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코이(드림)

 

 

적막

 

Y A G I

 

우 씨는 내게, 잠시 가게를 닫을 테니 한동안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우 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게를 비울 정도면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의 평소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 내 시선에 우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 씨는 우 씨였다.

가게 제가 잘 보고 있을게요.”

못 미더운데.”

좀 믿어 주세요, 정말(ω´)!”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우 씨가 웃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는 그저 웃었다. 나는 그를 따라 웃었다. 항상 그랬기 때문이었다. 항상이 깨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일상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자리를 넓혀갔다. 특히 이런 때라면 더욱 그러했다. 우 씨가 새로운 가면을 만드는 것, 또는 우 씨가 가게를 비우는 것. 그것은 단순한 사실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불길함이라고 생각했다.

약자만이 느낄 수 있는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전에 느낄 수 있는 감각. 익숙해져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그 감각.

나는 이 일상을 잃고 싶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언제까지나 우 씨나 이토리, 렌지와 함께 헬터 스켈터에 모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은 강했으니까.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으니까.

어쩌면 나는 그 강함에 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잃는 건 역시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언제쯤 돌아올 거예요?”

우 씨는 가게 열쇠를 내게 건네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글쎄. 우 씨의 말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강한 구울이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한없이 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 씨가 돌아올 공간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나는 우 씨에게 반드시 돌아오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 말로 인해 더욱 불길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이틀. 우 씨가 돌아오지 않은 기간이었다. 객관적으로 두고 봤을 때 그렇게 긴 기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우 씨가 자리를 비운다고 이야기할 때부터 마음속에 심어진 불안이 싹트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불안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매장의 마스크를 닦고, 먼지를 털고, 우 씨의 작업대를 정돈했다. 더 이상 손댈 게 없으면 나는 내 몫의 의자에 앉아 텅 빈 우 씨의 의자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먼지가 내려앉고 있었다. 내일을 위한 먼지였다.

사흘. 이토리를 찾아갈 수도 있었다. 이토리는 아마 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허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토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았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우 씨의 죽음은 이토리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이토리의 입을 통해 우 씨의 죽음을 알아채고 싶지 않았다.

죽음을 알아챈다면 나 혼자 이 가게를 깨끗이 유지하다가, 언젠가 나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그의 죽음을 알고 싶었다. 나는 마스크의 먼지를 털며 그런 생각을 했다. 더는 새로운 마스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마스크 가게의 죽음을 지연시키는 나.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나의 모습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흘. 그 누구도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완전한 적막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꾸준히 가게의 바닥을 닦았고 정리할 것도 없는 우 씨의 작업 테이블을 정리했다. 나는 문득 우 씨의 작업 스케치를 넘겨보았다. 생각보다 더 다양한 도안들이 그려져 있었다. 우 씨는 이 마스크들을 모두 만들 생각이었을까? 나는 팔랑팔랑 종이를 넘기며 도안들을 둘러보았다. 우 씨의 흔적이었다.

나는 우 씨가 아주 조금 더 그리워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그새 이만큼의 정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여 눈꺼풀에 고이는 불안을 털어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우 씨일까, 아니면 마스크를 사러 온 고객일까. 나는 가만히 문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내가 원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기를 바라면서.

 

 

#우타요모 에반게리온 AU

 

 

정지된 어둠 속에서[각주:1]

 

Y A G I

 

하얀 천장. 우타는 잠시간 그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병실에는 적막이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병실 천장 같은 거,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우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평소처럼 요모가 창밖을 보고 앉아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역시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으나 익숙해진 광경이었다.

화났어?”

아니.”

요모는 항상 그렇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창밖을 향해있던 요모의 시선이 우타에게 닿았다. 우타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그냥 조금 걱정됐을 뿐이야.”

난 내 일을 했을 뿐인걸. 렌지가 그렇듯.”

요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화 안 났다더니. 화난 표정인데.

에바에 탈 수 있는 칠드런들이 없었어. 그래서 내가 대신 탄 거고. 어쨌든 사도들은 처치해야 하잖아.”

우타의 말에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사정은 알고 있었다. 자신도 네르프의 연구원이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우타가 에바에 타는 사실이 달갑지는 않았다. 싱크로율도 낮으면서 우타는 에바에 타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네르프에 속해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만약에 우타를 네르프에서 그만두게 할 수 있다면. 요모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갈 곳부터 없었다. 에바를 다루었던, 에바에 탔던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섞여 들어갈 수 있을까. 요모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아예 이 사실을 몰랐다면 또 모를까. 그들의 삶에 네르프는, 에바는 너무나도 깊숙이 박혀있었다.

몸 괜찮아지면 렌지 방에 놀러 가도 괜찮아?”

빨리 나을 생각부터 해.”

동기가 있으면 빨리 나을 거 아냐.”

요모는 답하지 않았다. 우타는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요모는 항상 그랬으니까. 요모는 싫다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할 사람이었다. 좋을 때 좋다고 이야기를 안 해서 문제지. 우타는 그런 요모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요모는 한숨과 비슷한 숨을 내뱉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타는 그런 요모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서 와.”

. 다녀왔어.”

우타가 병실에서 깨어나면 항상 나누는 대화였다. 요모의 어서 와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을까. 아마 내가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의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겠지. 우타는 눈을 감고 요모의 얼굴을 떠올렸다. 별말은 안 해도 걱정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요모의 표정. 우타는 그 얼굴을 보는 게 썩 즐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은 일이었다. 싫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이 우타에게는 에바에 타는 일이었고, 요모에게는 그런 우타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

 

 

렌지.”

.”

걱정 많이 했어?”

우타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요모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여 우타가 뱉은 담배 연기를 잠시 바라보았다. 연기 냄새가 공기 중으로 번지고 있었다.

.”

그 말을 하곤 요모는 손을 뻗어 우타의 담배를 쥐었다. 우타는 선선히 그에게 담배를 내어주었다. 요모는 우타를 따라 담배 연기를 뱉었다. 담배는 다시 우타의 손으로 돌아갔다. 우타는 요모의 머리카락을 아주 천천히 쓰다듬었다.

?”

우타가 없어지는 게 싫어서.”

?”

몰라, 그런 거.”

우타는 쌓여가는 담뱃재를 털었다. 요모의 방은 삭막했다. 요모는 창문 근처에 놓여있는 커피머신을 제외하면 거의 모델 하우스 수준으로 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요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남기기 싫어하는 사람.

요모는 우타조차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고, 그에게서 혼자 떨어져 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요모는 제 머리를 쓰다듬는 우타의 손을 잡아 그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대로 아침이 오지 않을 수 있을까.”

렌지는 지구가 이대로 끝나길 비는 거야?”

.”

차라리 이대로 서드 임펙트가 일어나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죽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모는 그런 생각을 했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우타가 더는 에바에 탈 일도 없을 테고, 끔찍하게 정갈한 병실에서 그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릴 일도 없을 테지.

한 차례 섹스가 끝난 후의 나른함만 안고 이 세계에서 떠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요모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네르프에 있는 한 그건 당연했다.

우타. 에바에 안 탈 수는 없어?”

그건 힘들 것 같아.”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우타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껐다. 그러고 나서도 담배 냄새는 오랫동안 요모의 방 안을 맴돌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여기 있는 걸지도 몰라.”

뭐 어때. 달리 갈 곳도 없잖아.”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야.”

모든 인간은 그래, 렌지.”

그 말을 하곤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하나뿐인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우타의 손은 꽉 쥐고 있었다.

두려운 거야?”

조금.”

괜찮을 거야.”

정말로?”

. 괜찮을 거야.”

그 말을 하며 우타는 몸을 숙여 요모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괜찮을 거야.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사정을 대충 포장하는 말이기도 했다. 괜찮을 거야. 우타, 그는 지금까지 칠드런들에게 그 말을 얼마나 많이 내뱉었는가. 그리고 그들은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까.

요모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질 수 있는 것일까. 우타는 말없이 요모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닿았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입을 맞추었다.

세계는 아주 천천히 멸망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1. 신세기 에반게리온 TVA 11화의 소제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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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 전력 60분_ 애매한 차이점  #10대 우타요모

 

 

비 내리는 밤은 끝없이 이어지고

 

Y A G I

 

요모 렌지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자신이 익히 아는 모습의 남자가 있었다. 요모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게 무슨 짓인지. 요모는 자신의 손이 뒤로 돌려 무언가 단단한 것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눈앞의 남자도 요모가 이것을 풀려고 하면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게 뻔했으니까. 그럼에도 굳이 요모를 이렇게 묶어둔 것은, 그가 바로 우타이기 때문이겠지.

우타, 이게 무슨 일이야.”

요모의 말에 우타는 의자를 끌어당겨 요모를 마주 보고 앉았다. 우타가 의자를 당겨오기 위해 몸을 숙이자 그의 샛노란 머리카락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익숙한 장소였다. 요시무라 씨의 손에 이끌려 20구로 가기 전에 잠시 우타와 함께 지냈던 그곳. 우타는 그새 어디선가 눈알 하나를 꺼내 그것을 핥으며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온종일 내리던 비가 아직도 내리는지, 물 때 낀 창문을 빗물이 거칠게 때리는 소리가 고요히 들렸다.

그냥. 요즘 우리 안 만난 지 꽤 됐잖아.”

요즘 4구의 스타일은 이런 건가?”

옛날부터 그랬어. 렌지가 오기 전부터.”

요모는 그저 한숨만을 푹 내쉬었다. 우타는 딱딱한 나무 의자 위에서 책상다리를 한 채 요모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요모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고 요모는 그것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익숙해진 감각이라 그다지 불쾌하지는 않았다.

잘 지내나 보네. 여기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혹시 내일도 출근해?”

.”

출근 시간쯤 되면 풀어줄게. 안 그러면 요시무라 씨가 찾아올 것 같으니까.”

아직 혼자서 요시무라 씨를 이길 자신은 별로 없거든. 우타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듯 표정을 가볍게 찌푸리며 말했다. 요모는 어쩐지 그 말이 요시무라 씨가 오지 않는다면 자신은 영영 여기 묶여 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요시무라 씨가 없었다면 여기를 떠날 일도 없었겠지. 요모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우타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나를 이런 식으로 부른 걸까. 요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우타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냥 렌 네가 내게서 너무 멀어진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보고 싶었어. 우타는 고개를 한쪽으로 가볍게 기울이며 말했다.

예전의 우리는 조금 더 가까운 관계였던 것 같은데.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했잖아. 안 그래?”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뺨을 쓰다듬었다. 요모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 감촉만은 아직 여전했다. 그러나 요모는 고개를 돌려 우타의 손을 피했다. 우타가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요모 자기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잠시 같은 순간을 공유했다가 점점 더 끝없이 멀어지는 중이었다. 우타는 거기서 쓸쓸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감정 같은 건 전혀 느낄 리 없다고 생각되는 우타가, 요모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요모 렌지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우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만 했다. 요모는 깊이 들이쉰 숨을 내쉬고 우타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타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우타, 나는 너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어. 너와 나의 방식은 달라.”

나와 요시무라 씨의 방식이겠지.”

어쨌든. 나는 요시무라 씨의 방식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우타 너의 방식이 아니라.”

요모의 말에 우타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요모는 자신의 말이 우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해야만 했다. 우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화를 이어나갔지만 이번에는 요모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 너도 참 별종이다. 우리는 구울이야. 인간이 아니라.”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살아야 하지.”

그렇다고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인간이 되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렌지. 나는 우리가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고 생각했는데.”

우타의 말에 이번에는 요모가 고개를 저었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모습을 한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눈도 깜빡이지 않고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비슷하지. 똑같은 게 아니라, 비슷할 뿐이지.”

왜 그래 렌지. 너도 살인을 즐길 때가 있었잖아. 강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남을 죽이는 걸 즐거워했을 때도 있었잖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닌걸.”

그 애매한 차이가, 뭐 어때서?”

그 애매한 차이가 우리 둘을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그렇게 렌지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건가?”

우타는 그 말을 하곤 요모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마치 키스라도 할 것처럼 우타는 요모의 양 뺨을 자신의 손으로 감쌌다. 그러나 이어지는 것은 평소처럼 서로를 깨물듯 이어 나가는 키스가 아닌, 우타의 나긋한 목소리였다.

그냥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을 뿐이야, .”

요모는 그 목소리가 조금은 애틋하다고 생각하며 우타를 마주 바라보았다. 우타도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요모 자신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요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타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 밤이 끝나지 않으면 좋겠어. 다시 너를 그곳으로 보내면, 너는 더욱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내 앞에 올 것만 같아.”

그 말에 요모는 몸을 우타 쪽으로 몸을 뻗었다. 의자가 요모의 몸에 밀려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우타의 아랫입술을 살짝 핥았다가 곧 그의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감촉이었다. 이건 우리가 과거와는 또 달라졌다는 의미겠지.

우타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요모의 혀를 받아들이며 그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짧으나 깊은 키스가 아주 잠시 두 사람의 심장을 채웠다.

걱정 마. 우리 둘이 똑같지 않아도, 나는 사라지지 않아.”

지금까지 내 곁에 그런 사람은 없었어.”

그럼 내가 그 처음이 될게.”

요모의 말에 우타는 요모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가 곧 그의 눈동자를 덮었다. 요모는 감은 눈 아래로 우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우타가 잃어버린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지금까지 우타에게 이런 약속을 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수도 없이 많을 것 같으면서도 어쩌면 이런 말을 한 것은 요모 자신이 처음일지도 모른다고, 요모는 그가 다시 눈을 뜨길 기다리며 생각했다. 요모의 많은 처음이 우타의 것인 것처럼, 우타의 많은 것이 요모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긴 정적 끝에 우타는 다시 눈을 뜨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우타의 목소리는 조금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마치 창밖에 쏟아지는 봄비처럼 그랬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니지?”

약속할게. 방금 했던 그 키스를 걸고.”

요모의 대답에 우타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고개를 숙여 요모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대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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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우타요모  #가벼운 섹스 암시가 있음  #약간 맥락 없음

 

 

빨간 맛

 

Y A G I

 

우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꽤 충동적인 것이었다. 요모는 아예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우타는 요모의 그런 자세에 조금 더 화가 났다. 이 모든 게 누구 때문이랄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두 사람의 싸움은 정말로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를 들자면 식탁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와 같은,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 이유는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고 끓어오르는 감정만 남게 되는 그런 사소한 것. 지금 우타의 상태가 바로 그랬다. 우타는 며칠간 쌓아두었던 묵은 감정을, 요모의 어깨를 잡아 자신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으로 해소하려 했다. 그러나 요모는 날 선 시선으로 우타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타는 또 충동적으로, 반쯤은 씹어 뱉듯이 말을 꺼냈다.

나도 구울 먹을 줄 알아, 렌지.”

그러면 먹어 봐.”

그러나 요모의 대답은 우타의 예상외였다. 요모는 아예 고개를 기울여 자신의 목덜미가 훤히 드러나도록 했다. 요모의 단단하고 곧은 목과 쇄골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우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이번에는 우타가 요모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맛없는 건 먹기 싫어.”

내가 인간이었으면 먹었을 거야?”

생각 안 해 봤는데. 렌지 너라면 어떻게 할 건데?”

나도 생각 안 해봤어.”

그제야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어쩐지 그것만으로도 끓고 있던 감정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이렇게 화를 낼 문제도 아니었는데. 우타는 괜히 머쓱해졌다. 요모가 그런 자신을 전혀 탓하지 않아서, 더욱 그랬다.

우타는 한숨을 내쉬며 요모의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넓은 소파에 딱 붙어 앉았다. 요모는 말없이 우타의 손등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쓸었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렌지가 더 어른스럽나. 우타는 그것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렌지는 먹으면 무슨 맛이 날까.”

그래서 우타는 이야기를 돌렸다. 그렇지 않으면 또 자신의 충동과 마주하게 될 것만 같아서. 그러면 정말로 더는 요모와의 관계를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몰랐다. 우타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요모를 잃는 것만은 조금, 아주 조금 더 무서웠다.

궁금하면 먹어볼래? 한 입만.”

요모의 말에 우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나 요모의 표정이 생각보다 진지해서 (물론 그는 항상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우타는 조심스럽게 요모의 얇은 피부에 이를 가져다 대었다. 물론 그뿐이었다. 아주 가볍게 피가 배어 나올 정도의 통증.

어때?”

맛없어.”

너도 그럴걸.”

요모의 말에 우타는 소리 없이 웃으며 요모의 허리를 껴안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우타는 그것이 요모 나름대로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는 행동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서투르다면 서투르고 단순하다면 단순해서 더욱 좋아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리 와. 네 말이 맞는지 봐야지.”

요모 역시 아주 엷은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만 우타의 어깨를 깨물었다. 요모는 혀끝을 세워 우타의 목덜미에 맺힌 피를 핥았다. 차가운 살에 요모의 뜨끈한 혀가 닿지 우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이 정도면 맛있는 것 같은데.”

동족포식을 얼마나 한 거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왜 그렇게?”

강해지고 싶어서.”

왜 강해지고 싶은데?”

강해지면, 많은 걸 지킬 수 있잖아.”

그 대답을 듣고 우타는 눈을 깜빡여 요모를 바라보았다. 뿌리가 슬슬 드러나기 시작한 우타의 노란 머리가 가볍게 흔들리며 요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우타는 코끝이 닿을 정도로 요모에게 가까이 다가가 붙어,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렌지에게 지켜야 할 대상인 거야?”

지키고 싶은 대상인 거야.”

지금은 렌지가 위험에 처한 것 같은데.”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요모의 어깨를 밀어 그대로 소파에 뉘었다. 우타의 의중을 알아차린 요모가 소리 없이 웃으며 그의 가슴팍을 가볍게 밀어냈다.

. 오늘은 내가 위로 올라갈래.”

안 돼.”

?”

렌지가 나 먹어버릴 것 같단 말이야.”

그럴 리는 없을 테지만.”

우타는 요모의 손을 잡아 그의 손목에 입을 맞췄다. 살과 살이 닿는 소리가 희미하게 공중에 울려 퍼졌고 우타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요모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도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 그래.”

이번 한 번만 봐준다.”

전에 할 때도 내 밑에 깔렸으면서.”

걷어차이기 싫으면 조용히 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두 사람은 입을 맞췄다. 익숙해서 더욱 자극적인 입맞춤이었다. 우타의 손이 요모의 맨살을 부드럽게 더듬었다. 날씨가 제법 추워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붙었다. 고개를 가볍게 뒤로 젖힌 채 따끈한 숨을 내뱉던 요모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기분은 좀 괜찮아졌어?”

   “분위기 깨게.”

   “신경 쓰인단 말이야.”

   “렌지가 그런 것도 신경 써?”

   응. 요모의 대답은 간결했다. 우타는 요모의 쇄골에 입술을 맞댔다. 그 자극에 요모가 미미하지만 반응을 보이는 것을 우타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렌지가 맛있는 만큼 기분도 좋아졌어.”

   “좋아졌다는 건지, 나빠졌다는 건지.”

   “그건 알아서 생각해. 물론 이따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요모의 어깨를 한 번 더 깨물었다. 아까보다는 훨씬 더 괜찮은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

구울의 결혼 증표라는 게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서로의 어깨를 깨무는 것이라는 게 문득 생각나서 ^~^ 우타요모 결혼햇다

#좀비 아포칼립스 AU  #진단메이커

 

 

석양의 세계

 

Y A G I

 

 

담배 연기가 벌겋게 떨어져 가는 햇볕 속에서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너는 내게도 담배를 권했지만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담배를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이런 풍경을 보면서 담배를 태우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다. 너는 나를 불러놓고는 줄창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았다. 너의 몸 곳곳에 박힌 피어싱들이 햇볕을 받아 미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있잖아. 렌지.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까?”

글쎄.”

나의 대답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죽은 인간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서로를 잡아먹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죽은 인간들은 오직 살아있는 인간만을 탐했다. 이 광경을,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인간들이 오갔을 버려진 아파트의 옥상에서 보고 있자니, 마치 저예산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일단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구울의 일이 아닌 인간의 일, 어쩌면 나 자신도 모르게 부러워하거나 증오하고 있었던 인간들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너는 피우던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희미하게 남아있던 불길이 너의 발밑에서 뭉개졌다.

이렇게 구울의 시대가 오는 걸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갑자기 죽은 인간들이 살아날 줄이야.”

우타가 웃음기가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치고 그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뱉었다.

죽은 구울들도 살아났으면 좋을 뻔했는데.”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

많지는 않고, 조금. 우타, 너는?”

글쎄. 잘 모르겠네.”

너 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에 렌지가 죽었다면, 보고 싶어 했을지도.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해, 렌지.”

, 내 대답에 우타는 다시 담배를 하나 더 물었다. 벌써 다섯 개비 째였지만 나는 굳이 그런 그를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구울인걸. 담배 연기가 그렇게 싫지 않기도 했고. 너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너의 체온은 낯설 정도로 따뜻했다.

렌지는 먹어 봤어? 저 시체들.”

.”

어땠어?”

죽은 지 얼마 안 된 인간은, 별로 차이도 없었어.”

그럼 저들은 인간인 걸까.”

인간이었던 것들이겠지.”

재미없네, 뭔가.”

그 말을 끝으로 너는 다시 담배만을 태웠다. 뭔가 생각할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 그 생각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들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는데. 네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너의 말에 동의했다. 이렇게 되기를 바란 적도 없었는데. 그저,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가는 것을 바랐을 뿐이었는데.

만약에 아직도 신이 살아있다면 신이란 작자는 영 정도를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나는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나는 너의 약간은 거친 등을 쓰다듬었다. 너는 그런 내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마치 아무 곳에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런 것치고 너는 태연하게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렌지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어?”

.”

?”

왤까. 나는 잠시 눈을 깜빡여 해가 천천히 떨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세상이 망하자 태양의 광채는 더욱 밝아져서 나는 곧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땅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찾아 어기적거리고 있는 전 인간들을 몇몇의 이름 모를 구울들이 사냥하고 있었다.

그냥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서.”

하긴. 죽어서도 움직이는 애들이니까.”

너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세상이 순간 아주 조금 흐려졌다.

이렇게 구울의 세상이 되면, 렌지는 뭘 하고 싶어?”

생각 안 해 봤어. 너는 어때?”

평소처럼 렌지랑 같이 잠이나 잘까.”

너는 몸을 가까이 붙여오며 키득거렸다. 나는 굳이 그런 너를 밀어내지도, 더 가까이 닿기 위해 끌어안지도 않았다. 너는 피우던 담배를 저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불만을 표할 인간은 이 근처에는 없었다. 너의 가느다란 손끝이 어쩐지 서글퍼 보였다.

배경 음악이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하하, 세상이 망하니까 렌이 농담을 다 하네.”

그 말을 하고 너는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너에게선 짙은 연기 냄새가 났다. 나는 너의 허리를 껴안았다. 보랏빛 어둠이 너의 어깨에 섬세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너의 목덜미에 내 얼굴을 묻었다. 분명히 세계는 아직 살아있는데, 너도 나도 아직 살아있는데 이 모든 것이 아주 끝나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있잖아, 렌지. 나는 사실 조금 쓸쓸해.”

나도.”

이렇게 또 밤이 오는구나.”

들어가자.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 들어가자.”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와 함께 몰락하는 세계의 끝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곳에 남을 것이 오직 어둠뿐만이 아니길. 나는 내일도 또다시 해가 떠오르는 세계를 기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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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Y A G I

 

 

변화의 순간을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이토리가 반쯤은 질질 끌며 데려온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새벽의 새파란 꿈속에서 너는 울고 있었다. 굳이 너의 꿈을 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냥, 그랬다.

렌지, 너는 내가 살아온 흔적이구나. 나는 서서히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며 너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즐길 수 있을까. 언제까지 내가 이 상황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어쩌면 너를 처음 만난 그때부터 에로스의 화살은 내게 겨눠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결코 다룰 수 없는, 그런 감정이.

우타.”

너의 술버릇은 질리도록 즐거웠으나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너는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술에 취해 있었다지만 그 짙은 회색의 눈동자만은 또렷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너는 내 어깨를 껴안았다. 나는 얼떨결에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삶의 무게가 무겁게 나의 삶과 겹쳐지고 있었다.

나를 떠나지 말아 줘.”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면?”

나는 그 순간 왜 그가 이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지, 렌지에겐 안 된 일이었지. 내가 일부러 렌지를 피한다는 건. 하지만 나는 두려웠다. 렌지를 향한 마음이 너무 커져가는 게 두려웠다. 나는 바뀌어 있었다. 그것을 내가 너무도 잘 알아서, 나는 도무지 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피했던 것이 너에게 이런 결과를 주었나.

내가 아는 우타라면 그럴 리 없어.”

어떻게 그렇게 나를 믿는 거야?”

우타 너는, 지금껏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으니까.”

나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눈에 열이 올라 뜨끈뜨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침대로 향했다. 너의 곁에 누워서, 내 팔을 베고 너를 바라보았다.

일단 자, 렌지.”

너는 내가 싫어진 거야?”

너는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입술을 움직였다. 네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들이 내게 박혀 들어왔다.

나한텐 아직 네가 너무 소중한데.”

너를 재우고 난 새벽, 나는 밤새 너를 떠올렸다. 네가 내게 내려준 수많은 커피의 향기를, 너와 함께 살을 섞을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곤히 잠든 너를 보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상을.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 기분이 어땠는지 너는 알 수 있을까. 내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는 네가 깨어나면 기억하지도 못할, 꿈속에서 너의 눈물이 멎기를 바라며 네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커피 내려 줘?”

.”

아침이었다. 너는 꼭 술을 마시고 나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거면 아예 마시지를 말든지. 나는 웃음기를 띤 얼굴로 너를 바라보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누워있는 너를 보면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보고 싶었어.”

문득 너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커피를 내리던 와중에도 너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너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자고 일어나면 없을 줄 알았거든.”

자기가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너는 내 말을 듣는 편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너는 내가 커피를 내밀고 나서야 얼굴에서 손을 떼어냈다. 생각 외로 네 얼굴은 평소와 별다름이 없었다. 왜 굳이 가려야만 했는가,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그저 내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던 걸지도. 나는 컵을 들고 조심스럽게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너는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한 번 크게 했다. 오늘따라 커피 향이 좋았다. 웬일로 네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기에 나는 커피를 마시며 눈동자만 옮겨 너를 바라보았다. 애석하게도 네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어지러워.”

숙취?”

조금. 계속 컨디션이 안 좋았거든.”

나 때문에?”

.”

나는 짧게 웃었다. 천하의 렌지를 이렇게 다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네. 너는 내 말에 답하지 않고 그저 커피만을 마셨다. 나는 문득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괜히 너의 머그와 나의 머그를 부딪쳤다. , 하는 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숙취엔 섹스만 한 게 없는데.”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걸.”

당연하지. 내가 방금 만들어 냈으니까.”

내 말에 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정도면 꽤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나는 네 머리 위에 내 머리를 가볍게 얹듯 기대었다. 너의 체온이 따끈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면 숙취 해소 좀 도와줘.”

그럼 힘 좀 써볼까.”

. 커피 다 마시고, 잠 좀 깨면.”

너와 나는 거의 동시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끝에 입술에 한 피어싱이 차갑게 제 존재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렌지랑 처음으로 키스했을 때, 충동적인 그 상황에서도 렌지는 내 피어싱이 낯설다고 얘기했었지.

나는 괜히 네게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졌다.

뜬금없이.”

그냥 말해보고 싶었어.”

그거 알아? 네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 거, 이번이 처음이야.”

그랬나?”

너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너는 내가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사랑한다는 말 좋아해, ?”

.”

나도 이제 좋아해.”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감각,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쭉 너를 사랑해 왔던 걸지도. 변화의 순간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나는 몸을 가볍게 빼어 너의 입술을 찾았다. 너의 입술에서는 쌉싸름한 커피의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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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모가 죽었다는 설정  #연성교환용 글

 

 

죽음을 복기하는 법

 

Y A G I

For. 이나링

 

CLOSED.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문을 닫은 헬터 스켈터의 안에는 우타와 이토리가 나란히 바에 앉아있었다. 이토리는 오른손의 끝으로 와인 잔의 가장자리를 매만졌다. 깊은 침묵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우타였다.

걔는 꼭 우리가 친구가 아니라고 그랬지. 친구라곤 우리밖에 없었으면서.”

그 말에 이토리가 작게 웃었다. 맞아. 걔는 항상 그랬어.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없는 요모를 떠올리고 있었다. 시체조차 회수하지 못한 그를, 그가 없는 곳에서 기억해내고 있었다. 차라리 기억해 내는 것조차 희미하면 좋겠는데, 또렷하게 기억이 나 도리어 더 괴로운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뭐라고 한마디 보탤 것 같네, 우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혈주를 한 모금 목 뒤로 넘겼다. 이토리의 작고 나긋한 목소리가 우타의 귀로 흘러들었다.

그래도 행복했겠지, 렌지.”

마지막에 우리를 떠올렸을까?”

그러게. 우 씨는 어땠으면 좋겠어?”

모르겠어. 마지막까지 기억되는 건 좋은데, 그러면 걔가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할 것 같아서.”

나도 마찬가지야.”

정적이었다. 세 사람은 종종 이런 정적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들은 별 대화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사이였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어느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그런 관계. 오래 알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모 하나가 없는 상태에서의 정적은 버티기 힘들었다. 자꾸 요모의 마지막이 우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친구로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우타는 그 말로 요모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보냈다. 아니 어쩌면 그 상태의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게 맞을지도. 저쪽의 세계에 존재하는 죽음만이 그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어렵구나.”

우타가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로 어려웠다. 하지만 무엇이 어려우냐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답하기는 힘들었다. 그냥 어려웠다. 그의 죽음을 복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어려웠고, 그가 없는 지금 이 상황도 어려웠고, 이름을 지어줄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을 버텨내는 것도 어려웠다.

우타는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영 즐겁지 못했다.

이렇게 버텨내기 힘들 줄은 몰랐는데.”

우 씨, 술에 물 들어가면 술맛 떨어져.”

알고 있어. 알고 있는데.”

우타의 목소리는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우타는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을 닦아내지 않았다. 그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미끄러지듯 잔 속의 핏물에 섞여들었다. 우타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그의 속눈썹에 맺힌 눈물이 때를 놓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늘 일은 다른 사람에겐 비밀로 해 줘.”

알았어. 못 본 거로 해줄 테니까.”

이토리의 목소리도 우타와 비슷하긴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척하며 서로의 술을 삼켰다.

오늘은 술맛이 없네, 나도.”

이런 날에 술이 맛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취하기도 힘들어, 이런 날은.”

그래도 취해야지. 그렇게 버텨야지.”

두 사람의 잔이 마주치는 소리가 깜깜한 가게를 나지막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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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구울 전력 60분 : 돌담길  # 고교생 AU

 

 

 

상승기류

 

Y A G I

 

커다란 눈송이가 하늘에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요모는 눈을 끔뻑이며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하늘이 세상을 낮게 가리고 있었다. 요모는 슬쩍 눈을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날씨가 제법 추워졌지만 우타는 여전히 교복 앞섶을 풀어헤친 채 다니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요모는 하얀 숨결을 뱉으며 생각했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요모도 우타도 둘 다 딱히 어떤 동아리에 들지 않아 두 사람의 하교는 항상 남들보다 빨랐다. 요모는 한산한 하굣길을 좋아했다. 우타의 집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요모보다 키가 아주 조금 더 큰 돌담길에 하얗게 눈이 쌓이고 있었다.

, 그거 알아?”

어떤 거?”

가만히 쌓인 눈을 바라보고 있던 우타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요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모는 조용히 우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재미있는 게 생각난 모양인지, 우타의 표정에는 그 특유의 미소가 만연하게 퍼져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돌탑을 쌓으면서 소원을 빈대.”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거지.”

요모는 흠. 소리를 냈다. 사실 소원이고 어쩌고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동하지 않았다. 그저 요모는 별 이유를 대지 않고도 우타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다는 게 좋았을 뿐이었다.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고 얼굴을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흔치 않았다.

우타가 사는 곳과 요모가 사는 곳이 정반대에 있음에도, 요모가 그것을 숨기고 우타와 함께 하교를 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면, 그 얼굴을 볼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지니까.

왜 하필이면 돌탑일까.”

쌓는 데 공을 들여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런가, 하고 우타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요모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평소보다 조금 더 톤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렌지도 해볼래?”

너는?”

좋아. 누가 더 잘 쌓나 내기하는 거야.”

요모는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주위에 있는 돌을 최대한 쌓아서 탑을 쌓았지만, 애초에 이런 길에 돌탑을 쌓을 만한 돌이 많을 리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의 돌탑은 낮고 어딘가 허술해 보였다. 우타는 그것들을 보며 맑게 웃었다. 내리는 눈과 비슷한 느낌의 웃음이었다.

둘 다 별거 없네.”

이래서는 소원 들어주러 오다가도 가버리겠다.”

그건 좀 싫은데. 우타의 말에 요모는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비록 결과물은 이래도 나름 열심히 쌓은 건데. 그래서 요모는 갑자기 자신이 쌓은 돌탑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것이 문득 우타를 향한 자신의 마음에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집에나 가자.”

.”

두 사람은 미련 없이 다시 발을 옮겼다. 아까보다 조금 더 엷게 쌓인 눈이 두 사람의 발아래에서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렌지는 무슨 소원 빌었어?”

그런 건 원래 말 안 하는 거잖아.”

그래도. 소원이 이뤄질지도 모르잖아.”

요모는 잠시 우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잔뜩 호기심이 동한 표정이었다. 요모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말 안 할래.”

그럼 나도 내 소원 말 안 해줄 거야.”

그러시던지.”

아쉽긴 했지만 우타의 소원을 듣는 대가가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라면, 요모는 과감히 그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우타는 자신이 우타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건데, 어떻게 그 소원을 말할 수 있을까. 요모는 자신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괜히 그 소원이 이뤄지는 상상을 해서 그랬다.

공연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요모는 우타의 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얼른 나오기를 빌었다. 요모는 발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을 그저 추위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우타가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이쪽으로 갈게.”

, 잠깐만.”

두 사람은 평소처럼 갈림길에 서서 인사를 나누려 했다. 우타가 요모를 잡지만 않았더라도 요모는 우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이 가지 않을 골목의 입구에 서서 아주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둘이 함께 걸었던 돌담길을 혼자서 되돌아 걸으며 우타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복기하려고 했다.

우타가 요모의 뺨에 입을 맞추지만 않았더라도 아마 요모는 평소처럼 그렇게 우타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요모의 차가운 뺨에 닿는 우타의 입술은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요모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참아버렸다.

, 하고 우타의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그 찰나의 순간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것만 같았다. 우타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말을 건넸다.

너무 쉬운 소원은 빌지 말았어야지. 모처럼의 기회였는데.”

내 소원, 그게 아니었는데…….”

진짜? 그럼 뭐였는데?”

잡는 거.”

요모의 말에 우타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요모는 괜히 고개를 돌려 우타를 바라보지 않았다. 진짜, 너무하다니까. 우타는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너무 쉬운 소원이잖아 그건.”

내 소원 말했으니까. 우타 네 소원도 말해줘.”

요모는 괜히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요모는 자신의 심장이 또 눈치 없이 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타가 자신과 비슷한 소원을 빌어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요모는 그런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우타는 일부러 뜸을 들이다 소중한 것을 말하는 것처럼 요모의 귓가에 손을 대고 작게 자신의 소원을 속삭였다.

렌이 사는 쪽으로 하교하는 거.”

알고 있었어?”

.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왜 지금까지 얘기를 안 해 준거지. 요모는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꼭꼭 감춰두고 싶었던 걸 제일 찾지 말아줬으면 하는 사람이 찾아버린 게, 괜히 신경에 걸렸다.

우타, 너는 눈치가 너무 빨라.”

그래서 싫어?”

아주, 아주, 아주 조금.”

렌지가 좋아서 렌지 한정으로 눈치가 빠른 건데.”

요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우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싫어?”

……아니.”

역시 렌지는 좋다니까.”

우타가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요모가 좋아하는 우타의 모습이었다. 하기사 싫어하는 모습이 존재할 수 있을 리도 없었지만. 요모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타는 요모에게 한 발짝 다가가 아까와는 반대쪽 뺨에 입술을 맞댔다.

이건 서비스야.”

요모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우타의 입술이 닿은 곳이 어쩐지 간질간질한 것만 같아 요모는 손끝으로 그곳을 만지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만 했다.

내일은 손잡고, 렌지 집 쪽으로 가는 거야.”

.”

잘 가, 렌지. 내일 봐.”

우타.”

?”

이번에는 요모가 우타를 불러 세웠다. 우타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요모를 바라보았다.

   “내일도해 줘.”

   “뭐를?”

   요모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우타가 꽤나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 더 장난 안 칠게. 내일도 해줄 거니까. 기대하고 있어, .”

   요모는 우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얀 눈에 가려 우타가 사라졌을 때 요모는 그제야 우타가 입을 맞췄던 자리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어째서인지 아직까지도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서, 요모의 심장이 또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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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13권의 이야기  #진단메이커

 

 

너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Y A G I

 

   삶의 바닥에 닿았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란 게 있었다. 요모 렌지는 발을 우뚝 멈췄다. 갖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감각이 요모의 신경을 거칠게 찔러대고 있었다.

   “우타.”

   “역시 렌지구나.”

   그림자 속에서 우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이 상황을 자신이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태연한 미소였다. 요모 렌지는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피에로의 방향과 목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요모의 눈앞에 있는 우타는, 그의 오랜 친구인 우타가 아니라 피에로라는 조직에 속해있는 우타라는 구울이었다.

   “켄을 따라가야겠어.”

   “당연히 안 되는 거, 알지?”

   카네키 역시 삶의 바닥에 닿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요모는 그런 그의 직감을 믿고 그를 식량조에서 이탈할 수 있게 도왔던 것이었다. 요모가 카네키의 일부러 카네키의 마지막을 배웅한 것은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우타가 여기 나타난 이상, 어쩌면 카네키의 끝은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몰랐다. 요모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뒤집어야만 했다. 카네키는 운명 따위에 굴복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요모 자신도 그랬다. 이 세상에 미리 정해진 것은 없었다. 삶은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엮인 것이라고, 요모는 믿었다.

   우타는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요모는 그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섰다. 보이지 않는 긴장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두 사람의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우타가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같네. 기억해?”

   “그걸 어떻게 잊겠어.”

   “기억해주고 있다니까 뭔가 기쁘네.”

우타는 여전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요모가 먼저 공격을 한다면, 우타는 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요모의 공격을 모두 피하거나, 반격을 할 것이다. 그렇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어쩌면 우타는 그때 끝내지 못했던 싸움을 이제야 끝내려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렌지는 그때 내가 어떻게 그렇게 강하냐고 물어봤었지. 그때는 대답 안 해줬는데, 지금 와서 답해도 괜찮을까?”

요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타는 천천히 원을 그리듯 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착하지 않으면 돼. 집착하지 않으면 강해질 수 있어.”

우타.”

렌지. 나는 렌지를 소중하게 생각해. 물론 카네키도 그렇지만, 내게는 렌지가 더 소중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지금 물러서 주면 렌지는 살려줄 수 있어. 렌지. 이건 친구로서 하는 말이 아니야. 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야.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렌지는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우타의 나긋한 목소리가 요모의 명치를 아프게 두드렸다. 이런 때 왜 우타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떠오르는 걸까. 그냥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있으면 좋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럴 때.

렌지는 어떤 선택할 거야?”

나는집착하지 않으면 강해진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어.”

, 그렇다면?”

강해지려면 집착해야 해. 내 삶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삶에.”

그런 삶은 재미가 없잖아.”

우타는 발을 뚝 멈췄다. 요모의 바로 앞이었다. 요모는 우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우타의 날카로운 눈꼬리가 조금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유감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오답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요모는 정답을 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기 때문에.

나는 재미로 살아가는 게 아니야.”

그런 모습이 재밌는 거, 알아? 열심히 살아보려고 버둥거리는 그런 모습이?”

그래서 나에게 좋아한다고 얘기한 건가?”

요모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우타와 친구로 지냈던 시간들, 그리고 애인으로 지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우타에겐 모두 그런 것이었나. 그러나 우타는 바로 표정을 굳히고 아니, 하고 답했다.

그런 거였으면 이런 선택지도 안 줬어. 나는 렌지를 아직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렌지의 앞에 있을 수 있는 거야.”

요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진심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렌지. 다시 한번 더 물어볼게. 정말로 피에로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질문을 이런 때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요모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타는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 우리는.

, 나는 기왕이면 네 옆에서 웃고 싶었는데. 어쩌면 이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우타가 손을 뻗었다. 요모는 그것을 피하려 했지만 우타의 손이 빨랐다. 우타는 요모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랑해, .”

마찬가지야.”

그들의 마지막 말이었고, 마지막 입맞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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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 키쇼 X 나가치카 히데요시

 

 

바라보기

Y A G I

 

 

  “그래서 말인데요, 타키자와 씨.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뭔데?”

  “안대라는 이름의 구울을 어쩌다가 들어서요. 무섭잖아요. 안대라니.”

  나가치카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타키자와 쪽으로 몸을 가볍게 기울였다. 마치 비밀 이야기라도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타키자와는 그런 나가치카의 어깨를 슬쩍 밀어내며 말했다.

  “그런 건 어디서 들은 거야?”

  “그냥, 돌아다니다보면 여기저기서 들리잖아요.”

  나가치카는 타키자와가 두고 간 서류에서 안대라는 이름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CCG의 아르바이트생으로서, 거기까지는 손대면 안 되는 정보였다. 나가치카는 제 속내를 숨긴 채 입술에서 미소를 떼어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조금만 알려주시면 안 돼요? , 어떻게 생겼는지나.”

  “. 나는 한 번도 본 적은 없어서. 그래서 내 상사인 아몬 씨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타키자와.”

  낯선 목소리가 그들의 대화 사이에 얹혔다. 나가치카와 타키자와는 동시에 뒤를 돌아봤고, 타키자와는 보통 당황한 것이 아닌 듯 순식간에 몸을 굳히고 눈앞을 바라보았다. 반면에 나가치카는 눈을 끔뻑이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흔치 않은 흰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매와 그를 숨기지 못한 얇은 테의 안경.

  “, 아리마 특등!”

  “외부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색이 엷은 남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나가치카는 자기도 모르게 그 입술이 단어 하나하나를 발음할 때마다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가치카가 정신을 차린 것은 타키자와가 허리를 깊이 숙여 그에게 사과를 했을 때였다. 나가치카는 얼른 그의 뒤를 따라 허리를 굽혔다. 자신의 발끝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아직 이야기를 하기 전이었으니까. 내가 적절한 때 이야기를 끊은 것 같군.”

  타키자와를 보던 아리마의 눈빛이 천천히 나가치를 향했다. 나가치카는 자기소개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가치카는 한 번 더 허리를 굽혔다. 물론 이번에는 사과의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었다.

  “나가치카 히데요시. CCG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치카는 아리마의 시선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그리고 나가치카는 그것이 아마 자신이 아리마에게 보낸 시선과 같은 감정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호기심이었다. 그것도 제법 깊은 호기심.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나가치카의 옆에서 타키자와가 과장된 한숨을 쉬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나가치카는 뒤통수를 긁으며 눈썹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아리마 키쇼의 뒷모습에 박혀있었다.

 

  “저기, 아리마 씨.”

  “너는 아까.” 

  나가치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간이 깜빡이던 가로등이 어느 순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쌩쌩하게 백색 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나가치카는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어내곤 아리마의 앞에 섰다.

  “, 정식으로 CCG에 취업하고 싶은데요.”

  “그걸 왜 나한테 이야기하는 거지?”

  “아리마 씨는 높은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안 될까요?”

  나가치카의 말에 아리마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캐치하지 못할 나가치카가 아니었다. 나가치카는 그 웃음에서 일종의 확신을 보았다.

  “돌려 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면 한 번 고려는 해보도록 하지.”

  “안대의 정체도 궁금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아리마 씨가 더 궁금해졌어요.”

  “조금 더 솔직하게.”

  “보기보다 짓궂으시네요.”

  나가치카가 씩 웃어 보이며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아리마는 표정의 변화가 그렇게 다채로운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가치카는 그것이 좋았다. 아직까지 그가 자신을 숨기는 사람인지, 아니면 원래 감정 변화가 없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가치카는 사실 그 중 어느 것이라도 별로 상관없었다.

  어느 쪽이든 나가치카의 호기심을 잡아당겼고, 그 호기심은 빠르게 그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대상이 아리마 키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테지만. 아리마에게는 사람을 잡아끄는 어떤 것이 분명히 있었다.

  “아리마 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감정이 얼마나 커질지 궁금하군.”

  “적어도 CCG에 입사할 만큼은 커질 것 같아요.”

  “만약에 네가 입사를 하게 되면.”

  아리마는 그 말을 하고 숨을 한 번 쉬었다. 나가치카는 주먹을 살짝 쥐었다가 폈다. 일부러 애간장을 태우는 게 분명했다. 아리마는 그런 나가치카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가치카는 자신의 초조함을 들킨 것 같아 명치가 뜨끈해졌다.

  “많은 것을 알려주도록 하지.”

  “안대에 관한 거요? 아니면 아리마 씨에 대해서?”

  “욕심이 많군.”

  “그래서 싫어요?”

  “아니. 싫지 않아.”

  그 말을 하며 아리마는 오른손을 나가치카를 향해 뻗었다. 나가치카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 때문에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고작 이런 작은 행동 때문에.

  “둘 다 알려주도록 하지. 그리고 서비스로어른의 이야기에 대한 것도.”

  아리마는 소리 없이 웃으며 나가치카의 이마를 검지로 한 번 톡 건들고 손을 거두었다. 나가치카는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상당히 아쉬웠다. 하지만 여기서는 자신이 손을 내밀 타이밍은 아닌 듯 보였다. 그래서 나가치카는 기다리기로 했다. 아리마가 자신에게 직접 모든 것을 알려줄 때까지.

  “기대해도 되나요.”

  “글쎄. 기대는 하지 마. 실망하면 곤란해지니까.”

  “실망 하는 일 없을 거예요.”

  아리마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잔잔한 바람이 대로를 스치고 지나갔다.

  “수사관으로서 다시 만나는 날을 기대하지. 나가치카 히데요시.”

  “꼭 기다리고 계세요. 아리마 키쇼 선배님.”

  선배님이라니. 아리마는 그 말에 짧게 웃었다. 그래. 잘 해봐, 후배님. 아리마는 그대로 몸을 돌려 CCG 건물을 떠났다. 나가치카는 참고 있었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었다. 아리마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나가치카는 자신이 마음먹은 것은 어떻게든 해내는 스타일이라는 점이었다.

 

  나가치카는 아리마의 생각보다 훨씬 더 일찍 CCG에 입사했다. 아리마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그의 정장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띠었다. 나가치카는 시간이 나자마자 바로 아리마를 찾아 왔다는 말을 아주 빠르게 뱉었다. 그는 약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많은 것을, 배우러 왔습니다.”

  “그래. 알려주도록 하지. 약속했으니까.”

  아리마는 오른손을 나가치카에게 뻗었다. 나가치카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아리마의 손이 그의 이마를 건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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