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스트 우타 X 악마 요모
폭우
Y A G I
그날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우산을 써도 퍼붓는 비를 완전히 피하기는 힘들었다. 요모 렌지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낮게 깔린 구름이 온 세상을 빈틈없이 덮고 있었다. 이런 날이라면 무슨 일을 하든 괜찮을지도.
“안녕.”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잘못일지도 몰랐다. 신이란 작자가 말하기를, 그는 항상 인간을 굽어살피고 있었으니까. 요모가 쓰고 있던 검은 장우산이 바닥에 뒹굴었다. 얼굴을 때리는 빗줄기가 따가웠다. 요모의 눈앞에는 온통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악마 주제에, 생긴 게 제법 취향이네?”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은데.”
“정말로?”
남자의 입술에 걸린 피어싱이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요모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이 녀석은 신의 총애를 받고 있구나. 남자의 오른손이 요모의 목을 가볍게 졸랐다. 요모는 남자의 손이 닿은 부분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생긴 건 엄하게 생겨가지고서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요모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남자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취향 어쩌고 하는 말이어서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빗소리가 자꾸 남자의 말을 막았다. 남자는 요모의 목을 조르던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여기서 죽을래, 아니면 나랑 지낼래?”
“죽을래.”
“저기, 미안한데. 내가 묻긴 했지만 너한테 선택권은 없어.”
남자가 빙긋 웃으며 요모에게서 두 발 뒤로 물러섰다. 어쩌자는 건지. 요모는 멀뚱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서슴없이 요모에게 등을 보이며 말했다.
“따라와.”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먼저 발을 옮겼다. 긴장을 하지 않는 타입인 걸까, 아니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걸까? 요모는 어느 쪽인지 선택할 수 없어 그 자리에 굳은 듯이 서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요모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남자가 뒤돌아 요모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어째서인지 미소가 걸려있었다. 결코 악마를 대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미소였다.
“도망칠 거야?”
“아니.”
요모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우산을 다시 쓰려다 말고 그냥 남자의 뒤를 따랐다. 도망쳐봤자 아무 소용도 없을 거라는 걸, 요모는 잘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콧노래가 빗소리에 섞여 희미하게 요모의 귓바퀴를 스쳤다.
요모는 남자의 집 벽에 반쯤 기대어 서 있었다. 남자가 요모에게 자신의 옷을 권했지만 요모는 단호하게 그것을 거절했다. 딱 봐도 사이즈가 작았다. 요모는 그 대신에 건넨 수건은 거절하지 않았다.
악마의 몸은 감기 따위에 걸릴 정도로 연약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둔감하지도 않았다. 요모는 수건으로 얼굴을 꾹꾹 누르듯 닦곤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요모의 눈앞에서 서슴없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요모는 잠시 눈을 피해야 하나 고민하다 그저 짧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남자의 마른 몸에 새겨진 수많은 문신이 요모의 시선을 끌었다. 요모는 수건으로 자신의 머리를 닦았다. 제 몸에서 나온 물기를 머금은 수건이 순식간에 축축해졌다.
“너는, 신부는 아닌 것 같은데.”
“응. 파문당해서.”
“이유는?”
“글쎄, 왤까?”
검은 와이셔츠의 단추를 채우던 남자가 요모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나긋한 발걸음으로 요모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물론 아직 하의는 입지 않은 채였다. 어쩌면 굳이 하의를 입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허벅지를 가볍게 덮은 와이셔츠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살랑거렸다.
“직접 맞춰보지 않을래?”
남자는 손끝으로 요모의 턱선을 매만졌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흐린 조명 아래에서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요모는 남자의 나긋한 목소리가 영 신경에 거슬렸다. 신의 목소리보다는, 악마의 목소리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사람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와 욕망을 툭툭 건드려 결국엔 터지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목소리. 요모는 그가 파문당했다는 말을 곱씹었다.
“너는 무슨 악마야? 이왕이면 색욕 쪽이면 좋겠는데.”
“유감이지만, 나는 교만이야.”
“오호. 프라이드가 높으시단 말이구만.”
그 말을 하며 남자는 요모의 손을 잡아끌어 침대 쪽으로 던지듯 그를 눕혔다. 마른 몸에서 나오기 힘들 정도의 힘에, 요모는 가볍게 놀란 숨을 내쉬었다. 역시 일반 사람과는 다르다는 건가.
침대에 걸터앉듯 누워있는 요모의 허벅지 위에 남자가 올라타 앉았다. 남자는 연신 요모의 양 뺨을 쓰다듬었다.
“이거 더 재밌게 됐는데.”
“힘겨루기라도 해보자는 건가?”
“악마 정도는 내가 이겨. 항상 그래왔으니까.”
“교만하구나.”
“맞아. 그러니까 우리는 생각보다 더 잘 맞을지도.”
요모는 몸을 완전히 뒤로 뉘었다. 남자는 슬금슬금 요모의 몸을 타고 올라와 남자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댔다. 살아있는 인간의 체온이 느껴졌다. 요모는 혀로 제 아랫입술을 훑었다.
이 사람의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그 느낌은 어떨까? 가히 상상하기 힘든 감각일 것이라고, 요모는 제멋대로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더 탐이 나는 영혼이었다. 욕구를 이렇게 자극하는 인간이라니. 이런 영혼은 얼마만인가.
“이름.”
“그걸 말하면 쓰나.”
“인간들이 알고 있는 이름은 있을 거 아니야.”
“…렌지.”
렌, 지. 하고 남자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의 따뜻한 숨이 요모의 얼굴에 달큰하게 끼쳤다.
“나는 우타.”
그 이름을 듣고 요모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십자가를 뒤집은 이름이라니. 요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남자가 악마보다 신에 더욱 가까이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신이 선택한 새로운 방식일지도 모르지. 타고나길 욕망에 약한 악마들을 공략하려면 이렇게 제 욕망에 충실한 하인이 가장 적절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타라니. 신을 섬기는 자가 할 만한 이름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신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야.”
요모의 감상에 우타가 느릿한 목소리로 답했다.
“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지.”
“이해가 안 되는군.”
“이해할 필요는 없어. 나는 신의 사랑을 받는다. 그뿐인 거야. 그러니까 이런 짓을 하고서도, 아직도 너를 죽일 수 있는 권능이 있는 거야.”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요모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췄다. 요모는 제 입술을 핥다 결국엔 입안까지 밀려들어오는 우타의 혀를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그의 말캉한 혀끝이 요모의 혀를 핥고, 얽었다. 요모는 우타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옷을 갈아입었다지만 아직은 물기가 있는 우타의 몸이 요모의 손바닥에 뜨겁게 달라붙었다.
“렌지, 지금까지 내 손에서 죽어간 악마가 몇인지 알아?”
“궁금하지 않아.”
“내 밑에서 죽어간 악마가 몇인지는 좀 더 궁금할 텐데.”
“그다지.”
“역시 교만인가.”
그 말에 요모는 소리 없이 웃었다.
“색욕보다 굴복시키기 어려운 것이 교만인 법이지.”
“나, 교만이랑은 처음이야.”
“이런. 네 밑에서 죽어난 동료들의 수가 얼마 되지는 않는가보네.”
“자신 만만한 모습, 보기 좋아. 나중에 이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되는걸.”
우타는 한 번 더 입을 맞추며, 요모의 차게 젖은 옷 아래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 손길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뜨거워서 요모는 자기도 모르게 엷은 신음을 뱉었다. 우타의 손은 아주 천천히 요모의 축축한 허리를 손바닥으로 훑었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보다 죽어간 악마가 많을지도. 요모는 그 사이의 한 명이 되고 싶지 않았서, 도발적으로 우타의 입술을 탐했다.
***
이렇게 미묘하게 끝나는 이유는
뒷 부분의 수위를 어디까지 정해야할지 아직 고민중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나올 폭우 (2)를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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