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폭력 및 유혈 표현이 있습니다.

 

 

혈연

 

Y A G I

 

 

 

7

 

  무츠키는 제 앞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미츠키 토오루와 무츠키 토오루. K군을 살해한 두 사람. 무츠키는 테이블 밑에서 가늘게 손을 떨었다.

  살인자들.

  무츠키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정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츠키와 토오루는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태연해 보였다.

  이곳은 시내의 양과자점. 무츠키와 K군이 첫 데이트를 한 곳이었다.

  토오루야 잘 모르니 그렇다 쳐도, 미츠키가 사람을 죽이다니. 무츠키는 K군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미츠키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더욱 믿기지 않았다. 이것은 현실일까 꿈일까. 하지만 자신 주위의 모든 것이, 이 상황이 한낱 꿈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시간으로 일깨워주고 있었다.

  “무츠키 언니, 괜찮아요?”

  “…….”

  “괜찮아야지요?”

  토오루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K군을 찌르기 직전에도 보였던 그 미소. 무츠키는 몸을 가볍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오루는 시럽을 가득 넣은 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협박이자 부탁이에요.”

  토오루는 목소리를 착 내리깔고 말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들어본 것 중에서 가장 섬뜩한 목소리였다. 토오루는 아주 천천히 단어를 내뱉었다.

  “저야 감옥에 가도 상관없으시겠지만, 미츠키 언니는 아니잖아요?”

  바닥을 내려다보는 무츠키의 시선이 흔들렸다. 미츠키가, 감옥에 간다면.

  무츠키는 본래가 무른 사람이었다. 더해서 이번 일로 인한 충격 때문에 안 그래도 약한 멘탈이 거의 바스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토오루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법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같이 묻었으니까요, 시체. 무츠키 언니도, 공범이라구요.”

  “하지만 나는!”

  “두려워서 그랬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질 것 같나요?”

  무츠키의 머리가 하얗게 표백되기 시작했다. 셋이서 함께 무른 땅을 파 K군의 시체를 묻은 바로 그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흙더미 속으로 가라앉는 K군의 모습은, 누구도 K군이라고 믿지 못할 그런 모습이었다.

  드러난 뼈와 내장, 말라붙기 전의 선혈은 아주 붉은 색이었다. 한때는 생명을 말했던 입술은 힘없이 열려 있었으며 온전한 한쪽 안구는 충격으로 인해 뒤로 넘어가 눈동자를 확인할 수 없었다. 얼마나 바닥을 긁었는지 손톱 몇 개는 뒤로 꺾여 빠지기 직전이었으며 반사적으로 흘러나온 소변의 농도는 아주 짙었는지 암모니아 특유의 냄새가 피 냄새와 섞여 코를 찔렀다.

  무츠키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고 해서 그 장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K 오빠에 대한 일은 미안해요.”

  “…….”

  “하지만, 무츠키 언니를 위한 일이었어요.”

  “무슨 뜻이야?”

  무츠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토오루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상태였다.

  “무츠키 언니도 알고 있잖아요? K오빠와 교제한 이후부터 미츠키 언니를 소홀히 했다는 걸.”

  “나는.”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행동하더니, 남자가 생겼다고 바로 그렇게 변하는 게 어디 있어요.”

  그렇다고 살인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미츠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K군을 묻으며 오히려 정신이 맑아진 탓에, 미츠키는 토오루의 말이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수법.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미츠키는 토오루를 말리거나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미츠키는 그저 고개를 돌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어딜 봐도 살인을 한 자의 모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미츠키 언니는 많이 힘들어했어요. 오죽했으면 친하지도 않은 저에게 연락해서 눈물을 보였을까요.”

  사실이 아니다. 미츠키는 그걸 알고 있었지만 말을 얹지는 않았다.

  “무츠키 언니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K 오빠를 묻으라고 했던 거고.”

  무츠키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무츠키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무츠키는 머릿속으로 토오루의 말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그런 것은 아닐까. 정말 내가 잘못 처신했던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은 아닐까.

  “걱정 말아요. 들킬 염려는 없으니까.”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면, 믿을래요?”

  그 말을 하는 토오루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무츠키는 물론이고 미츠키도 그 목소리에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토오루의 말은 단순한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잘 처신하지 않으면, K군과 똑같은 처지가 된다.

  두 사람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리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토오루였다. 미츠키와 무츠키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다가 카페를 떠났다.

 

  “무츠키.”

  “말 걸지 마.”

  두 사람은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둘 사이에 사람 하나 정도의 공간을 두고 떨어져 있었다. 예전의 두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리감이었다. 미츠키는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말을 이었다.

  “나보다, K군이 더 소중했던 거야?”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태연하게 행동하는 게 좋을 거야.”

  미츠키의 속삭임. 무츠키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토오루와 아주 닮아있는 눈이었다.

  “……들키기 싫으면.”

  “미츠키.”

  횡단보도의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었다. 미츠키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미츠키 토오루!”

  “, 무츠키 토오루?”

  무츠키 토오루.

  토오루.

  우리 셋의 이름이었다.

  “우리는 그 이름으로 이어져 있어. 그 피로 이어져 있다고.”

  무츠키는 미츠키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부정한 피로 이어진 자매들. 세 사람을 묶은 결박을 풀 수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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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및 유혈의 표현이 있습니다.

 

 

혈연

 

Y A G I

 

 

 

6

 

  집으로 돌아온 무츠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미츠키와 토오루가 그 양과자점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미츠키는 무츠키에게 스콘을 받아들었다. 미츠키는 태연하게 무츠키를 맞이했다.

  “어땠어?”

  “엄청 긴장했는데, K군이 덕분에막 어색하지는 않았어.”

  그 말을 하며 무츠키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미츠키는 웃으며 그런 무츠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좋아?”

  “…….”

  “오늘은 피곤할 테니까 씻고 일찍 자.”

  무츠키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곤 씻고 오겠다며 욕실로 향했다. 그 틈을 타 미츠키는 휴대 전화를 꺼내 토오루에게 문자를 남겼다.

  [할게.]

  그 말이면 충분했다. 미츠키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천장등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시야가 타들어 가듯 군데군데 검게 얼룩졌다. 미츠키는 눈을 감았다.

 

  그 뒤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 무츠키와 K군은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반 안에서는 공공연하게 둘이 썸을 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무츠키와 미츠키의 삶에 K군이 더해지는 것은 이젠 익숙한 일이었다. 셋은 종종 함께 시내에 나갔다. 최근에는 K군과 함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 적도 있었다. 부모님은 K군이 아주 바른 아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무츠키는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무츠키와 K군은 점점 서로에 대한 것을 알아갔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삶의 기준과 세상을 보는 시야 같은 것. 알면 알수록 두 사람은 서로가 닮아있다고 느꼈다. 그 덕에 두 사람의 마음은 더욱 빠르게 가까워졌다.

  미츠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 사람의 옆에서 웃었고, 가끔은 무츠키의 연애 상담을 들어주기도 했다. 아무도 어떠한 이상을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만 흘렀다. 매미 울음소리가 한낮의 열기를 흔들어 놓을 때쯤, 학교는 여름 방학에 들어갔다. 그해 여름은 전례 없는 폭염을 기록했고 해는 점점 더 길어졌다.

  토오루에게 문자가 온 것은 그즈음이었다. 여름의 중간, 날이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다.

  [오늘이야.]

  미츠키는 그 문자를 보고 휴대 전화를 닫았다. 토오루와 꾸준히 연락이 닿았던 것은 아니었다. 미츠키는 토오루의 계획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토오루에게 물어도 그저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토오루에게서 떨어진 지명은 이것이었다. 무츠키와 K군을 만나기. 이는 쉬운 일이었다. 셋이서 함께 어딘가에 가는 것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학교 근처 공원에서 만났다. 공원이라고 했지만 그 크기는 아주 작았고, 웃자란 풀들이 공원의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공원 뒤로는 산, 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까운 지형이 있었고, 이 동네 사람들은 그 언덕을 산책 삼아 오르내리곤 했다.

  미츠키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K군은 보였지만 토오루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토오루는 무슨 생각인 걸까. 미츠키는 조금 불안했지만 그를 티 내지 않으려 했다. 다행인지 사랑에 눈이 먼 무츠키와 K군은 미츠키의 심경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관찰 숙제하기엔 딱 좋을 것 같아.”

  여름 방학 관찰 숙제는 미츠키가 두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내기 위한 핑계였다. 세 사람은 산책로를 따라 언덕을 올랐다. 언덕의 초입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곧 키가 큰 나무들이 즐비한 공간이 나왔다. 햇볕이 드문드문 들어오고 어디선가 바람도 불어왔기에 더위를 크게 느끼지 않아도 좋은 공간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나오는 공터는 공터라기보다는 작은 공간, 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긴 했지만, 두 개의 벤치와 식수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무츠키는 당연한 듯 미츠키의 곁이 아닌, K의 곁에 앉았다.

  “여기쯤에서 시작할까. 더 들어가면 내려오기도 힘드니까.”

  “, K군은 뭐 관찰할 거야?”

  “글쎄……. , 여기 있는 야생화들을 탐구해보는 건 어떨까. 종류도 많아 보이고.”

  두 사람의 대화에서 미츠키는 자연스럽게 제외되고 있었다. 미츠키는 연필의 뒤를 씹었다. 두 사람은 소곤대듯 웃고 있었다. 미츠키는 묵묵히 노트를 펼쳤다.

  벨 소리가 울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토오루일까? 미츠키는 자신의 휴대 전화를 꺼냈지만 들어오는 전화는 없었다. 여보세요, 하고 무츠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 토오루? ? 뒤를 봐?”

  그 말을 하며 무츠키는 몸을 돌렸다. 산꼭대기에서 이 공터로 내려오는 길목에, 토오루가 서 있었다. 토오루는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토오루의 흰 머리카락이 흩어지는 햇빛에 반짝였다.

  “언니들, 잘 지냈어요?”

  미츠키는 도대체 토오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들이 모두, 토오루의 계획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토오루는 고작 중학생이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는 본인이 몸으로 느껴서 알고 있었다. 토오루의 계획은 과연 얼마나 꼼꼼할까? 오히려 K군과 사이만 더 나빠지는 게 아닐까. 미츠키는 불안감에 몸을 일으켰다.

  “토오루!”

  “토오루?”

  K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야 K군은 토오루를 처음 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무츠키와 똑같은 얼굴에, 토오루라는 이름까지. K군은 무츠키와 토오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토오루는 그런 K군 앞에 서서 허리를 꾸벅 굽혔다.

  “안녕하세요. 무츠키 토오루입니다. 미츠키 언니와 무츠키 언니의 동생이에요.”

  “동생이 있었어?”

  “사정이 좀 있어서요.”

  토오루는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K군은 흘긋 쌍둥이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이 태연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동생이라는 것도 사정이 있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닌 듯싶었다.

  K군의 경계는 너무도 쉽게 허물어졌다. 토오루는 몸을 굽혀 K군의 노트를 바라보았다.

  “, 관찰 숙제 중이셨구나.”

  “. 토오루도 관찰 숙제 때문에 여기 온 거야?”

  “. 사실은, 이제 숙제를 해야 하는데, 언니 오빠들이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사람 좋은 K군은 응, 하고 말하며 웃었다. 토오루는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곤 뒤로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 가방 안에서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노트 따위를 찾고 있는 것이겠지.

  그러나 토오루의 손에 들린 것은, 날카롭게 벼려진 작은 칼 하나였다.

  “옛날부터, 사람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했어요.”

  “토오루?”

  “도와주세요, 오빠.”

  토오루가 K군에게 달려든 것은 순간이었다. 미츠키는 그 상황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똑똑히 지켜보았다. 토오루가 K군을 넘어트리는 것. K군이 발버둥 치는 것. 토오루가 K군의 눈을 찌르는 것. 소리를 지르는 무츠키. 흔들림 없는 토오루의 손. 무츠키는 토오루를 밀어내려 했다.

  미츠키는 그런 무츠키를 껴안았다.

  “괜찮아, 무츠키.”

  비명은 없었다. 토오루를 길게 숨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K군이 그 아래에서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었다.

  “토오루, ……! !”

  무츠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꿈은 아닐까. 이게 정말, 현실일까.

  토오루는 또 싱긋 미소지었다. K군은 토오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상처로 흘러나가는 숨을 붙잡으며 기어가고 있었다. 토오루는 그런 K군의 등을 발로 밟았다. 고통에 찬 신음이 흘렀다. 토오루는 미츠키에게 칼을 내밀었다.

  “마무리는 언니가 해요.”

  “미츠키!”

  “할 수 있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미츠키는 토오루를 껴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은 미츠키에게 파편처럼 남아있었다. 조각조각 부서진 기억이, 미츠키의 정신을 이리저리 찌르고 상처입히고 있었다.

  확실한 건 자신은 분명, 즐기고 있었다.

  날붙이가 육체를 가르는 감각. 파고들었던 칼을 붙들어 놓는 살의 조직, 힘으로 그것을 다시 빼었다가 반동을 이용해 더 깊이 찌른다. 틈 사이로 보이는 근육의 조직들. 조금 더 파헤쳐 가면 보이는 희고 흰 뼈.

  미츠키는 분명, 사람을 찌르며 웃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그토록 아꼈던 동생의 애인을, 연적의 상대를, 앞자리 동급생을, 깨끗했던 한 사람을, 몇 번이고 찌르고 죽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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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Y A G I

 

 

5

 

  미츠키와 토오루는 무츠키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토오루는 말했던 대로 마카롱을 왕창 주문해 왔다. 맛별로 두 개씩. 미츠키와 하나씩 나눠 먹을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미츠키는 마카롱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미츠키의 정신은 온통 무츠키와 K군의 대화로 쏠려있었다.

  “그래서, K군은 언제부터 사격한 거야?”

  “어렸을 때 우연히 체험하게 되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그때부터 빠져들었어.”

  “진로는 그쪽으로?”

  “아냐, 사격은 그냥 취미야, 취미.”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구나, K군은.”

  두 사람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미츠키의 마음이 일렁였다. 그렇구나. K군은 어렸을 때부터 사격했었구나. 사격하는 모습은 어떨까. 책을 읽는 모습과는 다르겠지. 친절한 그 모습이, 사격할 때도 그대로 있을까.

  나에게는 보여주지 않을 모습을 무츠키에게만 보여줄 때도 있겠지. 어쩌면, 무츠키와 나 사이에 비밀이 생길지도 모르지.

  “미츠키 언니.”

  토오루의 부름에 미츠키는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토오루는 혀로 입술을 훑었다. 한쪽 턱을 괴고 있던 토오루는 가만히 무츠키를 바라보았다.

  “좋아하나 봐요. K라는 오빠를.”

  미츠키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어떠한 말이 된다는 것을 미츠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부정을 해야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었다.

  토오루는 흐음, 하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마카롱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솔티 캐러멜. 토오루의 입안에서 얇은 소금 막이 부서졌다.

  “좋아하면, 고백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무츠키가 더 먼저 좋아했는걸.”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 맞죠?”

  “하지만 그러면, 무츠키랑 멀어질 것 같아서…….”

  “, 하긴. 그렇겠구나.”

  토오루는 태연하게 말하며 솔티 캐러멜 마카롱을 끝까지 먹었다. 미츠키는 토오루에게 이런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쩐지 불편했다. 무츠키에게 직접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무츠키에게 숨기고 싶은 것을 들킨 것만 같았기 때문에.

  어쩌면 무츠키와 미츠키 사이의 비밀은, 이미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츠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양과자점의 커피는 유난히 쓴맛이 강했다. 단 음식과 함께 먹기 위함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문제일까. 얼음이 서로 부딪히며 쨍강, 하는 소리를 냈다. 미츠키는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레이스의 무늬가 유리 아래서 일렁였다.

  “미츠키 언니.”

  미츠키는 고개를 들어 토오루를 바라보았다. 토오루는 미츠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림 없는 그 눈동자에 미츠키는 몸을 흠칫 떨었다.

  “제가 도와줄까요?”

  “?”

  “K 오빠에 대한 거예요.”

토오루의 목소리를 착 가라앉아있었다. 토오루의 양손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포개어져 있었다. 토오루는 위에 올려진 손으로 다른 손의 손등을 원을 그리듯 매만졌다.

괜찮아. 진짜 안 이어져도.”

하지만 무츠키 언니가 K 오빠랑 사귀게 되면, 언니랑 멀어질 거 아니에요.”

아냐. 무츠키는 그런 아이가 아닌걸.”

그럴까요.”

  토오루는 고개를 돌렸다. 뒷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미츠키는 토오루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무츠키와 K군이 앉아있는 바로 그 자리를 꿰뚫어 보듯 보고 있었다. 마침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넘어왔다. 무슨 말을 저렇게 즐겁게 하는 걸까.

  K 군의 태도로 보았을 때 두 사람은 서로를 좋아하고 있겠지.

  아마 사귀게 되는 일도, 얼마 남지 않았을 거야.

  등교할 때 앞으로 무츠키는 K군과 함께 등교하게 될까.

  점심시간, 교내의 어딘가에서 둘이 입을 맞추게 되지는 않을까.

  그 모든 일의 옆에, 내가 없는 것은 아닐까.

  미츠키는 자신의 머릿속이 뱅글뱅글 도는 것만 같았다. K군 옆에 있고 싶은 걸까. 무츠키 옆에 있고 싶은 걸까. 미츠키의 욕망은 자꾸만 형태를 바꾸어갔다. 일그러지기 시작한 욕망은 미츠키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피가 빠르게 돌았다. 생각이 비정상적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미츠키의 과거가 엉킨 필름처럼 엉망으로 섞였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웃는 무츠키, 시험을 망쳐 걱정하는 무츠키, 실내화에 구멍이 나 새로 사야겠다고 말하는 무츠키. 젓가락을 쥐고 있는 무츠키의 손. 단정한 무츠키의 손톱. 무츠키가 읽던 책. K군이 읽던 책. 교복 아래로 보이는 하얀 양말. 눈에 무언가가 들어갔는지 연신 눈을 비비던 그 뒷모습. 머리를 자를 때가 된 K. 무츠키를 보고 웃는 K. 나의 존재를 불편해하는 K. 가볍게 닿는 두 사람의 손등. 일부러 무츠키의 발걸음을 맞춰주는 K군의 발걸음.

  토오루는 그런 미츠키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K 오빠가, 없어지면 돼요.”

  미츠키는 토오루를 바라보았다. 토오루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들이 조금만 도와주면 돼요. 그러면 언니들은, 예전처럼 지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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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Y A G I

 

4

 

  그 이후의 일상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게 흘러갔다. 여전히 두 자매는 함께 등교하고, 수업을 듣다가, 하교했다. 두 사람은 토오루를 만난 사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아니면 잊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듯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토오루가 그들 곁을 맴돌거나 갑작스레 나타나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일상 속의 긴장을 천천히 누그러트리기 시작했다. 웃고 떠드는 삶의 반복. 그들은 그 평범함의 소중함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총명한 아이들이었다.

  “저기, K.”

  변화가 있다면, 무츠키가 K군에게 아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것 정도일까. 미츠키는 K군의 뒷자리에서 무츠키가 그에게 말을 거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싱글싱글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무츠키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기, , 부활동, 언제 끝나는지 궁금해서…….”

  “오늘은 부활동 없는 날이야. 근데, ?”

  “시내에 양과자점이 새로 생겼더라구. K, 혹시 단 걸 좋아한다면…….”

  무츠키는 거기까지 말하고 더는 입을 열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나서야 하나? 미츠키는 무츠키의 눈치를 살폈다. 무츠키가 무언가를 더 말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이럴 때는 어쩌면 좋나……. 그렇게 생각하며 미츠키가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 준비를 했을 때, K군이 입을 열었다.

  “방과 후에 같이 갈래?”

  짜식, 사내 노릇은 하네. 미츠키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무츠키는 아예 귀까지 빨개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 미츠키도 같이 가는 거야?”

  “나는 선약이 있어서. 둘이서 잘 다녀오세요.”

  K군 몸을 돌려 미츠키를 바라보았다. 미츠키는 그런 그들에게 손까지 흔들어 보이며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눈치 없게 그사이에 끼어들 수는 없지. 미츠키는 무츠키만 알도록 살짝 윙크했다. 무츠키는 아주 행복한 듯 웃었다.

  K군은 또 머리를 매만졌다. K군의 버릇. K군에게도 이건 긴장되는 일이었을까. 미츠키는 그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지켜보다가 책상에 엎드렸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너무도 쉽게 과거를 잊는다. 분명히 포기하기로 했는데 어째서 아직도 마음이 아린 걸까. 미츠키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여전히, K군과 무츠키 사이에서 중요한 것을 따지자면 당연히 무츠키였다. 무츠키가 행복한 것이, 미츠키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미츠키 혼자서 하교하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무츠키는 지금쯤 K군과 함께 있겠지. 미츠키는 다소 멍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한테도, 스콘 사서 준다고 했으니까. 미츠키는 그 말로 자신을 달랬다. 달래지지 않는 감정이지만, 달랠 수 있다고 믿었다.

  “미츠키 언니.”

  그런 미츠키 앞에, 토오루가 서 있었다. 학교 근처 사거리였는데, 그 많은 인파 속에서도 토오루는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그의 흰 머리카락 때문일까, 아니면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까. 어쨌든 미츠키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토오루에게 손을 흔들었다.

  “, 토오루. 토오루도 하교 중이구나.”

  “. 근데, 무츠키 언니는 어디 있어요?”

  당연한 질문이었다. 미츠키와 무츠키는 떨어져 다니는 일이 드물었으니까.

  “뭐라고 하면 좋을까. 데이트?”

  “데이트요?”

  토오루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귀엽긴 하단 말이지. 미츠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시내에 새로 생긴 양과자점 알아?”

  “, 알고 있어요. 거기로 갔구나.”

  토오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토오루도 알고 있었구나. 어쩐지 토오루라면 그런 데에 관심이 없을 것 같았는데. 미츠키는 토오루를 바라보았다. 토오루의 얼굴은 시선을 살짝 위로 올려야 볼 수 있었는데, 미츠키는 그 표정이 어쩐지 굳어있다고 느꼈다.

  “언니, 우리도 안 갈래요?”

  갑자기 멈춰 선 토오루가 미츠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이었다. 미츠키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 에이, 그럴 수는 없지.”

  “하지만 궁금하잖아요? 무츠키 언니가 잘하고 있는지.”

  토오루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미츠키는 토오루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읽었다. 토오루의 손끝이 미츠키의 상의를 가볍게 잡았다.

  그것은 무츠키의 버릇이었다. 무츠키 토오루의 버릇이었다.

 

  미츠키는 양과자점으로 향하면서도, 어째서 토오루의 말을 단호하게 내치지 못했는가를 생각했다. 정말 무츠키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일까? 토오루는 자신의 옆에서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아주 신나는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

  미츠키는 아까 보았던 토오루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꿰뚫려 보이는 느낌. 간파당하는 느낌. 내장부터 그 속에 있는 것까지 모든 것이 투명하게 비춰 보이는 느낌.

  이 아이는 어쩌면, 내가 K군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럴 리 없다면서도 미츠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K군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일부러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

  하지만 어째서 그런 일을 하는 거지?

  미츠키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길 건너편에 양과자점이 있었다. 토오루가 언니, 하고 미츠키를 불렀다. 미츠키는 흠칫 놀라며 생각을 멈추고 토오루를 바라보았다.

  “, 마카롱 많이 먹을 거예요.”

  토오루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런 아이에게 어떤 목적이 있을 수 있을까. 미츠키는 제 생각을 예민함으로 넘기곤 토오루와 함께 양과자점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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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Y A G I

 

 

2

 

  무츠키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K군이 국어 지문을 읽고 있었다. 무츠키는 그 나긋나긋함이 좋았다. 어딘가 권태로운 것 같기도 하면서도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K군을 의식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목소리 때문이었다. 무츠키가 본 K군은 또래보다 성숙하고, 그렇기에 어쩐지 존경하게 되는 동급생이었다.

  지문이 끝났고 K군이 자리에 앉으려 의자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의 고무 패킹과 나무 바닥이 끌리는 소리. 그 작은 소리 하나하나를 무츠키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미츠키는 그런 무츠키를 바라보았다. 사랑에 빠진 동생을 보는 기분이란. 미츠키는 무츠키의 시선을 따라 K군을 바라보았다. K군은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무슨 일을 하고 나면 꼭 한 번씩 하는 버릇이었다. 그 하얀 손가락과 단정한 손톱. 그 사이로 물결처럼 빠져나가는 짧은 머리칼.

  미츠키는 K군의 목덜미를 보다가 문득, 자신도 그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딱히 부활동을 하지 않는 두 자매의 귀갓길은 항상 일렀다. 야구부인지 육상부인지 하는 아이들이 운동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고, 두 사람은 그것들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미츠키는 그 국어 수업 이후부터 약간 멍한 상태였다. 내가, K군을 좋아한다고?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미츠키의 취향은 조금 더 외향적이고, 조금 더 잘생기고그런 것일 터인데…….

  하지만 무츠키의 눈을 본 순간 미츠키는 알 수 있었다.

  쌍둥이의 그것이구나.

  자매는 그날따라 아무 말 없이 길을 걸었다. 무츠키는 미츠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분명했고, 미츠키는 무츠키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

  벌써부터 바람에 더위가 실려 날아오고 있었다. 미츠키는 높이 뜬 적란운을 바라보았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미츠키는 이성 간의 사랑과 자매간의 사랑을 생각했고, 그러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있잖아. 무츠키.”

  “? …….”

  “K군 좋아하는 것 같아.”

  무츠키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리고 자신이 없다는 듯, 무츠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새로 산 구두의 바닥이 보도블록에 닿아 조금씩 갈려나가고 있었다.

  “근데 고백하진 않을 거야. K군한테.”

  “?”

  “무츠키가 더 먼저 좋아했잖아.”

  그때, 무츠키는 미츠키의 미소를 보고 심장의 한구석이 아릿하게 아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 미츠키도 같은 느낌을 받고 있겠지.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무츠키는 앙다문 입술에 힘을 주었다. 미츠키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미츠키는 그런 무츠키의 등을 껴안았다. 따스한 체온이 하복 소매의 아래, 드러난 팔을 통해 전해졌다. 그러면 됐다. 미츠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것으로 됐다고.

 

 

3

 

  미츠키 덕에, 무츠키는 흰 머리의 소녀를 새까맣게 잊었다. 그녀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기도 했다. 지금 무츠키의 마음속에는 미츠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과 약간의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패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 소녀를 보았을 때는, 등교 때의 기억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 느껴지는 껄끄러움과 불안함. 눈앞의 소녀는 마치 장신구처럼 그것들을 매달고 있었다.

  “미츠키 언니? 무츠키 언니?”

  소녀는 두 사람보다 조금 더 키가 컸고 집 근처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바로 발걸음을 멈춘 무츠키와는 달리, 미츠키는 노골적인 관심을 소녀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되게 닮았네. 미츠키는 자신을 닮은 무츠키와 소녀를 번갈아 보았다. 이렇게 보면 꼭 세쌍둥이 같았다. 아니면 연년생 자매라던가, 그런 것.

  미츠키의 물음에 소녀는 눈을 깜빡이곤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무츠키라고 해요.”

  “무츠키?”

  “. 무츠키 토오루.”

  세 사람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러면, 미스테리한 일, 귀신이나 악령과 같은 그런 일일까. 무츠키는 저도 모르게 발을 두어 걸음 뒤로 물렸다. 자신과 얼굴과 이름이 같은 사람. 이상했다. 기분이, 너무나 이상했다.

  그러나 자신을 무츠키 토오루라고 밝힌 그 소녀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놀라시는 것도 당연해요. 이게, .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소녀는 시선을 잠시 하늘에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복형제, 라고 하면 좋을까요.”

  “이복형제?”

  미츠키는 사실 소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복형제라는 그 한 마디로 모든 게 정리되는 것 같긴 했다. 이렇게 닮은 얼굴이나, 이름이나, 그런 것들이. 몇 겹의 우연이 쌓이면 만들어질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근처에 언니들이 살고 있다기에, 언니들을 만나고 싶어서 와 봤어요.”

  “무츠키…… 무츠키는 어디에 사는 거야?”

  “편하게 토오루라고 불러주세요. 무츠키 언니도 있어서, 헷갈릴 테고.”

  그렇게 말하며 토오루는 사람 좋은 웃음을 한 번 더 흘렸다. 그러나 무츠키는 여전히 굳어있었고, 미츠키 역시 묘하게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외모 때문에 단순히 느껴지는 어떠한 위화감, 같은 것일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일까. 무츠키는 미츠키의 셔츠 끝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불안할 때마다 나타나는, 오래된 습관이었다.

  “앞으로 자주 놀러와도 돼요?”

  미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말라, 라고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츠키의 대답에 토오루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인 모양이었다.

  “다음에 또 봐요. 언니들.”

  그 말을 남기고 토오루는 총총히 걸어갔다. 두 사람은 토오루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가 코너를 돌아 그들의 눈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참고 있던 숨을 거칠게 내쉴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미츠키와 무츠키는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부모에게 토오루의 존재에 관해 물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이복형제라면, 두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일조차 두 분 모두에게 상처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정말이복형제가 맞을까?”

  “그렇게 닮았으니까…….”

  “진짜, 나 소름 돋았잖아. 너무 닮아서. 머리색 빼고는 완전 똑같잖아.”

  무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오루가 껄끄러운 건 그 때문이겠지. 그런데도 무츠키는 미츠키의 옷을 다시금 붙잡았다. 미츠키는 그런 무츠키의 손을 오른손으로 감쌌다.

  자매의 밤은 그렇게 기울어갔다. 무츠키는 이 층 침대의 아래 칸에서 평소와 같이 잠이 들었다. 내일도 학교에 가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잠이었지만 마치 누가 마법이라도 부린 양 무츠키는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 무츠키는 자신이 피범벅이 되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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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키라는 이름은 임의로 지은 것 (미도리 무츠키의 줄임)

 

 

혈연

 

Y A G I

 

 

1

 

  최근 미츠키는 자신의 쌍둥이 동생, 무츠키의 비밀을 알게 되어 다소 들뜬 상태였다. 내 동생이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다니! 그것도 같은 반에! 미츠키는 제 앞자리의 K군을 떠올렸다. 얌전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조용한 성격을 가진 무츠키가 좋아할 만한 녀석이었다.

  미츠키는 무츠키의 비밀을 눈치챘다는 사실을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무츠키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쌍둥이 사이의 그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그것’. 정확히 무어라 명명할 수는 없는 비과학적 이야기였지만 미츠키와 무츠키는 숱한 경험을 통해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미츠키! 준비 아직 안 끝났어?”

  “이제 내려가!”

  미츠키의 녹색 치마가 그녀의 무릎 근처에서 팔랑거렸다. 같은 학교에, 같은 반인 쌍둥이는 거의 모든 것을 함께했으며 등교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학교는 도보로 등교하기는 조금 멀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힘든 내색을 하진 않았다. 도내에서 우수하기로 소문난 고등학교에 당당히 입학했으니, 이 정도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침 운동이 되겠다며 좋아하던 두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해봐. 고민되지?”

  미츠키와 무츠키는 키와 몸무게까지 꼭 닮았지만 성격은 조금 달랐다. 미츠키는 무츠키 보다 활발했고 무츠키는 미츠키보다 얌전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극단을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한 스푼 정도의 경중. 그것이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요소였다.

  오늘도 두 사람의 등굣길 주제는 무츠키가 짝사랑하는 K군이었다. 미츠키는 자신보다 19분 뒤에 태어난 쌍둥이 동생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었다.

  “몰라. 그냥, 좋아하는 거니까…….”

  “사귀고 싶지는 않아?”

  “그런 거 생각 안 해봤어!”

  “정말?”

  “……, 잡는 것 정도는.”

  두 사람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굳게 믿었으며, 또 아꼈고, 자매로서 사랑했다. 잠깐 스쳐 지나간 사춘기 때도 두 사람의 믿음은 굳건했고 그렇기에 두 사람도,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미츠키와 무츠키의 우애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사건은 항상,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소녀를 먼저 인식한 것은 무츠키 쪽이었다. 인식, 이라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 무츠키는 자신과 아주 닮은 백발의 소녀를 보았다. 왜 하필이면 그쪽으로 시선이 갔는지, 무츠키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에 더욱 가까웠고, 무츠키는 그 필연에 눈을 사로잡히고 만다.

  하지만 소녀는 순식간에 무츠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잘못 보았나? 미츠키의 재잘거림을 잠시 밀어두고 떠오른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가라앉았다. 잘못 보았든, 잘못 본 것이 아니든 그녀의 삶에 크게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도서관에 가는 건 어때?”

  “이제 학교 근처니까, K군 이야기는 그만해. 들키면 어떻게 해.”

  “들키면 좋지, ? 그걸 기회 삼아 사귀는 거야.”

  무츠키는 팔꿈치로 미츠키의 오른팔을 툭 건드리며 웃었다. 그러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마찬가지로 녹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돋아나는 풀잎의 신선함을 안은 채 교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 중에 무츠키가 보았던 흰 머리의 소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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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진눈깨비

 

Y A G I

 

 

  이번 겨울은 내내 눈이 아닌 진눈깨비만 쏟아졌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주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우타는 요모에게 커피 한 잔을 권했다. 네가 내린 것보다는 맛이 별로겠지만, 그래도. 우타의 말에 요모는 묵묵히 잔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우타의 가게는 지하에 있었지만 그래도 꽤 따뜻한 편이었다. 요모는 코트의 단추를 하나 풀어냈다.

  이렇게 오래 있을 예정은 아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카페 일이야 잠시 토우카에게 맡겨두어도 크게 문제는 없을 테니까. 커피는 오늘따라 맛이 썼다. 원두를 너무 많이 볶았기 때문인 듯했다. 그것은 우타답지 않은 실수였다.

  하긴, 세상이 바뀌고 우타는 점점 더 이전의 그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외모부터가 그랬다. 우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짧게 자른 머리가 그의 귀밑을 스쳤다. 그러고 보면 최근 ‘습격’도 없었지. 요모는 잔을 내려놓았다. 잔과 받침이 부딪치는 소리가 쨍하고 울렸다.

  “…렌, 나는 네 친구야?”

  “그게 나를 부른 이유인가?”

  한참의 적막 뒤에 나온 우타의 말이었고, 너무도 짧은 시간 만에 튀어 나간 요모의 대답이었다. 요모의 대답에 우타는 요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냐.”

  우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우타는 유난히 우울해 보였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본디 위로 같은 것에 재능이 없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타가 저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 가줘.”

  우타의 말에 요모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여전히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채우지 않은 코트의 단추 틈으로 내리는 진눈깨비가 떨어져 들어갔다. 요모는 단추를 채우는 대신 우산을 기울이곤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 사이 우타는 요모가 남기고 간 커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는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커피잔을 들었다. 잔의 테두리에 아주 희미하게 커피 자국이 남아있었다. 우타는 그곳에 제 입술을 대었다. 쓴맛이 강하게 올라왔다.

  우타는 이제 더는 요모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하늘이 흐렸다. 오늘은 눈이 오면 좋을 텐데. 요모는 우타의 가게 앞에서 우산을 접었다. HySy - Art mask studio. 요란하게 장식된 글자가 요모의 눈에 비쳤다. 요모는 손끝으로 H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태양을 어루만졌다. 우타의 가슴팍에 있는 것과 똑같은 무늬였다.

  요모는 굳이 노크를 하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부터 그래왔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노크는 하고 와줄래?”

  그러나 우타는 그렇지 않은 듯 보였다. 손님이 없어서 다행인가. 우타는 작업대에서 손을 털고 일어섰다. 요모는 조금은 머쓱한 듯 바닥의 체스 무늬 타일의 틈을 바라보다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우타는 요모의 코앞까지 다가와서야 입을 열었다.

  “무슨 볼일이야?”

  “그냥.”

  “렌지답지 않네.”

  우타는 그렇게 말하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곤 요모를 똑바로 바라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신경 쓸 틈도 있어?”

  “무슨 뜻이지?”

  “렌지는 나 빼고 다른 모든 것을 신경 쓰느라 바쁘잖아.”

  요모는 우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우타의 말에 긍정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비쳤나? 요모는 손을 폈다가 다시 말아 쥐었다.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우타가 그렇게 봤다면 그랬던 것이겠지. 요모는 그 말의 안일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밖에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요모를 감싼 것은 자책감이었다.

  그러나 우타는 요모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해 보였다.

  “나는 렌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너는…….”

  “렌지를 보면 나는 나 스스로가 너무 싫어져.”

  우타는 요모를 지나쳐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달리지는 않았지만 아주 빠른 걸음이었다.

  “우타…!”

  요모는 우타를 바로 잡을 수 없었다. 그럴 권리가 자신에게 있을까. 요모는 이미 사라진 우타의 뒷모습을 그리며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돌아가야 할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우타와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다. 요모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주 느리지만 돌아오고 있던 일상에서 빠진 것이 있다면 우타의 존재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갔을 때 요모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요모의 손에는 그때까지 꼭 쥐고 있던 우산이 여전히 쥐어져 있었다.

  요모가 우타를 찾은 것은, 두 사람이 10대를 함께 보냈던 4구의 어느 폐건물이었다. 요모는 마른 침을 삼켰다. 우타는 유리도 없는 창문에 손을 가져다 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머리는 왜 자른 거야?”

  요모는 우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요모의 발소리가 몇 번이나 찬 공기를 울리는 동안 우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모는 우타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우타는 멀어지지 않았다. 그저 바닥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려.”

  “내가 감기 걸려도 아무 신경 안 쓸 거잖아.”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요모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아까보다 더 구름이 짙고 낮게 깔려있었다. 이제는 진짜 눈이 오려나. 요모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가 떴다.

  “글쎄.”

  그 말을 하며 요모는 우타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간만에 닿는 입술이었다. 이렇게 되고 나서야 그리움을 깨닫게 되는, 그런 감각이었다. 요모의 손에서 떨어진 검은 장우산이 바닥에 뒹굴었다.

  “내가 진짜 그럴 거라고 생각해?”

  한참 뒤에 이어진 요모의 물음에 우타는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요모의 옷을 조금 더 꽉 붙잡았을 뿐이었다.

  다시 축축한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마 눈이 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유감없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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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_전력 60분  #10대 우타X20대 요모

 

 

 

흔적

 

Y A G I

 

  이것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요모 렌지는 입을 꾹 다문 채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익숙하다면 익숙하고 낯설다면 낯선 아이였다. 아이는 무언가를 투정하듯 입을 비죽 내밀고 요모를 노려보듯 빤히 보았다.

  “…우타?”

  “지금 내 이름만 몇 번째 말하는지 알아?”

  어린 우타는 손등으로 제 뺨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려 하였으나, 핏물은 닦이기는커녕 도리어 어린 우타의 하얀 뺨 위에서 빨갛게 번져버렸다. 어린 우타의 발아래에는 도대체 몇 명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인간의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흘러넘치는 선혈과 달큰함을 넘어선 인간의 향기. 요모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인가. 유년 시절의 우타가 20구에 나타나다니. 요모는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요모가 내린 결정은 일단은 우타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렌지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하네?”

  아주 짧은 신호음이 이어진 후에 우타는 전화를 받았다. 우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어린 우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듯했다. 요모는 급한 마음에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바로 뱉었다.

  “여기 우타가 있어.”

  “응. 나 여기 있어.”

  우타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어리둥절함이 느껴졌다. 요모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냐, 아무것도 아냐.”

  “싱겁긴. 렌지는 항상 그렇다니까.”

  우타는 아주 미미하게 웃음기가 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요모는 순간 이것이 그저 요모의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환상이라면 우타에게 바로 상담하기는 이르지. 금방 사라질지도 모르고. 요모는 휴대전화에서 귀를 떼곤 다시 우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우타.”

  “아저씨는 누군데? 왜 내 이름을 알아?”

  어린 우타는 사라질 징조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팔짱을 낀 채 요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요모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렌지.”

  요모는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여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발음했다. 과거의 언젠가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우타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던 그 어린 시절이 요모의 머릿속에서 뭉근하게 떠올랐다.

  “렌지. 그렇구나.”

  내 친구 이름도 렌지인데. 어린 우타는 속삭이듯 우타에게 말하곤 씩 웃어보였다. 발밑에 나동그라진 인간의 시체 따위에 이제 완전히 신경이 떨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볼일이야?”

  “여기서는…… 그런 포식 행위는 안 돼.”

  요시무라 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20구의 공공연한 규칙이었다. 인간과 함께 생존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요모는 습관적으로 그 규칙을 말하면서도 어린 우타에게 이것이 통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요모가 알고 있는 어린 우타란 그런 규칙 따위에 묶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째서?”

  “이유를 설명해 주면, 들을 거야?”

  “아니.”

  “그럴 것 같았어.”

  요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적막은 대부분 어린 우타가 요모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고 요모는 그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는 식이었다.

  이 시체들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지. 그 전에 이 우타는 어쩌면 좋지. 요모는 어린 우타의 맹렬한 시선을 의식하며 생각했다.

  그때 요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린 우타이기에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요모는 고개를 돌려 어린 우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어린 우타는 슬며시 웃어보였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듯한 표정이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어.”

  요모는 몸을 숙여 어린 우타의 두 뺨을 부드럽게 감싸고는 어린 우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바다가 조각난 채 박혀 있었다.

  “뭔데?”

  “다 큰 우타에게는 말하지 마.”

  요모는 어린 우타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곧 어린 우타는 약간은 마뜩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요모는 혀로 입술을 한 번 적시곤 아주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타는 어째서, 항상 그렇게… 곧 없어질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

  어린 우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빛나는 눈동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한참을 그저 눈만 깜빡이던 우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렌지는 내가 없어지는 게 두려워?”

  “두렵다기보다는.”

  “보다는?”

  “쓸쓸하니까.”

  요모는 어린 우타가 보고 있는 자신의 눈동자에도 그 조각난 바다들이 비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가 공유하는, 그래서 서로가 볼 수 있는 조각들이었다.

  “보통은 그런 감정을 두렵다고 얘기해.”

  어린 우타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요모는 무어라 더 말을 하려 했지만, 어린 우타의 검지에 그 말이 막혔다. 어린 우타는 요모에게 바싹 몸을 붙이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어린 우타의 목소리는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그 말들은 요모의 귓가에 박히듯 들어왔다. 요모는 눈을 질끈 감고 어린 우타의 어깨를 껴안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태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걱정 마. 나는 사라지지 않아.”

  곧 부서질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심지 같은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이 깨지고도 꿋꿋이 우타라는 한 인간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심지 같은 것이. 우타의 말에 요모는 힘껏 그 심지를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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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타 부자설 가볍게 나옴  # 온니 우타  #진단메이커

 

 

거짓말쟁이의 피

 

Y A G I

 

  렌지. 너를 위한 촛불을 켰어.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가. 성당. 그 모든 것들을 싫어하는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야. 렌지 너를 위한 촛불을 켜고, 아마도 마지막일 너의 생각을 하고 싶어서. 너의 생각을 하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란 건 언제나 특별한 일이니까.

  있잖아, 렌지. 우리 같은 거짓말쟁이의 피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진하고 질겨. 태어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삼키고 감내해야만 했던 거짓말쟁이의 피……. 마치 구울의 피와도 같은 그것……. 구울의 피와 거짓말쟁이의 피 둘 다를 품고 태어난 나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어. 렌지도 아마 알고 있겠지. 렌지는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이니까.

  렌지 너는 내 숱한 거짓말 중에 얼마를 믿었고 얼마를 믿지 않았어? 이 질문을 네 얼굴을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닌, 성당의 거대한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달빛을 보며 하고 있다는 것이 퍽 유감이야. 마지막이니 직접 너에게 물어도 좋을 텐데, 그럴만한 용기가 내게는 없어서.

  모든 거짓말을 다 믿어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어. 렌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내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단 걸 누군가 깨닫는 건 지독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렌지라면 괜찮을 것 같아.

  렌지, 지금부터 나는 너를 죽이러 갈 거야. 사실은 너를 죽이기보다는 네 손에 죽고 싶은 마음이 커. 하지만 내가 너를 죽일 각오로 네게 가지 않는다면 너는 나를 죽이려 들지 않겠지. 어쨌든 우리의 유예되었던 싸움이 드디어 끝날 때가 온 거야. 살아남은 누군가의 싸움은 계속되긴 하겠지만, 그건 살아남은 사람의 몫이니까. 지금 미리 애쓰고 고민해봤자 아무 소용없겠지.

  역시 나는 아버지를 너무 닮아버렸나 봐. 사랑하는 존재를 자신의 손으로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 있는 게 아주 똑같아. 어쩌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지 못했던 것을 갈망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성격과 닮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나는 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너에게 갈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나는 네게 얼마나 기대고 있던 것일까. 너는 그 숱한 시간 속에서 얼마나 나를 견디고 있었을까.

 

  모든 것을 고백하자면.

 렌지, 나는 너를 죽이고 싶었고, 너를 사랑했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는 성경 구절에도 마음이 흔들리곤 했어. 렌지, 나는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십자가를 믿을 거야. 네가 내 이런 마음을 알아채지 않게 해달라고, 내가 끔찍이 싫어하는 그 신에게 빌어볼 거야.

  렌지, 너를 위해 켠 촛불은 끄지 않을게. 이 촛불을 네가 직접 끌 수 있기를 빌며, 나는 이제 너를 만나러 갈 거야.

 

 

 

 

넘 간만의 우타요모라 손풀기로 짧게 ㅜㅡㅜ 앞으로 다시 우타요모라이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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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AU  #담배 언급 있음

 

 

열감

 

Y A G I

 

 

여름의 열기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잡아먹고 있었다. 우타는 옥상의 좁은 그늘에 몸을 피하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 걸려있는 담배에서 하얀 연기가 느리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옥상의 문이 열리는 순간, 우타는 일순 당황해서 가볍게 손을 떨었고, 그 탓에 쌓여가던 담뱃재가 회색 페인트가 발린 옥상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요모는 자신이 열고 들어온 옥상의 무거운 문을 밀어 닫았다.

여긴 어쩐 일이야?”

왠지 옥상에 네가 있을 것 같아서.”

소위 말하는 촉, 같은 거야?”

.”

우타는 다시 입술로 담배를 가져갔다. 요모는 문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어디선가 갑자기 매미들이 악을 써대는 소리가 들렸다. 우타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매캐한 연기의 맛이 우타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며 우타는 요모를 흘긋 바라보았다. 요모의 시선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해있었다.

의외로 아무 말도 안 하네.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방과 후니까.”

담배, 피울래?”

우타의 말에 요모는 그를 잠시 멀뚱히 바라보다가 응, 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내밀었다. 우타는 선선히 요모에게 담배 한 대를 건넸다. 요모는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고, 곧 불을 붙여달라는 듯 우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타는 라이터를 켜 내밀었다. 작은 불꽃의 열기가 우타의 손끝을 매섭게 적셨다.

담배 피워봤어?”

몇 번.”

안 그렇게 생겼는데.”

사람은 겉으로 봐선 모르는 거니까.”

요모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우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수긍했다.

하긴, 그건 그렇지.”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않고 담배만을 태웠다. 아마도 여러 운동부 중 하나가 운동장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쟤들은 덥지도 않나. 우타는 중얼거리듯 말하며 요모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나 요모의 시선은 여전히 우타가 알 수 없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거기 뭐라도 있어?”

결국 우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요모에게 물었다. 요모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약간은 멍한 눈빛으로 우타를 돌아보았다. 우타는 방금까지 요모의 시선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도 없는 파란 하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그런데 왜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

그냥. 할 것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요모는 다시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우타는 거의 필터 근처까지 온 담뱃불을 바닥에 비벼 끄곤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물었다. 우타는 불은 붙이지 않은 채 담배 필터만을 앞니로 가볍게 씹다가, 다시 요모에게 말을 붙였다.

넌 집에 안 가?”

가봤자 할 것도 없어.”

나도 그래.”

우타는 묻지도 않은 것에 답하며 요모에게 슬쩍 몸을 기대었다. 희미한 땀 냄새와 짙은 담배 냄새가 우타의 코끝을 스쳤다. 요모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는 어딘가 달큰한 감각이 있었다.

비슷하구나, 우리.”

아마 그렇게 비슷하지는 않을 거야.”

거리 두는 거야?”

딱히.”

그 말에 우타는 멀겋게 웃었다. 요모는 가볍게 고개를 돌려 우타의 하얀 이마를 보다가 반쯤 남은 담배를 껐다.

맛없다, 이거.”

빌려 피우는 입장에서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우타는 웃음기가 서려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요모는 흠, 하고 숨을 뱉더니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안될 건 없지.”

그렇네. 안될 건 없지만.”

우타는 말을 이으려다 말고 멀뚱히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가 우타가 기대고 있던 어깨를 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에 우타는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그는 더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햇빛에 젖은 요모의 입술은 따뜻하다기보다는 뜨거운 것에 훨씬 더 가까웠다. 여름에 걸맞은 온도라고 생각하며, 우타는 요모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두 사람의 입안에서 담배의 향이 지워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남은 것은 열감뿐이었고, 우타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난 좀 더 맛있는 게 좋아.”

나도 그래.”

잠시 가라앉았던 매미의 울음이 다시 소란스레 공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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