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 우타 X 인어 10대 요모

 

 

좁은 욕조의 안에서

 

Y A G I

 

 

식용 목적으로 인어를 포획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수의 인어들이 포획되고 버려지고 있다.

인어는 어릴수록 맛과 효능이 좋다는 말에,

포획되는 인어의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

 

 

요모 렌지는 좁은 욕조 안에서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얀 타일로 덮인 욕실에 수술 도구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몸을 씻기 위한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을 뿐이었다.

요모는 욕조의 가장자리를 짚었다. 자신이 왜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요모는 손을 뻗어 제 허리를 더듬어 보았다. 아직은 어설프게 상처가 아물어 있었고 당연하게도 그곳에 지느러미는 더 이상 없었다.

요모는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의 상처들을 바라보았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기억의 일부가 잘린 것도 그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인간에게 포획당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은 누군가 가위로 엉망으로 잘라놓은 듯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지금 요모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자신의 지느러미가 아마 식용으로 팔리기 위해 잘렸고, 그리고 버려졌고, 누군가에게 주워져 이 욕조에 들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요모는 욕조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분했다.

일어났어?”

욕실의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요모는 처음 그 남자를 본 순간, 잘못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의 양팔을, 그리고 아마도 상체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을 문신 때문이었다. 요모는 잔뜩 긴장한 채 욕조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욕조의 물은 그러기엔 너무 얕았다. 남자는 욕조 앞에 쭈그려 앉은 채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

요모는 답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요모 역시 수상한 남자에게 제 이름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우타야.”

우타라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요모의 젖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모는 몸을 가볍게 떨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머리 만지지 마.”

, 싫어?”

.”

그럼 안 할게.”

요모는 우타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요모가 여태껏 만나보지 못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요모가 만난 인간이라 봤자 그를 포획하려는 인간들이 대부분이어서 그의 경험으로 인간을 분류한다는 게 별 의미 없긴 했지만.

이름은 말해주라.”

왜 나를 구해준 거야?”

요모는 이름을 말하는 대신 날이 선 목소리로 우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타는 별일도 아니라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불쌍하잖아. 하수구에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동정 같은 건 필요 없었는데.”

하지만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르는걸.”

어차피 나는 죽은 거나 다름없어.”

바다로 가고 싶어?”

우타의 말에 요모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러지도 못해.”

지느러미가 없으니, 제대로 헤엄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쩐지 상처가 욱신거리며 쑤셔오는 느낌이 들었다. 요모는 애써 그 아픔을 무시하고 말을 보탰다.

그리고 나는 민물 인어야.”

.”

바다 인어였으면 이미 죽었겠지. 이거, 민물이잖아.”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다행이네.”

우타가 소리 없이 웃었다. 요모는 그의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타는 요모의 머리를 만지는 대신 요모가 짚고 있는 욕조의 가장자리에 손을 얹었다. 우타의 손과 요모의 손은 서로 닿을 듯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름은?”

엄청 집요하네.”

궁금하잖아.”

요모는 가만히 우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요모는 한숨을 쉬듯 제 이름을 말했다. 요모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렌지. 요모 렌지.”

잘 부탁해, 렌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손을 내밀어 요모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요모는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인간하고 잘 지내고 싶지 않았다. 요모에게 인간이란 언제나 공포와 분노의 대상이었다.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으로 그들을 분류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요모에게, 인어에게 낯선 인간이란 모두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우타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선히 손을 거두곤 욕실을 떠났다. 요모는 다시 고개를 돌려 우타가 닫고 떠난 욕실 문을 바라보았다.

 

욕실의 작은 창문으로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요모는 그제야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멍하니 떨어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지옥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우타가 다시 욕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요모는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았다. 요모와 눈이 마주치자 우타가 빙긋 웃으며 말을 꺼냈다.

같이 씻자.”

?”

욕조는 네가 쓰고 있잖아.”

요모는 할 말이 없었다. 우타는 옷을 벗어 욕실 문밖에 두곤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요모는 제 꼬리가 우타의 몸에 닿지 않게 하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좁은 욕조 안에서 서로의 몸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모는 우타의 몸에 있는 수많은 문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문신이 어쩐지 제 몸의 흉터와 비교되는 것처럼 보여 요모는 몸을 움츠렸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비늘을 쓰다듬었다. 이번에 요모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에 우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프지 않아?”

뭐가?”

문신.”

요모의 말에 우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우타는 오른손 손끝으로 제 왼쪽 팔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별로. , 렌지도 하고 싶어?”

아니.”

공짜로 해줄게. , 타투이스트거든.”

요모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았다. 그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인어는 태어나서 처음 봤어.”

우타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요모는 눈을 깜빡여 우타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우타를,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특이하지만, 가장 위협적이지 않은 사람.

그리고 나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야.”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는다면 다소 위협적이게 들렸을 그 말이, 우타의 입에서 나오니 느낌이 달랐다. 어쩌면 요모가 우타에게 자신의 생명을 모두 맡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우타의 말에 요모는 눈을 감았다. 요모는 여전히 우타의 가지런한 비늘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렌지를 애완동물로 삼을 생각은 아니야.”

알고 있어.”

알고 있어? 기특하네.”

우타가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요모는 몸을 틀어 우타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우타의 시선이 요모에게 닿았다. 요모는 우타의 손등에 새겨진 문신을 매만졌다.

진짜 안 아파?”

익숙해지면 견딜만해.”

, 아픈 건 익숙해.”

그러면 괜찮을 거야.”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해줄게. 욕실의 습기 때문인지 우타의 목소리가 조금 젖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아파?”

조금.”

참을 수 있겠어?”

이 정도는 괜찮아.”

더 한 아픔도 겪어봤으니까. 요모는 그 말은 삼켰다. 굳이 이 상황에 필요한 말 같지는 않았다.

흉터가 많네.”

우타는 지나가듯 말을 했다. 요모는 그에 답하지 않았다. 우타도 딱히 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닐 터였다.

다 예쁘게 만들어줄게, .”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타는 요모의 어깨에 찬찬히 무늬를 새겨넣고 있었다. 그 작업은 요모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요모는 고개를 돌려 제 어깨에 새겨진, 별자리를 본따서 그려진 검은 문신을 바라보았다. 우타는 그것이 자신의 별자리라고 말했다.

요모는 왜 제 별자리를 자신의 몸에 새기는가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것이 퍽 싫지는 않았다. 요모는 손끝으로 문신을 매만졌다. 흉터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것 같았다.

무슨 자리야?”

사수자리.”

사수면, 뭔갈 사냥하는 사람인 거야?”

그럼 셈이지.”

안 어울려, 하고 요모가 말했다. 그 말에 우타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요모는 너무 순진한 구석이 있어. 아직 어려서 그런가.”

나 말고 다른 인어를 잡아본 적 있어?”

아니.”

우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요모가 무어라 더 말을 보태기 이전에 하지만, 하고 말을 꺼냈다. 요모는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요모를 잡았잖아.”

요모는 어쩐지 그 말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

이게 뭐야?”

그날도 우타는 요모와 함께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왔다. 우타는 요모의 손바닥에 얹힌 진주 몇 알을 잠시 바라봤다가 요모에게로 눈을 돌렸다.

선물. , 타투 해줬으니까.”

요모의 눈 밑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우타는 직감적으로 그 진주알들이 요모가 자기 스스로를 아프게 해서 억지로 뽑아낸 눈물로 만든 진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타는 요모의 몸을 훑어보았다. 가지런하던 비늘 몇 개가 뒤로 꺾여있었다. 그의 몸에 난 것과는 달리 금방 나을 상처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타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필요 없어, 렌지. 난 렌지가 울지 않는 게 더 좋아.”

우타의 말에 요모는 눈을 깜빡여 우타를 올려다보았다. 우타는 요모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요모는 이제 우타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렌지가 다 자라면 꼭 렌지의 고향으로 데려다줄게.”

그럴 필요 없어. 이제 여기가 내 고향이야.”

그래?”

요모는 무언가 결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표정이 퍽 귀여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요모는 우타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 올려져 있었던 진주 알들이 욕실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가 났다.

진주가 싫다면, 이런 건 어때?”

요모는 우타가 더 무어라 말하기 전에 그의 옷깃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욕조에 담긴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가 곧 잠잠해졌다. 대신 두 사람의 축축한 호흡이 섞이는 소리가 욕실에서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나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야.”

의외인걸, 렌지.”

우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인어의 키스는 어땠어?”

짰어.”

, 민물 인어라니까.”

. 그랬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몸을 숙여 한 번 더 요모에게 입을 맞췄다. 민물 인어와의 키스는 의외로 비리지 않고 달콤한 맛이었다.

 

 

따뜻한 것

 

Y A G I

For.  유로 님

 

 

이것은 어쩌면 예정된 결말이었을지도 몰랐다. 이즈미는 숨을 내쉬었다. 힘든 일이었지만 이것은 그녀의 손으로 끝내야 하는 일이었다. 이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면 그녀는 평생 그 일을 후회하며 살아갈 것이 뻔했다.

우리에 쿠키. 그는 쿠인쿠스 실험을 받았고, 언젠가 폭주했다가 진정되었으나,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더 폭주했고, 결국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즈미는 그 사실에만 집중했다. ‘결국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그녀의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이 알던 우리에 쿠키가 아닌, 하나의 구울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구울은 구축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에 다른 생각이 끼어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이즈미는 치아 자국이 남을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람의 마음이 생각처럼 움직이면 참 좋을 텐데. 이즈미는 두 발쯤 뒤로 물러서며 생각했다. 우리에의 날카로운 시선이 이즈미에게 박혔다. 이즈미는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이즈미가 볼 수 있는 우리에의 마지막 시선일지도 몰랐다.

이즈미는 천천히 카구네를 꺼냈다. 비록 그의 시선은 이즈미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이즈미는 그마저도 사랑할 수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우리에였으니까. 그러니까, 다른 구울과는 달랐으니까.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즈미는 우리에를 최대한 아픔 없이 보내주고 싶었다. 돌아올 수 없다면,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즈미는 언젠가 이런 식으로 우리에의 품에 안겼던 적을 떠올렸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포옹이었다.

그렇지. 마치 지금 나를 뒤덮는 핏줄기처럼.

이즈미의 자조적인 생각이었다. 이즈미의 일격은 단번에 우리에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어쩌면 우리에는 피할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나. 그런 일은 없어야만 했다. 우리에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건 없어야만 했다. 이즈미는 옷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소매가 금방 축축해졌다.

구울, 우리에 쿠키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보다 쉽게 이즈미의 손에 구축되었다.

 

그렇게 하나의 구울이 사라지고, 이즈미의 세상이 무너졌다.

 

 

---

진단메이커가 잘못해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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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는 곳

 

Y A G I

For. 푸링 님

 

 

돌아가지 못할 곳을 그리워하는 만큼 미련한 짓이 또 있을까.

카네키 켄. 나는 나를 그리워했다. 내가 잃어버린 것, 또는 더는 가지지 못할 것을 그리워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때의 나를 그리워했다. 딱히 예전의 그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어떠한 보람 따위를 느끼곤 했으니까. 나는 지금의 삶도 그럭저럭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냥 가끔 꿈에 그날의 카네키가 나올 뿐이었다. 내가 가진 미련은 단지 그뿐이었다.

우리는 항상 끝도 없는 하얀 공간에서 마주했다. 너와 나는 당연히 닮아있으면서도 달랐다. 너는 예의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한동안 나는 너의 그런 미소가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너는 너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나. 나는 너를 따라 입꼬리를 밀어 올려 보았지만 네 것과는 아주 다른 씁쓸한 미소만이 지어질 뿐이었다.

내 표정을 읽은 너는 고개를 한쪽으로 아주 약간 기울이며 조금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쪽으로 돌아오고 싶어?”

아니.”

그러면, ?”

왜라니?”

나는 네 질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 네게 되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너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일 텐데. 어쩌면 나는 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왜 자꾸 내가 네 꿈에 나타나는 건데?”

그러게. 왜일까.”

무거운 정적이 우리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너는 후우, 하고 숨을 길게 내쉬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너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의 의중을 확실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너는 항상 그랬다. 속마음을 숨기고 사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그런 사람이지만. 그러나 어쩐지 내 마음은 네게 환히 읽히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크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누구 하나쯤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으니까.

카네키.”

너는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너의 단정한 눈매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내 속마음을 알아채는 것이 나 자신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추악한 면모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나는 얼마나 미움받을까. 똑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너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우린 어차피 하나가 될 거야.”

어떻게?”

어떻게든.”

그 말을 하며 너는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너를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피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너는 양손으로 부드럽게 내 뺨을 붙잡았다. 네 손에서 피어난 온기가 내게로 옮겨붙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도 있을 수 있지.”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입을 맞췄다. 자신의 입술이란 것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자극적인 그런 감각이었다. 너는 손을 뻗어 내 목을 껴안았다. 나는 너의 허리를 안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듯이.

하지만 결국 얽히던 혀는 달큰한 호흡을 뱉으며 서로에게서 떨어졌고 우리는 한동안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렇게 적극적인 줄은 몰랐는데.”

나도 네가 이렇게 키스를 잘 하는 줄은 몰랐네.”

꿈이니까.”

, 꿈이니까 가능한 거지.”

너는 그렇게 말하곤 그대로 자리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나는 너를 따라 네 앞에 앉았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너였다.

있잖아, 카네키.”

너는 나긋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응, 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카네키는 나를 좋아해?”

. 좋아해.”

카네키는 내가 그리워?”

조금. 아주 조금. 하지만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포기가 빠르구나, 카네키는.”

네가 그렇다시피, 나도 그래.”

내 대답에 너는 응, 하고 답했다. 너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카네키. 오늘도 바쁘겠네.”

너는…….”

나는 여기에서 기다릴게. 카네키 네가 또다시 내가 그리워지면 그때 찾아올 수 있도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꿈속에서 눈을 감았다가 뜨면 익숙한 천장이 나를 마주했다. 익숙하지 않은 게 있다면 너와 맞댄 입술의 감각뿐이었다. 나는 그 꿈을 아주 잠깐 복기했다.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다던 너의 말을 떠올렸다.

너는 내가 돌아가지 못할 곳에 서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지는 않았다. 언제든, 너는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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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에반게리온 AU  #10대 우타요모

 

영혼의 자리[각주:1]

 

Y A G I

 

싱크로율이 낮아도 에바에 탈 수 있다. 우타가 에바에 타는 이유는 그 하나 때문이었다. 탈 수 있다. 그다지 타고 싶어서 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에바에 타라는 지시를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사도와의 싸움에서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차피 다 같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테니 별로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 약간의 미련이 남을 뿐이다. 우타를 에바에 타게 하고 에바에서 내리게 하는 미련이었다.

 

처음으로 하얀 천장을 보았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이 하얀 천장이라니, 낯설었다.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미미하게 들렸다. 우타는 고개를 돌렸다. 요모가 창밖을 보고 앉아있었다. 우타가 몸을 움직이는 탓에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도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게 분명했다.

그런 요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사도는?”

겨우 골라낸 말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우타는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손빗으로 쓸어내렸다. 요모는 창문에 비친 우타를 보며 말했다.

다른 칠드런들이 어떻게 했어.”

다행이다.”

그렇지. 다른 칠드런들이 어떻게든 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누워 있는 거겠지. 다시 정적이었다. 우타는 환풍기의 소리가 자꾸 신경 쓰였다. 차라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적이면 더 좋았을 텐데. 우타는 시선을 아래로 깔아 제가 꼭 붙잡고 있는 침구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완벽한 백색이었다.

렌지는 나 따라서 여기 온 거, 후회하진 않아?”

별로.”

그제야 요모는 몸을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있었다. 완전 화났군. 우타는 요모의 그다지 변화도 없는 표정을 읽어내는데 노련했다. 그저 오랫동안 가까이 알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너는 어떤데?”

나도 별로.”

요모의 말에 우타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별로. 우타는 제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말이 공허하게 흩어져 사라졌다.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다. 딱히 갈 곳도 없어서 처음엔 칠드런으로서, 그리고 지금은 연구원으로서 이곳에 남아있는 것뿐이었다.

렌지의 별로는 어떤 별로일까. 우타는 고개를 돌려 요모의 얼굴을 바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요모를 네르프로 끌어들인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자신의 별로가 같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타는 그것을 굳이 요모에게 따져 묻지 않았다. 요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받이도 없는 간병인용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의 첫 섹스는 그날 밤 이뤄졌다. 우타가 몰래 병실을 빠져나가 요모의 방에 들어간 것이 시작이었다. 요모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자복을 입은 채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요모의 방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감각조차 없는 방이었다.

그런 방에서 우타와 요모는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다. 한없이 나긋했으나 분명 열기를 띤 섹스였다. 우타가 처음으로 요모에게 담배를 배운 것도 그때였다. 환자인데 담배를 피워도 괜찮은 거야? 요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타에게 담배를 권했다. 우타는 그전까지는 요모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요모는 손끝으로 우타의 상처를 매만지고 그곳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아프지 않았어?”

별로.”

엄청 아파 보였어. 에바에서 막 내릴 때.”

그때는 좀 아팠을지도. 사실은 잘 기억도 안 나.”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작게 웃었다. 요모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간지러움이 찌릿하게 몸을 타고 올라왔지만 우타는 요모를 밀어내지 않았다.

우타.”

.”

너는 앞으로도 계속 네르프에 남아있을 거야?”

.”

그렇다면 나도 계속 있을래.”

네르프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요모의 손가락에 걸린 담배에서 무용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타는 땀에 젖은 요모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건 그렇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환풍기 소리 따위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침묵이었다. 요모는 몸을 돌려 다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었다. 일인용 침대의 이불이 그의 다리에 말리며 우타의 맨몸이 여름밤의 열기에 닿았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거밖에 없는 걸까. 에바에 타고, 아파하고, 걱정하고.”

우타의 말에 요모는 우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우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타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요모는 우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댔다. 연기맛이 났다. 우타의 손에서 타오르는 담배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사랑도 할 수 있어.”

렌지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의외인데.”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알아. 알고 있어.”

우타는 손을 뻗어 물이 담긴 종이컵에 담뱃재를 털다가 아예 담배를 꺼버렸다. 우타는 다시 요모의 위로 올라탔다. 요모는 거부하지 않고 담배를 껐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입을 맞췄다.

  1. 신세기 에반게리온 TVA 14화의 소제목 ‘제레, 영혼의 자리’에서 인용. [본문으로]

#우타코이(드림)

 

 

적막

 

Y A G I

 

우 씨는 내게, 잠시 가게를 닫을 테니 한동안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우 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게를 비울 정도면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의 평소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 내 시선에 우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 씨는 우 씨였다.

가게 제가 잘 보고 있을게요.”

못 미더운데.”

좀 믿어 주세요, 정말(ω´)!”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우 씨가 웃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는 그저 웃었다. 나는 그를 따라 웃었다. 항상 그랬기 때문이었다. 항상이 깨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일상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자리를 넓혀갔다. 특히 이런 때라면 더욱 그러했다. 우 씨가 새로운 가면을 만드는 것, 또는 우 씨가 가게를 비우는 것. 그것은 단순한 사실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불길함이라고 생각했다.

약자만이 느낄 수 있는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전에 느낄 수 있는 감각. 익숙해져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그 감각.

나는 이 일상을 잃고 싶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언제까지나 우 씨나 이토리, 렌지와 함께 헬터 스켈터에 모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은 강했으니까.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으니까.

어쩌면 나는 그 강함에 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잃는 건 역시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언제쯤 돌아올 거예요?”

우 씨는 가게 열쇠를 내게 건네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글쎄. 우 씨의 말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강한 구울이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한없이 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 씨가 돌아올 공간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나는 우 씨에게 반드시 돌아오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 말로 인해 더욱 불길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이틀. 우 씨가 돌아오지 않은 기간이었다. 객관적으로 두고 봤을 때 그렇게 긴 기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우 씨가 자리를 비운다고 이야기할 때부터 마음속에 심어진 불안이 싹트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불안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매장의 마스크를 닦고, 먼지를 털고, 우 씨의 작업대를 정돈했다. 더 이상 손댈 게 없으면 나는 내 몫의 의자에 앉아 텅 빈 우 씨의 의자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먼지가 내려앉고 있었다. 내일을 위한 먼지였다.

사흘. 이토리를 찾아갈 수도 있었다. 이토리는 아마 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허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토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았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우 씨의 죽음은 이토리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이토리의 입을 통해 우 씨의 죽음을 알아채고 싶지 않았다.

죽음을 알아챈다면 나 혼자 이 가게를 깨끗이 유지하다가, 언젠가 나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그의 죽음을 알고 싶었다. 나는 마스크의 먼지를 털며 그런 생각을 했다. 더는 새로운 마스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마스크 가게의 죽음을 지연시키는 나.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나의 모습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흘. 그 누구도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완전한 적막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꾸준히 가게의 바닥을 닦았고 정리할 것도 없는 우 씨의 작업 테이블을 정리했다. 나는 문득 우 씨의 작업 스케치를 넘겨보았다. 생각보다 더 다양한 도안들이 그려져 있었다. 우 씨는 이 마스크들을 모두 만들 생각이었을까? 나는 팔랑팔랑 종이를 넘기며 도안들을 둘러보았다. 우 씨의 흔적이었다.

나는 우 씨가 아주 조금 더 그리워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그새 이만큼의 정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여 눈꺼풀에 고이는 불안을 털어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우 씨일까, 아니면 마스크를 사러 온 고객일까. 나는 가만히 문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내가 원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기를 바라면서.

 

 

#우타요모 에반게리온 AU

 

 

정지된 어둠 속에서[각주:1]

 

Y A G I

 

하얀 천장. 우타는 잠시간 그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병실에는 적막이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병실 천장 같은 거,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우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평소처럼 요모가 창밖을 보고 앉아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역시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으나 익숙해진 광경이었다.

화났어?”

아니.”

요모는 항상 그렇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창밖을 향해있던 요모의 시선이 우타에게 닿았다. 우타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그냥 조금 걱정됐을 뿐이야.”

난 내 일을 했을 뿐인걸. 렌지가 그렇듯.”

요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화 안 났다더니. 화난 표정인데.

에바에 탈 수 있는 칠드런들이 없었어. 그래서 내가 대신 탄 거고. 어쨌든 사도들은 처치해야 하잖아.”

우타의 말에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사정은 알고 있었다. 자신도 네르프의 연구원이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우타가 에바에 타는 사실이 달갑지는 않았다. 싱크로율도 낮으면서 우타는 에바에 타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네르프에 속해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만약에 우타를 네르프에서 그만두게 할 수 있다면. 요모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갈 곳부터 없었다. 에바를 다루었던, 에바에 탔던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섞여 들어갈 수 있을까. 요모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아예 이 사실을 몰랐다면 또 모를까. 그들의 삶에 네르프는, 에바는 너무나도 깊숙이 박혀있었다.

몸 괜찮아지면 렌지 방에 놀러 가도 괜찮아?”

빨리 나을 생각부터 해.”

동기가 있으면 빨리 나을 거 아냐.”

요모는 답하지 않았다. 우타는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요모는 항상 그랬으니까. 요모는 싫다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할 사람이었다. 좋을 때 좋다고 이야기를 안 해서 문제지. 우타는 그런 요모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요모는 한숨과 비슷한 숨을 내뱉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타는 그런 요모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서 와.”

. 다녀왔어.”

우타가 병실에서 깨어나면 항상 나누는 대화였다. 요모의 어서 와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을까. 아마 내가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의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겠지. 우타는 눈을 감고 요모의 얼굴을 떠올렸다. 별말은 안 해도 걱정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요모의 표정. 우타는 그 얼굴을 보는 게 썩 즐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은 일이었다. 싫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이 우타에게는 에바에 타는 일이었고, 요모에게는 그런 우타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

 

 

렌지.”

.”

걱정 많이 했어?”

우타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요모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여 우타가 뱉은 담배 연기를 잠시 바라보았다. 연기 냄새가 공기 중으로 번지고 있었다.

.”

그 말을 하곤 요모는 손을 뻗어 우타의 담배를 쥐었다. 우타는 선선히 그에게 담배를 내어주었다. 요모는 우타를 따라 담배 연기를 뱉었다. 담배는 다시 우타의 손으로 돌아갔다. 우타는 요모의 머리카락을 아주 천천히 쓰다듬었다.

?”

우타가 없어지는 게 싫어서.”

?”

몰라, 그런 거.”

우타는 쌓여가는 담뱃재를 털었다. 요모의 방은 삭막했다. 요모는 창문 근처에 놓여있는 커피머신을 제외하면 거의 모델 하우스 수준으로 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요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남기기 싫어하는 사람.

요모는 우타조차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고, 그에게서 혼자 떨어져 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요모는 제 머리를 쓰다듬는 우타의 손을 잡아 그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대로 아침이 오지 않을 수 있을까.”

렌지는 지구가 이대로 끝나길 비는 거야?”

.”

차라리 이대로 서드 임펙트가 일어나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죽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모는 그런 생각을 했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우타가 더는 에바에 탈 일도 없을 테고, 끔찍하게 정갈한 병실에서 그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릴 일도 없을 테지.

한 차례 섹스가 끝난 후의 나른함만 안고 이 세계에서 떠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요모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네르프에 있는 한 그건 당연했다.

우타. 에바에 안 탈 수는 없어?”

그건 힘들 것 같아.”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우타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껐다. 그러고 나서도 담배 냄새는 오랫동안 요모의 방 안을 맴돌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여기 있는 걸지도 몰라.”

뭐 어때. 달리 갈 곳도 없잖아.”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야.”

모든 인간은 그래, 렌지.”

그 말을 하곤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하나뿐인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우타의 손은 꽉 쥐고 있었다.

두려운 거야?”

조금.”

괜찮을 거야.”

정말로?”

. 괜찮을 거야.”

그 말을 하며 우타는 몸을 숙여 요모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괜찮을 거야.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사정을 대충 포장하는 말이기도 했다. 괜찮을 거야. 우타, 그는 지금까지 칠드런들에게 그 말을 얼마나 많이 내뱉었는가. 그리고 그들은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까.

요모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질 수 있는 것일까. 우타는 말없이 요모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닿았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입을 맞추었다.

세계는 아주 천천히 멸망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1. 신세기 에반게리온 TVA 11화의 소제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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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 전력 60분_ 애매한 차이점  #10대 우타요모

 

 

비 내리는 밤은 끝없이 이어지고

 

Y A G I

 

요모 렌지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자신이 익히 아는 모습의 남자가 있었다. 요모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게 무슨 짓인지. 요모는 자신의 손이 뒤로 돌려 무언가 단단한 것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눈앞의 남자도 요모가 이것을 풀려고 하면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게 뻔했으니까. 그럼에도 굳이 요모를 이렇게 묶어둔 것은, 그가 바로 우타이기 때문이겠지.

우타, 이게 무슨 일이야.”

요모의 말에 우타는 의자를 끌어당겨 요모를 마주 보고 앉았다. 우타가 의자를 당겨오기 위해 몸을 숙이자 그의 샛노란 머리카락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익숙한 장소였다. 요시무라 씨의 손에 이끌려 20구로 가기 전에 잠시 우타와 함께 지냈던 그곳. 우타는 그새 어디선가 눈알 하나를 꺼내 그것을 핥으며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온종일 내리던 비가 아직도 내리는지, 물 때 낀 창문을 빗물이 거칠게 때리는 소리가 고요히 들렸다.

그냥. 요즘 우리 안 만난 지 꽤 됐잖아.”

요즘 4구의 스타일은 이런 건가?”

옛날부터 그랬어. 렌지가 오기 전부터.”

요모는 그저 한숨만을 푹 내쉬었다. 우타는 딱딱한 나무 의자 위에서 책상다리를 한 채 요모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요모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고 요모는 그것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익숙해진 감각이라 그다지 불쾌하지는 않았다.

잘 지내나 보네. 여기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혹시 내일도 출근해?”

.”

출근 시간쯤 되면 풀어줄게. 안 그러면 요시무라 씨가 찾아올 것 같으니까.”

아직 혼자서 요시무라 씨를 이길 자신은 별로 없거든. 우타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듯 표정을 가볍게 찌푸리며 말했다. 요모는 어쩐지 그 말이 요시무라 씨가 오지 않는다면 자신은 영영 여기 묶여 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요시무라 씨가 없었다면 여기를 떠날 일도 없었겠지. 요모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우타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나를 이런 식으로 부른 걸까. 요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우타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냥 렌 네가 내게서 너무 멀어진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보고 싶었어. 우타는 고개를 한쪽으로 가볍게 기울이며 말했다.

예전의 우리는 조금 더 가까운 관계였던 것 같은데.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했잖아. 안 그래?”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뺨을 쓰다듬었다. 요모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 감촉만은 아직 여전했다. 그러나 요모는 고개를 돌려 우타의 손을 피했다. 우타가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요모 자기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잠시 같은 순간을 공유했다가 점점 더 끝없이 멀어지는 중이었다. 우타는 거기서 쓸쓸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감정 같은 건 전혀 느낄 리 없다고 생각되는 우타가, 요모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요모 렌지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우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만 했다. 요모는 깊이 들이쉰 숨을 내쉬고 우타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타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우타, 나는 너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어. 너와 나의 방식은 달라.”

나와 요시무라 씨의 방식이겠지.”

어쨌든. 나는 요시무라 씨의 방식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우타 너의 방식이 아니라.”

요모의 말에 우타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요모는 자신의 말이 우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해야만 했다. 우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화를 이어나갔지만 이번에는 요모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 너도 참 별종이다. 우리는 구울이야. 인간이 아니라.”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살아야 하지.”

그렇다고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인간이 되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렌지. 나는 우리가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고 생각했는데.”

우타의 말에 이번에는 요모가 고개를 저었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모습을 한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눈도 깜빡이지 않고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비슷하지. 똑같은 게 아니라, 비슷할 뿐이지.”

왜 그래 렌지. 너도 살인을 즐길 때가 있었잖아. 강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남을 죽이는 걸 즐거워했을 때도 있었잖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닌걸.”

그 애매한 차이가, 뭐 어때서?”

그 애매한 차이가 우리 둘을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그렇게 렌지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건가?”

우타는 그 말을 하곤 요모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마치 키스라도 할 것처럼 우타는 요모의 양 뺨을 자신의 손으로 감쌌다. 그러나 이어지는 것은 평소처럼 서로를 깨물듯 이어 나가는 키스가 아닌, 우타의 나긋한 목소리였다.

그냥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을 뿐이야, .”

요모는 그 목소리가 조금은 애틋하다고 생각하며 우타를 마주 바라보았다. 우타도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요모 자신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요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타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 밤이 끝나지 않으면 좋겠어. 다시 너를 그곳으로 보내면, 너는 더욱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내 앞에 올 것만 같아.”

그 말에 요모는 몸을 우타 쪽으로 몸을 뻗었다. 의자가 요모의 몸에 밀려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우타의 아랫입술을 살짝 핥았다가 곧 그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감촉이었다. 이건 우리가 과거와는 또 달라졌다는 의미겠지.

우타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요모의 혀를 받아들이며 그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짧으나 깊은 키스가 아주 잠시 두 사람의 심장을 채웠다.

걱정 마. 우리 둘이 똑같지 않아도, 나는 사라지지 않아.”

지금까지 내 곁에 그런 사람은 없었어.”

그럼 내가 그 처음이 될게.”

요모의 말에 우타는 요모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가 곧 그의 눈동자를 덮었다. 요모는 감은 눈 아래로 우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우타가 잃어버린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지금까지 우타에게 이런 약속을 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수도 없이 많을 것 같으면서도 어쩌면 이런 말을 한 것은 요모 자신이 처음일지도 모른다고, 요모는 그가 다시 눈을 뜨길 기다리며 생각했다. 요모의 많은 처음이 우타의 것인 것처럼, 우타의 많은 것이 요모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긴 정적 끝에 우타는 다시 눈을 뜨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우타의 목소리는 조금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마치 창밖에 쏟아지는 봄비처럼 그랬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니지?”

약속할게. 방금 했던 그 키스를 걸고.”

요모의 대답에 우타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고개를 숙여 요모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대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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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우타요모  #가벼운 섹스 암시가 있음  #약간 맥락 없음

 

 

빨간 맛

 

Y A G I

 

우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꽤 충동적인 것이었다. 요모는 아예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우타는 요모의 그런 자세에 조금 더 화가 났다. 이 모든 게 누구 때문이랄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두 사람의 싸움은 정말로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를 들자면 식탁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와 같은,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 이유는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고 끓어오르는 감정만 남게 되는 그런 사소한 것. 지금 우타의 상태가 바로 그랬다. 우타는 며칠간 쌓아두었던 묵은 감정을, 요모의 어깨를 잡아 자신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으로 해소하려 했다. 그러나 요모는 날 선 시선으로 우타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타는 또 충동적으로, 반쯤은 씹어 뱉듯이 말을 꺼냈다.

나도 구울 먹을 줄 알아, 렌지.”

그러면 먹어 봐.”

그러나 요모의 대답은 우타의 예상외였다. 요모는 아예 고개를 기울여 자신의 목덜미가 훤히 드러나도록 했다. 요모의 단단하고 곧은 목과 쇄골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우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이번에는 우타가 요모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맛없는 건 먹기 싫어.”

내가 인간이었으면 먹었을 거야?”

생각 안 해 봤는데. 렌지 너라면 어떻게 할 건데?”

나도 생각 안 해봤어.”

그제야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어쩐지 그것만으로도 끓고 있던 감정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이렇게 화를 낼 문제도 아니었는데. 우타는 괜히 머쓱해졌다. 요모가 그런 자신을 전혀 탓하지 않아서, 더욱 그랬다.

우타는 한숨을 내쉬며 요모의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넓은 소파에 딱 붙어 앉았다. 요모는 말없이 우타의 손등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쓸었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렌지가 더 어른스럽나. 우타는 그것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렌지는 먹으면 무슨 맛이 날까.”

그래서 우타는 이야기를 돌렸다. 그렇지 않으면 또 자신의 충동과 마주하게 될 것만 같아서. 그러면 정말로 더는 요모와의 관계를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몰랐다. 우타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요모를 잃는 것만은 조금, 아주 조금 더 무서웠다.

궁금하면 먹어볼래? 한 입만.”

요모의 말에 우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나 요모의 표정이 생각보다 진지해서 (물론 그는 항상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우타는 조심스럽게 요모의 얇은 피부에 이를 가져다 대었다. 물론 그뿐이었다. 아주 가볍게 피가 배어 나올 정도의 통증.

어때?”

맛없어.”

너도 그럴걸.”

요모의 말에 우타는 소리 없이 웃으며 요모의 허리를 껴안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우타는 그것이 요모 나름대로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는 행동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서투르다면 서투르고 단순하다면 단순해서 더욱 좋아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리 와. 네 말이 맞는지 봐야지.”

요모 역시 아주 엷은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만 우타의 어깨를 깨물었다. 요모는 혀끝을 세워 우타의 목덜미에 맺힌 피를 핥았다. 차가운 살에 요모의 뜨끈한 혀가 닿지 우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이 정도면 맛있는 것 같은데.”

동족포식을 얼마나 한 거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왜 그렇게?”

강해지고 싶어서.”

왜 강해지고 싶은데?”

강해지면, 많은 걸 지킬 수 있잖아.”

그 대답을 듣고 우타는 눈을 깜빡여 요모를 바라보았다. 뿌리가 슬슬 드러나기 시작한 우타의 노란 머리가 가볍게 흔들리며 요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우타는 코끝이 닿을 정도로 요모에게 가까이 다가가 붙어,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렌지에게 지켜야 할 대상인 거야?”

지키고 싶은 대상인 거야.”

지금은 렌지가 위험에 처한 것 같은데.”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요모의 어깨를 밀어 그대로 소파에 뉘었다. 우타의 의중을 알아차린 요모가 소리 없이 웃으며 그의 가슴팍을 가볍게 밀어냈다.

. 오늘은 내가 위로 올라갈래.”

안 돼.”

?”

렌지가 나 먹어버릴 것 같단 말이야.”

그럴 리는 없을 테지만.”

우타는 요모의 손을 잡아 그의 손목에 입을 맞췄다. 살과 살이 닿는 소리가 희미하게 공중에 울려 퍼졌고 우타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요모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도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 그래.”

이번 한 번만 봐준다.”

전에 할 때도 내 밑에 깔렸으면서.”

걷어차이기 싫으면 조용히 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두 사람은 입을 맞췄다. 익숙해서 더욱 자극적인 입맞춤이었다. 우타의 손이 요모의 맨살을 부드럽게 더듬었다. 날씨가 제법 추워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붙었다. 고개를 가볍게 뒤로 젖힌 채 따끈한 숨을 내뱉던 요모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기분은 좀 괜찮아졌어?”

   “분위기 깨게.”

   “신경 쓰인단 말이야.”

   “렌지가 그런 것도 신경 써?”

   응. 요모의 대답은 간결했다. 우타는 요모의 쇄골에 입술을 맞댔다. 그 자극에 요모가 미미하지만 반응을 보이는 것을 우타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렌지가 맛있는 만큼 기분도 좋아졌어.”

   “좋아졌다는 건지, 나빠졌다는 건지.”

   “그건 알아서 생각해. 물론 이따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요모의 어깨를 한 번 더 깨물었다. 아까보다는 훨씬 더 괜찮은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

구울의 결혼 증표라는 게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서로의 어깨를 깨무는 것이라는 게 문득 생각나서 ^~^ 우타요모 결혼햇다

#좀비 아포칼립스 AU  #진단메이커

 

 

석양의 세계

 

Y A G I

 

 

담배 연기가 벌겋게 떨어져 가는 햇볕 속에서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너는 내게도 담배를 권했지만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담배를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이런 풍경을 보면서 담배를 태우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다. 너는 나를 불러놓고는 줄창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았다. 너의 몸 곳곳에 박힌 피어싱들이 햇볕을 받아 미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있잖아. 렌지.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까?”

글쎄.”

나의 대답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죽은 인간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서로를 잡아먹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죽은 인간들은 오직 살아있는 인간만을 탐했다. 이 광경을,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인간들이 오갔을 버려진 아파트의 옥상에서 보고 있자니, 마치 저예산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일단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구울의 일이 아닌 인간의 일, 어쩌면 나 자신도 모르게 부러워하거나 증오하고 있었던 인간들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너는 피우던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희미하게 남아있던 불길이 너의 발밑에서 뭉개졌다.

이렇게 구울의 시대가 오는 걸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갑자기 죽은 인간들이 살아날 줄이야.”

우타가 웃음기가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치고 그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뱉었다.

죽은 구울들도 살아났으면 좋을 뻔했는데.”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

많지는 않고, 조금. 우타, 너는?”

글쎄. 잘 모르겠네.”

너 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에 렌지가 죽었다면, 보고 싶어 했을지도.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해, 렌지.”

, 내 대답에 우타는 다시 담배를 하나 더 물었다. 벌써 다섯 개비 째였지만 나는 굳이 그런 그를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구울인걸. 담배 연기가 그렇게 싫지 않기도 했고. 너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너의 체온은 낯설 정도로 따뜻했다.

렌지는 먹어 봤어? 저 시체들.”

.”

어땠어?”

죽은 지 얼마 안 된 인간은, 별로 차이도 없었어.”

그럼 저들은 인간인 걸까.”

인간이었던 것들이겠지.”

재미없네, 뭔가.”

그 말을 끝으로 너는 다시 담배만을 태웠다. 뭔가 생각할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 그 생각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들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는데. 네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너의 말에 동의했다. 이렇게 되기를 바란 적도 없었는데. 그저,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가는 것을 바랐을 뿐이었는데.

만약에 아직도 신이 살아있다면 신이란 작자는 영 정도를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나는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나는 너의 약간은 거친 등을 쓰다듬었다. 너는 그런 내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마치 아무 곳에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런 것치고 너는 태연하게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렌지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어?”

.”

?”

왤까. 나는 잠시 눈을 깜빡여 해가 천천히 떨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세상이 망하자 태양의 광채는 더욱 밝아져서 나는 곧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땅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찾아 어기적거리고 있는 전 인간들을 몇몇의 이름 모를 구울들이 사냥하고 있었다.

그냥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서.”

하긴. 죽어서도 움직이는 애들이니까.”

너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세상이 순간 아주 조금 흐려졌다.

이렇게 구울의 세상이 되면, 렌지는 뭘 하고 싶어?”

생각 안 해 봤어. 너는 어때?”

평소처럼 렌지랑 같이 잠이나 잘까.”

너는 몸을 가까이 붙여오며 키득거렸다. 나는 굳이 그런 너를 밀어내지도, 더 가까이 닿기 위해 끌어안지도 않았다. 너는 피우던 담배를 저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불만을 표할 인간은 이 근처에는 없었다. 너의 가느다란 손끝이 어쩐지 서글퍼 보였다.

배경 음악이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하하, 세상이 망하니까 렌이 농담을 다 하네.”

그 말을 하고 너는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너에게선 짙은 연기 냄새가 났다. 나는 너의 허리를 껴안았다. 보랏빛 어둠이 너의 어깨에 섬세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너의 목덜미에 내 얼굴을 묻었다. 분명히 세계는 아직 살아있는데, 너도 나도 아직 살아있는데 이 모든 것이 아주 끝나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있잖아, 렌지. 나는 사실 조금 쓸쓸해.”

나도.”

이렇게 또 밤이 오는구나.”

들어가자.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 들어가자.”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와 함께 몰락하는 세계의 끝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곳에 남을 것이 오직 어둠뿐만이 아니길. 나는 내일도 또다시 해가 떠오르는 세계를 기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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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Y A G I

 

 

변화의 순간을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이토리가 반쯤은 질질 끌며 데려온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새벽의 새파란 꿈속에서 너는 울고 있었다. 굳이 너의 꿈을 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냥, 그랬다.

렌지, 너는 내가 살아온 흔적이구나. 나는 서서히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며 너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즐길 수 있을까. 언제까지 내가 이 상황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어쩌면 너를 처음 만난 그때부터 에로스의 화살은 내게 겨눠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결코 다룰 수 없는, 그런 감정이.

우타.”

너의 술버릇은 질리도록 즐거웠으나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너는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술에 취해 있었다지만 그 짙은 회색의 눈동자만은 또렷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너는 내 어깨를 껴안았다. 나는 얼떨결에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삶의 무게가 무겁게 나의 삶과 겹쳐지고 있었다.

나를 떠나지 말아 줘.”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면?”

나는 그 순간 왜 그가 이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지, 렌지에겐 안 된 일이었지. 내가 일부러 렌지를 피한다는 건. 하지만 나는 두려웠다. 렌지를 향한 마음이 너무 커져가는 게 두려웠다. 나는 바뀌어 있었다. 그것을 내가 너무도 잘 알아서, 나는 도무지 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피했던 것이 너에게 이런 결과를 주었나.

내가 아는 우타라면 그럴 리 없어.”

어떻게 그렇게 나를 믿는 거야?”

우타 너는, 지금껏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으니까.”

나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눈에 열이 올라 뜨끈뜨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침대로 향했다. 너의 곁에 누워서, 내 팔을 베고 너를 바라보았다.

일단 자, 렌지.”

너는 내가 싫어진 거야?”

너는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입술을 움직였다. 네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들이 내게 박혀 들어왔다.

나한텐 아직 네가 너무 소중한데.”

너를 재우고 난 새벽, 나는 밤새 너를 떠올렸다. 네가 내게 내려준 수많은 커피의 향기를, 너와 함께 살을 섞을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곤히 잠든 너를 보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상을.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 기분이 어땠는지 너는 알 수 있을까. 내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는 네가 깨어나면 기억하지도 못할, 꿈속에서 너의 눈물이 멎기를 바라며 네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커피 내려 줘?”

.”

아침이었다. 너는 꼭 술을 마시고 나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거면 아예 마시지를 말든지. 나는 웃음기를 띤 얼굴로 너를 바라보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누워있는 너를 보면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보고 싶었어.”

문득 너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커피를 내리던 와중에도 너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너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자고 일어나면 없을 줄 알았거든.”

자기가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너는 내 말을 듣는 편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너는 내가 커피를 내밀고 나서야 얼굴에서 손을 떼어냈다. 생각 외로 네 얼굴은 평소와 별다름이 없었다. 왜 굳이 가려야만 했는가,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그저 내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던 걸지도. 나는 컵을 들고 조심스럽게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너는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한 번 크게 했다. 오늘따라 커피 향이 좋았다. 웬일로 네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기에 나는 커피를 마시며 눈동자만 옮겨 너를 바라보았다. 애석하게도 네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어지러워.”

숙취?”

조금. 계속 컨디션이 안 좋았거든.”

나 때문에?”

.”

나는 짧게 웃었다. 천하의 렌지를 이렇게 다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네. 너는 내 말에 답하지 않고 그저 커피만을 마셨다. 나는 문득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괜히 너의 머그와 나의 머그를 부딪쳤다. , 하는 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숙취엔 섹스만 한 게 없는데.”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걸.”

당연하지. 내가 방금 만들어 냈으니까.”

내 말에 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정도면 꽤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나는 네 머리 위에 내 머리를 가볍게 얹듯 기대었다. 너의 체온이 따끈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면 숙취 해소 좀 도와줘.”

그럼 힘 좀 써볼까.”

. 커피 다 마시고, 잠 좀 깨면.”

너와 나는 거의 동시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끝에 입술에 한 피어싱이 차갑게 제 존재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렌지랑 처음으로 키스했을 때, 충동적인 그 상황에서도 렌지는 내 피어싱이 낯설다고 얘기했었지.

나는 괜히 네게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졌다.

뜬금없이.”

그냥 말해보고 싶었어.”

그거 알아? 네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 거, 이번이 처음이야.”

그랬나?”

너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너는 내가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사랑한다는 말 좋아해, ?”

.”

나도 이제 좋아해.”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감각,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쭉 너를 사랑해 왔던 걸지도. 변화의 순간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나는 몸을 가볍게 빼어 너의 입술을 찾았다. 너의 입술에서는 쌉싸름한 커피의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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