 때리고 있었다.

 

# 낙원 이메레스

 

 

"낙원은 없어"

 

Y A G I

 

 

이렇게 도망치나요? 당신 낙원의 열쇠는 제게 있을 텐데.”

후루타는 침대에 몸을 누인 채 자신의 아래에서 빠져나간 우이를 바라보았다. 우이를 잡을 의지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이는, 그저 나른한 태도였다. 우이는 셔츠의 첫 번째 단추를 풀었다. 후루타는 여전히 고개만 돌려 그런 우이를 바라보았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어요, 우이 씨.”

이제 낙원은 없어.”

그렇게 말하며 우이는 후루타의 손목을 잡고 그의 위로 올라탔다. 모텔의 싸구려 매트리스가 불안정하게 그의 무릎을 받쳐주었다. 후루타의 위로 우이의 머리카락이 쏟아지듯 흘러내렸다. 지금껏 후루타가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여태껏 우이는 제 아래에서 욕구를 참을 줄만 알았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후루타는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전개에 묘하게 심장이 뛰는 것도 같았다. 후루타는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어머, 의외여라. 지금까지 우이 씨는 이상주의자인 줄 알았거든요.”

이상도 없어진 지 오래야.”

우이는 몸을 낮춰 후루타의 입술을 찾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촉이었다. 우이의 손 아래에 잡힌 후루타의 손목은 잠깐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마치 태연하게 우이의 혀를 받아드리는 후루타의 혀처럼, 어떠한 저항도 없었다.

우이는 그게 싫었다. 후루타가 이렇게 태연하게 구는 것도,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들을 포기한 자신도 싫었다. 어쩌면 후루타에게 이렇게 구는 것은 그 감정의 반발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우이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이 고개를 쳐드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이 현실뿐이야.”

우이 씨는 저를 싫어하지 않았나요?”

싫어해.”

우이는 씹어내듯 말을 뱉었다. 우이의 단호한 대답에 후루타는 그저 훗,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런 거로 저를 파멸시킬 순 없을 텐데요.”

상관없어.”

우이는 후루타의 손목이 생각보다 더 가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가지고 놀았던 자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은 후루타를 파괴하고 싶은가. 우이는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후루타를 사랑하는가. 그것은 확실히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는 다만 그의 욕구가 이끌리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낙원도 없어졌는데, 파멸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우이 씨는 참 기특하네요.”

그럼 어디 저를 만족시켜 보세요. 후루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이는 다시 제 입술로 후루타의 입술을 막았다.

 

'FAN-CAKE > 도쿄구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에게 꽃다발을 안겨줄게  (0) 2018.07.09
[우타요모] 장마  (0) 2018.07.04
낙원 시리즈 ~3 [아키라X히나미]  (0) 2018.06.18
낙원 시리즈~2 [아리잭리]  (0) 2018.06.16
낙원 시리즈~ 1 [무츠아우]  (0) 2018.06.13

# 낙원 이메레스

 

 

"도망치게 한 이 상황이 나빠"

 

Y A G I

 

 

아키라가 의외의 인물을 만난 것은 잠이 오지 않아서 찾은 건물의 옥상이었다. 천장에 누워있던 히나미도 아키라를 만난 것이 꽤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 없이 두 사람만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키라는 아주 잠깐 멈칫하다 히나미의 옆에 누웠다. 히나미는 그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별이라도 보고 있었나?”

그러려고 나왔는데, 별이 없네요.”

그렇군.”

아키라는 히나미의 말을 듣고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심지어 달도 없는 어두운 하늘이 아키라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 대화를 끝으로 한동안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참의 정적 이후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의외로 아키라였다.

후에구치, 궁금한 게 있는데.”

, 말씀하세요.”

너희들은구울들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으니까요.”

예상외로 바로 나온 대답에 아키라는 고개를 돌려 히나미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앳된 기운이 있는 히나미의 얼굴은 사뭇 비장해 보였다. 아키라는 아주 인상적인 것이라도 본 듯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키라가 입을 연 것은 그녀가 다시 시선을 하늘로 돌렸을 때였다.

나는 도망치게 한 이 상황이 나쁜 거라고 생각해.”

이제는 히나미가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아키라는 히나미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당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 이제는 같은 처지니까.”

그 말을 하고 아키라는 숨을 내뱉었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아니었다. 탓할 것이 있다면, 그녀의 말대로 이 상황밖에 없었다. 이런 몸이 되고 나서야 그런 것을 깨닫다니. 아키라는 자신의 아둔함에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그렇게 생각해 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키라는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는 것보다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훨씬 능한 사람이었다.

낙원은 만들어 가면 되는 거야. 그러기 위해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거잖아.”

그렇네요.”

히나미의 목소리는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아키라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구울의 기분이 나아진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이전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전의 자신은 이미 사라져버린 존재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아키라는 더는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히나미의 말에 집중했다.

우리들의 낙원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 말을 듣고 히나미가 무슨 말을 하려 하기 전에 아키라는 하지만, 하고 먼저 운을 떼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히나미는 다시 아키라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단정한 옆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세상일 거야.”

그렇겠죠.”

믿음을 가져. 너희들이 하는 건 옳은 일이다.”

너희가 아니라, 우리예요.”

히나미의 말에 아키라는 한숨을 쉬듯 웃었다.

그렇군. 우리, .”

아키라는 그 말을 음미하듯 말을 되뇌었다. 그러곤 그녀는 소리 없이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FAN-CAKE > 도쿄구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타요모] 장마  (0) 2018.07.04
낙원시리즈 ~4 [우이후루우이]  (0) 2018.06.23
낙원 시리즈~2 [아리잭리]  (0) 2018.06.16
낙원 시리즈~ 1 [무츠아우]  (0) 2018.06.13
[후루우이] Jelly Lover  (0) 2018.06.09

# 낙원 이메레스

 

 

"힘들면 도망칠 수도 있어"

 

Y A G I

 

 

죽음 이후에도 그는 떠돌고 있었다. 아리마 키쇼는 어쩐지 낯선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리마는 그 낯섦을 생각했다. 아마 자신의 뒷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특히 자신의 젊은 시절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그런 낯섦을 느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리마는 조용히 푸른 머리의 소년을 따라갔다. 아리마의 기척을 느꼈음이 분명한데도 소년은 뒤돌아 아리마를 보지 않았다. 한동안 두 사람은 그저 같은 길을 걸었다. 아리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거리였다. 여태껏 자신이 구축했던 수많은 구울 중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거리였다.

그러니까 곧 이 거리에는 죽음의 색이 넘쳐흐를 것이라는 말이었다.

소년은 소년이 겪었던 수많은 죽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큰 무언가라도 된다는 것처럼. 아리마가 보기에 그는 죽음에 집착하고 있었다. 애증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가 인정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아리마가 그 무게를 모를 리는 없었다. 아리마는 그러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진 존재였다. 아리마는 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 죽은 뒤에도 이런 것을 보아야만 하는가. 아리마는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에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런 일을 꾸민다면 신이 아니라 악마겠지. 아리마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아리마는 이 상황을 끝내고 이제는 그만 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아리마, 하고 소년을, 자신을 불렀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황폐한 눈동자가 아리마를 향했다. 아리마는 저보다 한참 작은 소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소년은 아리마를 올려다보았다.

힘들면 쉬어도 괜찮아.”

힘들지 않아.”

힘들다는 거, 알고 있어.”

나도 겪은 일이니까. 아리마는 그 말은 삼켰다. 소년의 시선과 아리마의 시선이 맞닿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시선이었다. 그 다름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리마는 잘 알고 있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어.”

소년은 씹어내듯 말을 뱉었다. 낙원이라. 아리마는 쓰게 웃었다. 과거의 자신은 언젠가 낙원 따위를 믿은 적이 있었던가. 아리마는 숨을 내쉬었다. 그는 소년을 부드럽게 안았다.

힘들면 도망쳐도 괜찮아.”

어차피 우리 앞에 낙원 같은 건 없으니까. 아리마의 말에 소년은 눈물을 쏟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 이래야 아리마 키쇼지. 아리마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은 소년의 몸을 조금 더 꽉 껴안았다.

아리마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FAN-CAKE > 도쿄구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원시리즈 ~4 [우이후루우이]  (0) 2018.06.23
낙원 시리즈 ~3 [아키라X히나미]  (0) 2018.06.18
낙원 시리즈~ 1 [무츠아우]  (0) 2018.06.13
[후루우이] Jelly Lover  (0) 2018.06.09
[우타요모] 한낮의 여름  (0) 2018.06.06

# 낙원 이메레스

 

 

"도망치는 건 비겁한 짓이야"

 

Y A G I

 

 

토오루 씨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아우라의 말에 무츠키는 고개를 돌려 아우라를 바라보았다. 사이코와 우리에를 만나기 위해 간만에 샤토에 들른 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잠시 외출 중이었다.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아우라였다. 무츠키는 소파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아우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가?”

아우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무츠키는 눈을 깜빡였다. 아우라는 잠시 시간을 끌다가 바싹 마른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어떻게 그렇게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나요.”

아우라는 사사키를 사랑하는 무츠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무츠키를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무츠키의 옆에 서서 그를 따르고 있지만 아우라는 사사키에 대한 증오를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비단 아우라 키요코의 복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본질적으로 타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아우라는 그것에 눈을 돌리려 애썼다. 자신이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생각대로 될 리가 없었다. 아우라는 그걸 알면서도 그 감정을 무시하려 애써왔다.

무츠키는 그런 아우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우라는 슬쩍 시선을 땅으로 돌렸다.

도망치는 건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해.”

자신을 말하는 것일까. 그 말에 아우라는 다시 무츠키를 바라보았다. 그때 아우라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무츠키의 얼굴이 아닌,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무츠키의 섬세한 손끝이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으니까.”

무츠키의 그 말은 더없이 감미로웠다. 나는 이런 걸 원하고 있었나. 아우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무츠키의 말대로, 확실히 도망치지 않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었다.

 

 

'FAN-CAKE > 도쿄구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원 시리즈 ~3 [아키라X히나미]  (0) 2018.06.18
낙원 시리즈~2 [아리잭리]  (0) 2018.06.16
[후루우이] Jelly Lover  (0) 2018.06.09
[우타요모] 한낮의 여름  (0) 2018.06.06
[숀토우] 여름의 햇살  (0) 2018.06.03

# 도쿄구울 전력 60분_ 섞여서 만들어진 것  # 약간의 섹스 암시가 있음

 

 

Jelly Lover

 

Y A G I

 

너를 사랑할지도 몰라.

우이 코오리의 입에서 단단히 정제되어 나온 말이었다. 우이는 그 말을 하고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후루타 니무라는 국장실에 앉아 그 반듯한 입술을 떠올리고 있었다. 달도 없는 밤이 도쿄의 거리에 내려앉아 있었다. 후루타는 거대한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퍽 나쁘지 않아 보였다. 후루타는 테이블 위의 젤리 봉지에 손을 넣었다. 그는 이번 젤리는 씹어 삼키는 대신 입속에서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인공적인 과일의 맛이 입안 여기저기에 달라붙었다. 아직 봉지 속에 젤리는 많이 남아있었지만 후루타는 유난히 그 젤리를 아꼈다.

그것은 우이 코오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랑한다도 아니고 사랑할지도 몰라라니. 후루타는 그 두 가지 말 사이의 깊은 간극을 느끼고 있었다. 참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우이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이는 여러 의미로 아름다운 존재였다. 후루타는 CCG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쉽게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곧은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이 생각보다 쉽게 부러졌을 때는 어떤 쾌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후루타는 입술을 비틀어 소리 없이 웃었다. 그 쾌감이 후루타가 우이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그의 내면을 잔뜩 휘두르고 그를 내 아래에 두었을 때의 그 쾌감.

우이 코오리와 후루타 니무라는 결코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든 섞이고 있었다. 주로 후루타가 우이의 빈틈을 벌리고 그 사이로 자신의 존재감을 끼워 넣는 방식이었다. 연기맛이 나는 몇 번의 입맞춤 이후에 두 사람은 자연스레 몸을 섞었다. 바로 이 국장실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후루타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독점욕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후루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흐트러진 우이의 표정. 후루타는 혀를 굴리며 그 뜨겁고 질척한 감각을 떠올렸다. 그런 관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이는 국장실에서 일을 벌이는 걸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후루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런 우이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후루타는 우이가 사랑 같은 걸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그가 사랑이란 걸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 그래서 사랑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걸까.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관계가 생각보다 그에겐 복잡한 것이었을까.

후루타는 입안에서 아주 천천히 마모되고 있던 젤리를 씹어 반으로 갈랐다. 처음에는 형태를 유지하려던 젤리가 후루타의 입에서 형태를 잃고 사라져갔다. 젤리의 단맛은 금방 그의 혀를 그 맛으로 마비시켰다.

섞일 수 없는 것이 섞이면 과연 무엇이 나올까.

재미있겠네요.”

후루타는 입안을 가득 채운 진득한 단맛을 핥으며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 우이의 번호는 진작 즐겨찾기로 설정되어 있었다. 후루타는 그 번호를 눌렀다. 신호 대기음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여보세요, 하고 말하는 우이의 목소리는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우이 씨. 그때의 답을 해드리려고 하는데, 만날 수 있을까요?”

후루타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바로 하려던 말을 뱉었다. 그러며 후루타는 다시 젤리 봉지에 손을 넣어 젤리 하나를 꺼냈다. 달이 없어도 도쿄의 밤은 밝았다. 후루타는 그 희미한 불빛에 젤리를 비춰보았다. 아무리 어두워도 어딘가 몸을 맡길 곳은 있었다.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많았다. 어중간한 사랑이 존재할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고교물  #펠라치오 주의

 

 

한낮의 여름

 

Y A G I

 

 

창밖의 소음이 교실로 날아 들어올 때마다 요모 렌지는 책상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운동장에서는 운동부가 한참 땀을 빼고 있었다. 매미가 요란하게 우는 여름이었다. 투명한 유리창을 통과한 햇볕이 요모의 손끝을 따갑게 비추고 있었다.

그 속에서 요모 렌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달뜬 숨을 내뱉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이제는 정말로 여름이다, 싶을 정도로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였다. 빈 교실에서 요모를 바라보던 우타의 눈빛이 전에 없이 뜨거웠던 것도 그 이유일지 몰랐다.

렌지는 덥지 않아?”

나는 별로.”

더워 보이는데.”

우타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이며 나긋하게 말했다. 에어컨도 켜져 있지 않던 빈 교실이라 확실히 후덥지근 하긴 했다. 우타는 눈을 깜빡여 희미한 열감을 털어냈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보며 손등으로 제 입술을 훔쳤다. 한차례 입을 맞춘 이후의 일이었다. 더워, 하고 말하는 우타에게 책상 위에 앉아있던 요모는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대었다.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풀었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말리지 않았다. 다만 그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매만지던 손을 아래로 치우지 않을 뿐이었다. 요모의 하얀 교복 셔츠 아래로 희미하게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꽤 더웠던 것 같은데.”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어.”

요모의 말에 그의 가슴팍에 입을 맞추던 우타가 작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요모는 우타의 숨이 간지러웠지만 딱히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우타의 둥근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그러면 왜 가만히 있었어?”

네가 그러길 원하는 것 같았으니까.”

내가 원하면 다 해줄 거야?”

글쎄.”

그렇게 말하며 요모는 희미하게 웃었다. 우타는 요모와 눈을 마주치며 그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끝이 섬세하게 요모의 허리선을 훑었다. 우타는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켜 요모의 귓가에 호흡이 많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가만히 있어 줄 거지?”

우타.”

요모는 자신의 아래로 다가오는 우타의 손목을 붙잡았다. 우타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의 뒤쪽에서 여름의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우타는 요모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그림자 뒤의 요모의 표정은 평소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우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요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타의 손은 요모의 바지 끝에 걸려 있었다.

, 그만했으면 좋겠어?”

그건 아니지만.”

그 대답에 우타는 머뭇거리지 않고 요모의 바지 버클을 풀어버렸다. 요모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교실에서 욕정을 해소한다는 것. 그것을 상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요모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찰나의 어둠 속에서 요모는 자신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런 요모를 두고 우타는 태연하게 손바닥으로 요모의 페니스를 가볍게 힘을 주어 훑었다. 요모는 몸을 살짝 굽혔다. 요모의 시야 끝에 우타의 손이 자리하고 있었다. 요모는 이번엔 눈을 조금 더 오래 감았다가 떴다. 살과 살이 스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사실 요모에게는 그 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은 요모의 사정이었고, 우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왕 시작한 거, 우타는 끝을 볼 생각이었다.

우타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발갛게 달아올라 단단하게 서 있는 요모의 페니스 끝에 우타는 축축하게 젖은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다른 살에 입을 맞추는 것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드는 건 그저 기분 탓일까. 우타는 공을 들여 요모의 것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혀로 그것을 훑어 내려갔다. 머리 위에서 요모가 낮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우타의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버티고 있었다. 이러 것은 처음이니 금방 가버릴 줄 알았는데. 우타는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저 조금 의외네,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요모는 간간이 뜨거운 숨을 뱉으며 신음을 참고 있었다. 책상을 붙잡고 있는 요모의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요모는 내리깐 우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얇은 눈꺼풀과 섬세한 속눈썹을 바라보았다.

요모는 그것만으로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요모는 앓는 듯 신음을 흘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요모는 스러지듯 우타, 하고 말했다.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우타는 시선을 요모의 얼굴로 옮겼다. 요모는 우타의 깊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우타는 부드럽게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건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다. 사실 여기서 더 참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요모는 사실 우타의 입안에 사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요모를 놓아줄 우타가 아닌 것을 요모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요모는 꾹꾹 신음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우타. , 이제.”

그러나 요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타는 으으응, 하고 비음이 살짝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감은 요모의 발끝에서부터 시작해 그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요모는 발끝에 힘을 꼭 주었다.

요모의 절정은 조용히 찾아왔다. 우타는 그것이 조금 불만이었다.

우타는 일부러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려 제 입안의 정액을 요모에게 보여주었다. 요모는 우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우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타는 그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요모의 정액을 삼켰다. 미끈하고 비렸지만 아주 나쁜 느낌은 또 아니었다. 우타는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감각이라고 생각하며, 제 머리를 쓰다듬는 요모를 올려다보았다.

나머지도 교실에서 할 거야?”

요모의 목소리는 살짝 잠겨 있었다. 우타는 소리없이 웃으며 답했다.

끝까지 가고 싶은가 봐?”

요모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돌렸다. 우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렌지는 장소 바꾸면 좋겠어?”

요모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턱을 부드럽게 붙잡곤 자신을 마주 보도록 했다. 우타의 입술 끝에는 엷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근데, 집에 갈 때까지 참을 수 있겠어?”

아니.”

요모의 말끝에는 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여름의 온도를 그대로 본뜬 키스였다. 우타는 그것을 가감 없이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혀가 얽히는 것처럼 두 사람의 몸도 얽혔고, 그것은 두 입술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적극적이네, .”

우타는 그렇게 말하며 제 이마를 요모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두 사람은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여름 햇볕은 여전히 닿으면 살이 아플 만큼 따가웠다.

 

 

 

 

여름의 햇살

 

Y A G I

 For. 시온 님

 

 

키리시마 토우카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켰다. 어느덧 여름이 가까워져 있었다. 토우카는 에어컨 리모컨을 손에서 놓고 테이블을 닦았다. ‘그 녀석이 온다고 하면 괜히 마음이 미묘해졌다. 신경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고 하면 좋을까. 차라리 자신이 왜 그를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지 모른다면 차라리 나을 텐데.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서 기분이 더욱 묘했다.

토우카는 천천히 커피를 내렸다. 뜨거운 물과 원두가 만나며 커피 특유의 향기가 온 카페에 퍼졌다. 차라리 연락을 하지 않고 불쑥 찾아오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는데. 토우카는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그쪽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생각했다. 평소처럼 불쑥 찾아오면, 기다리지도 않고 얼마나 좋아.

토우카는 그런 생각을 했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화들짝 놀라며 원두에 물을 붓던 것을 멈추었다. 내가 왜 그 녀석을 기다리고 있지? 토우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기다린 적 없는데. 토우카는 그러면서도 들어오는 손님에게 평소보다 오래 시선을 두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녀석은 어째서 언제쯤 온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을까. 토우카는 어쩌면 시온이 자신을 기다리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녀석 생각대로 움직여 줄 내가 아니지. 토우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필이면 오늘따라 더 자주 열리는 것 같은 문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녀의 몸이 그녀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은 또 아니었다. 토우카는 무심결에 또다시 열리는 문을 흘긋 바라보았다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시온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시온은 토우카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나 기다렸어?”

아니거든.”

토우카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며 답했다. 도저히 시온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토우카는 그가 자신의 달아오른 얼굴을 눈치챌까 봐 걱정이었다. 토우카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온은 바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토우카를 바라보았다. 어쩜 저 눈빛은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을까. 토우카는 시야 끝에 걸려 있는 시온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기다린 것 같은데.”

됐고. 주문이나 해.”

네에, . 그러면 맨날 마시던 거로 부탁할게.”

시온의 대답에 토우카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몸을 돌렸다. 여름의 햇살 같은 그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항상 토우카의 곁에 있었다.

#석가탄신일 돌발본

 

 

붓다의 생일을 축하하여 직장 동료들과 절에 갔더니 주지 스님은 구울에 죽은줄 알았던 직장 동료는 부활?!

 

Y A G I

 

 

우리는 지금부터 절에 간다.”

말을 꺼낸 것은 와슈 마츠리였다. 그는 평소처럼 손가락 끝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아리마 키쇼와 스즈야 쥬조는 멀뚱히 그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갑자기 절에 간다는 것도, 하필이면 그 구성원이 이 멤버인 것도 의문이었다.

특이한 조합이네요-.”

제비뽑기다.”

언제부터 CCG에서 일을 그렇게 했나요.”

불만 있나?”

아뇨, 불만이라기보다는-.”

그냥 해본 소리인지, 쥬조는 금방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하늘 멀리 두었다. 마츠리는 깊은숨을 내쉬고는 제 옆의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아리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꾹 다물고 서 있었다.

그럼 이만 출발하지.”

네에, 네에.”

쥬조는 말꼬리를 늘이면서도 먼저 발을 옮겼다. 생각해보면 쥬조는 절 같은 곳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한 일인가. 쥬조는 속으로 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당연하게도 잘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저 석탑 몇 개가 흐릿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석가탄신일에 절에 간다. 그런 단순한 사고의 과정도 쥬조의 머릿속에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어떤 감상적인 감각을 느낄 쥬조는 아니었다. 쥬조는 그저 옛날 생각을 아주 조금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절에 가는 건 간만이군.”

계속 일 때문에 바빴으니까.”

어쩌면 쉬고 오라는 말일지도 몰라요-.”

그럼 휴가를 주면 될 텐데 왜 굳이 절에. 아리마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괜히 분위기를 깨트리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말을 보태 이어지는 이 침묵을 깨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리마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버스는 점점 더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쥬조가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츠리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도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절에 가까워질수록 버스는 비어갔다. 결국에 남은 것은 그 셋뿐이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절의 계단을 올랐다. 그새 봄이 지나가려는지 녹음이 온 천지에 짙게 깔려있었다.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던 쥬조가 산뜻한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공기는 좋네요.”

뭔가 평화로운 느낌이 들어.”

절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법이지.”

그러나 절의 입구를 넘어서자마자 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는 평화와는 꽤 거리가 있었다.

아리마키쇼!”

세 사람의 앞에 선 키가 큰 회색 머리의 남자는 빗자루를 들고 굳은 듯이 서 있었다. 아리마와 남자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구울이다. 아리마의 말에 쥬조는 쿠인케를 들고 발을 한 발 앞으로 내세웠다.

그때 또 다른 남자가 태연한 발걸음으로 그들 사이를 막아섰다.

, 렌지. 절까지 와서 서로 싸우지 말자구. 그쪽의 수사관들도 마찬가지예요.”

그 말을 하며 남자는 빙긋 웃어 보였지만, 그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절대 싸움을 말리는 사람의 눈빛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여차하면 이 자리의 모두를 제힘으로 눌러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런 눈빛에 기가 눌릴 마츠리는 아니었다. 마츠리는 일부러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구울은 박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은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라고 했어. 적어도 석가탄신일인 오늘 하루만큼은 서로 싸우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다소 톤이 높은 목소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리마는 잠시 쥬조와 시선을 맞춘 후 쿠인케를 집어 드는 대신 입술을 열었다.

너는 누구지?”

마스크 가게의 우타입니다아.”

그런데 왜 여기에 있나?”

일일 아르바이트야. , 손님들은 안쪽으로.”

싹싹하게 수사관 일행을 다루는 우타와는 달리 요모는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과 그다지 엮이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고, 우타 역시 억지로 그런 요모를 잡아끌지는 않았다.

수사관 일행은 약간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우타의 뒤를 따랐다. 쿠인케를 쥔 손에 아주 약간의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우타는 그들을 절의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한쪽 자리 문이 달린, 나무로 지어진 자그마한 건물이 한 채 있었다. 우타는 그 문 앞에 섰다. 마치 이곳이 도착점이라는 듯이.

아리마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우타를 바라보았지만 우타의 표정은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들어가 계세요. 우타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잠시간의 차가운 정적이 세 사람을 감쌌다. 그 문을 연 것은 쥬조였다. 혹시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작전을 세우고 문을 열어봐야 한다는 마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람을 만났다.

마도……!”

그들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얼굴을 보고 놀란 듯 굳었다. 마도 쿠레오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침착하게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는 조금 썼다.

여기는 어떻게…….”

석가탄신일이지 않은가. 가끔은 이런 일도 일어나 줘야 하는 법이지.”

그 말을 하며 그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웃음이었다. 아리마는 그가 죽고 난 이후에도 제법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상태를 살고 있다라고 표현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 사람은 마도의 곁에 앉았다. 네 사람이 앉기에는 테이블이 커서 그들은 사소한 어색함을 느꼈다. 뭘 하고 계셨나요? 쥬조의 물음에 마도는 음, 하고 짧은소리를 뱉고는 입을 열었다.

아까 여기 구울이 있었는데.”

무슨 구울이 있었나?”

래빗이었네.”

래빗. 그 이름을 말하는 마도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죽여버릴까 했는데 석가탄신일이라 그냥 쫓아만 내고 말았네.”

마도는 제법 상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턱을 괴고 멀리 창밖을 바라보던 쥬조가 불현듯 고개를 돌려 마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마도 씨는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도 쿠인케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사람이 죽으면 특별한 것 하나쯤은 저승에 가져갈 수도 있고 그런 거네.”

마도 씨의 특별한 것은 역시 쿠인케였군요.”

그것 말고도 사실 챙겨간 특별한것은 많았지만.”

그 말을 하는 마도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그때 우타가 문을 열고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그의 시선이 방을 한 번 슥 훑고 지나갔다.

아야토 군은 어디 갔어?”

아야토?”

래빗 말이야.”

마도가 쫓아냈다는군.”

아리마의 말에 우타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이 그렇게 탓하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따지자면 그럴 줄 알았다에 가까웠다.

내가 참, 잘 지내라고 말했는데.”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름 애쓴 거야.”

아야토 데리고 올 테니까 렌지는 손님 대접 좀 부탁해.”

바람처럼 지나간 우타의 뒤에는 요모 렌지가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아직도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아리마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오늘은 그 얘기는 하지 말지. 우타의 말대로, 석가탄신일이니까.”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아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를,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아리마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단 하루만이라면,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아야토.”

그때 우타는 아야토를 찾아 절을 헤매고 있었다. 아예 가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야토는 예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야토는 절 구석의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녹색의 연못 위에는 연꽃 몇 송이가 섬세하게 꽃잎을 벌리고 있었다.

쫓겨났다며.”

, 나도 수사관이랑 같이 있고 싶지는 않았어.”

이제 돌아가자.”

우타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아야토는 우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호수로 고개를 돌렸다.

피에로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꾸미는 거지?”

피에로의 일이 아니야. 내 일이야.”

아야토는 그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우타가 그렇다니까 그렇구나, 하는 정도였다. 사실 아야토에겐 이 일을 꾸민 것이 피에로든 우타든 큰 상관은 없었다.

아야토는 연꽃을 보며 적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로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우타는 아야토의 머리를 꾹 누르듯 쓰다듬었다. 아야토가 불만 어린 소리를 내었지만 우타는 그저 돌아가자, 하고 말할 뿐이었다.

아야토는 그 말에 순순히 따랐다. 돌아가자. 어쩐지 그 말이 아야토의 속에 박혔다.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직은 그가 돌아가야 할 곳 정도는 남아 있었다.

 

, 뭐야 이 싸한 분위기. 렌지. 또 이상한 말 했지?”

아무 말도 안 했어.”

손님 대접인데 아무 말도 안 하면 어떻게 해. 차도 안 내놓고.”

우타가 반쯤은 농을 치듯이, 반쯤은 핀잔을 주듯이 요모에게 말을 건넸다. 요모는 가볍게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그 말을 내쳤다. 아무튼, 고집은 세다니까. 우타는 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군.”

차를 준비하려는 우타의 뒤에 마츠리의 목소리가 꽂혔다. 우타는 웃는 낯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떠한 섬뜩함 따위도 섞이지 않은, 그런 미소였다. 그렇다고 부처의 미소다 뭐다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랬지만.

석가탄신일이잖아. 오늘은 좀 쉬어. 죽었던 동료도 돌아왔는데.”

우타의 말에 마츠리는 흥, 소리만 낼뿐 대화를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 조용하고 조금은 평화로운 분위기가 흘러갔다.

누군가는 우타가 내온 차를 홀짝였고 누군가는 창밖의 녹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사관과 구울의 만남이라니. 익숙하기도 하면서 낯선 감각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군.”

아리마는 자신의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껏 남의 생명을 빼앗아오기만 했다. 그러니 이렇게 아무 생명도 빼앗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이런 날. 소중하다면 소중한 날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자리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중한 날. 그런 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FAN-CAKE > 도쿄구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타요모] 한낮의 여름  (0) 2018.06.06
[숀토우] 여름의 햇살  (0) 2018.06.03
[우리후루우리] 심연  (0) 2018.05.12
[우타요모] 좁은 욕조의 안에서  (0) 2018.04.29
[우리즈미] 따뜻한 것  (0) 2018.04.22

#도쿄구울 전력 60분_ 경계선

 

 

심연

 

 

Y A G I

 

 

 

내가 보기에 와슈 키치무라, 그러니까 후루타 니무라라는 남자는 자신이 그려둔 경계선을 절대 넘지 않는 남자였다. 문제는 그 경계선이었다. 보통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곳에 그는 경계를 긋고 있었다.

지금 나는, 그 경계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무슨 볼일 있나요?”

후루타 니무라는 태연하게 국장실 의자를 빙글 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능글능글한 미소를 피하지 않았다. 내가 국장실을 찾은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그에게 얼굴을 한 번 더 익히고자 할 따름이었다. 나는 제법 공들여 세공한 이유를 늘어놓았다. 후루타 니무라는 턱을 괸 채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전부 듣기만 했다.

벌써 이런 만남만 삼 일째였다. 그것은 성과가 없는 일을 이틀이나 했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로 물러날 사람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후루타 니무라를 구워삶아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모두를 위해서라면 내가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모두를 위해서라면. 공적 따위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라면. 나는 사사키 하이세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과연 이런 일을 했을까? 의문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요령이 없는 사람이라서, 이런 일엔 맞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결국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개가 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뭐가 어렵겠는가.

그때 의자가 덜컹, 하고 뒤로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래로 향하고 있던 시선을 들어 다시 후루타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그의 웃음이란 참 묘했다. 후루타는 테이블을 짚고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나는 그의 접근을 딱히 막지는 않았다.

제가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나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저를 흔들어서 어쩔 셈이죠? 저를 흔들어 봤자 나올 것은 딱히 없습니다만.”

역시 내가 사적으로 접근할 생각이란 걸 알고 있었나. 하지만 그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일등 수사관 시절 초연한 모습을 보이며 모두를 속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국장이 되고 난 이후의 구울 대처 방식을 보면 그가 이런 얄팍한 수 정도는 금방 파악할 것이란 건 뻔했다.

그러니까 이건 아예 패를 보여주고 치는 포커였다. 내 패의 끝의 끝까지 보여주어 상대를 안심하게 하는 포커.

제가 선을 넘으면, 위험한 건 당신이에요. 그건 아시나요?”

이 불리한 포커의 승률은 얼마나 높을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후루타를 상대로서 내 앞에 앉히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일단은 그러면 된 것이다. 일단은.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미 위험한 일은 숱하게 겪었습니다.”

이런 류의 경험은 한 번도 없었을 것 같은데.”

후루타는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가 손을 뻗어 내 턱을 가볍게 붙잡았다. 그가 무슨 행동을 할지 뻔히 보였다. 어째서 이런 도발을 하는지도. 아마도 내가 이런 행동을 싫어하리라고 생각하겠지. 후루타는 내 쪽으로 몸을 더 기울였다. 그와 나의 숨이 아주 좁은 틈 사이에서 섞였다.

불쾌하나요?”

내 뺨에 입을 맞추고 멀어지던 그가 속삭인 말이었다. 나는 그때, ‘걸려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후루타는 나를 완전히 얕보고 있었다. 아마도 패를 빤히 보여준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터였다.

이런 것으로 불쾌감을 느끼고 일을 끝낼 것이었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저를 흔들려면 이 정도 각오는 하고 오셨어야지.”

나는 웃음을 흘리며 멀어지는 그의 뺨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한발 앞으로 나섰다. 발끝이 국장실 테이블에 닿았다. 그의 입술은 생각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는 게 정석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루타는 별 저항 없이 내 입술을 받아들였다. 그다지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맞대고 있었다. 아까보다 아주 조금 더 흐트러진 숨이 서로의 뺨을 스쳤다. 나는 몸을 뒤로 물려 입술을 떼어내었다. , 하고 물기가 있는 것들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국장실을 울렸다.

각오는, 이 정도입니다.”

박력 넘치네.”

나쁘지 않아요, 하고 그의 작은 목소리가 내게 닿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좋아요. 어울려 주죠. 아무리 그래도 우리에 군이 원하는 건 주지 못하겠지만요.”

원하는 건 딱히 없습니다.”

어라, 그러면 원하는 건 저 자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라지. 나는 딱히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도 그 사실에 별로 개의치 않는지 제법 산뜻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 미소를 바라보았다. 억지로 그를 따라 웃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줘요.”

위험을 두려워하고 뛰어드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일 뿐이었다. 이왕 뛰어들 거라면 위험 따위를 겁내지 않고 끝까지 가버리는 게 나았다. 다만 내가 인지하지 못한 것은, 후루타 니무라라는 남자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운 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질식해 버릴지도 몰랐다.

죽어도 좋은 심연이란 있는가. 죽을 줄 알면서 빠져드는 심연이란 있는가.

과연 후루타 니무라는 나를 얼마나 잡아먹을 수 있을까.

…….

하지만 결국 먹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일 것이다. 나는 후루타 니무라라는 이 남자를 잡아 먹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면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