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키라는 이름은 임의로 지은 것 (미도리 무츠키의 줄임)

 

 

혈연

 

Y A G I

 

 

1

 

  최근 미츠키는 자신의 쌍둥이 동생, 무츠키의 비밀을 알게 되어 다소 들뜬 상태였다. 내 동생이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다니! 그것도 같은 반에! 미츠키는 제 앞자리의 K군을 떠올렸다. 얌전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조용한 성격을 가진 무츠키가 좋아할 만한 녀석이었다.

  미츠키는 무츠키의 비밀을 눈치챘다는 사실을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무츠키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쌍둥이 사이의 그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그것’. 정확히 무어라 명명할 수는 없는 비과학적 이야기였지만 미츠키와 무츠키는 숱한 경험을 통해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미츠키! 준비 아직 안 끝났어?”

  “이제 내려가!”

  미츠키의 녹색 치마가 그녀의 무릎 근처에서 팔랑거렸다. 같은 학교에, 같은 반인 쌍둥이는 거의 모든 것을 함께했으며 등교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학교는 도보로 등교하기는 조금 멀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힘든 내색을 하진 않았다. 도내에서 우수하기로 소문난 고등학교에 당당히 입학했으니, 이 정도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침 운동이 되겠다며 좋아하던 두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해봐. 고민되지?”

  미츠키와 무츠키는 키와 몸무게까지 꼭 닮았지만 성격은 조금 달랐다. 미츠키는 무츠키 보다 활발했고 무츠키는 미츠키보다 얌전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극단을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한 스푼 정도의 경중. 그것이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요소였다.

  오늘도 두 사람의 등굣길 주제는 무츠키가 짝사랑하는 K군이었다. 미츠키는 자신보다 19분 뒤에 태어난 쌍둥이 동생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었다.

  “몰라. 그냥, 좋아하는 거니까…….”

  “사귀고 싶지는 않아?”

  “그런 거 생각 안 해봤어!”

  “정말?”

  “……, 잡는 것 정도는.”

  두 사람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굳게 믿었으며, 또 아꼈고, 자매로서 사랑했다. 잠깐 스쳐 지나간 사춘기 때도 두 사람의 믿음은 굳건했고 그렇기에 두 사람도,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미츠키와 무츠키의 우애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사건은 항상,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소녀를 먼저 인식한 것은 무츠키 쪽이었다. 인식, 이라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 무츠키는 자신과 아주 닮은 백발의 소녀를 보았다. 왜 하필이면 그쪽으로 시선이 갔는지, 무츠키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에 더욱 가까웠고, 무츠키는 그 필연에 눈을 사로잡히고 만다.

  하지만 소녀는 순식간에 무츠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잘못 보았나? 미츠키의 재잘거림을 잠시 밀어두고 떠오른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가라앉았다. 잘못 보았든, 잘못 본 것이 아니든 그녀의 삶에 크게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도서관에 가는 건 어때?”

  “이제 학교 근처니까, K군 이야기는 그만해. 들키면 어떻게 해.”

  “들키면 좋지, ? 그걸 기회 삼아 사귀는 거야.”

  무츠키는 팔꿈치로 미츠키의 오른팔을 툭 건드리며 웃었다. 그러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마찬가지로 녹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돋아나는 풀잎의 신선함을 안은 채 교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 중에 무츠키가 보았던 흰 머리의 소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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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진눈깨비

 

Y A G I

 

 

  이번 겨울은 내내 눈이 아닌 진눈깨비만 쏟아졌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주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우타는 요모에게 커피 한 잔을 권했다. 네가 내린 것보다는 맛이 별로겠지만, 그래도. 우타의 말에 요모는 묵묵히 잔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우타의 가게는 지하에 있었지만 그래도 꽤 따뜻한 편이었다. 요모는 코트의 단추를 하나 풀어냈다.

  이렇게 오래 있을 예정은 아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카페 일이야 잠시 토우카에게 맡겨두어도 크게 문제는 없을 테니까. 커피는 오늘따라 맛이 썼다. 원두를 너무 많이 볶았기 때문인 듯했다. 그것은 우타답지 않은 실수였다.

  하긴, 세상이 바뀌고 우타는 점점 더 이전의 그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외모부터가 그랬다. 우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짧게 자른 머리가 그의 귀밑을 스쳤다. 그러고 보면 최근 ‘습격’도 없었지. 요모는 잔을 내려놓았다. 잔과 받침이 부딪치는 소리가 쨍하고 울렸다.

  “…렌, 나는 네 친구야?”

  “그게 나를 부른 이유인가?”

  한참의 적막 뒤에 나온 우타의 말이었고, 너무도 짧은 시간 만에 튀어 나간 요모의 대답이었다. 요모의 대답에 우타는 요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냐.”

  우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우타는 유난히 우울해 보였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본디 위로 같은 것에 재능이 없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타가 저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 가줘.”

  우타의 말에 요모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여전히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채우지 않은 코트의 단추 틈으로 내리는 진눈깨비가 떨어져 들어갔다. 요모는 단추를 채우는 대신 우산을 기울이곤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 사이 우타는 요모가 남기고 간 커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는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커피잔을 들었다. 잔의 테두리에 아주 희미하게 커피 자국이 남아있었다. 우타는 그곳에 제 입술을 대었다. 쓴맛이 강하게 올라왔다.

  우타는 이제 더는 요모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하늘이 흐렸다. 오늘은 눈이 오면 좋을 텐데. 요모는 우타의 가게 앞에서 우산을 접었다. HySy - Art mask studio. 요란하게 장식된 글자가 요모의 눈에 비쳤다. 요모는 손끝으로 H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태양을 어루만졌다. 우타의 가슴팍에 있는 것과 똑같은 무늬였다.

  요모는 굳이 노크를 하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부터 그래왔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노크는 하고 와줄래?”

  그러나 우타는 그렇지 않은 듯 보였다. 손님이 없어서 다행인가. 우타는 작업대에서 손을 털고 일어섰다. 요모는 조금은 머쓱한 듯 바닥의 체스 무늬 타일의 틈을 바라보다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우타는 요모의 코앞까지 다가와서야 입을 열었다.

  “무슨 볼일이야?”

  “그냥.”

  “렌지답지 않네.”

  우타는 그렇게 말하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곤 요모를 똑바로 바라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신경 쓸 틈도 있어?”

  “무슨 뜻이지?”

  “렌지는 나 빼고 다른 모든 것을 신경 쓰느라 바쁘잖아.”

  요모는 우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우타의 말에 긍정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비쳤나? 요모는 손을 폈다가 다시 말아 쥐었다.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우타가 그렇게 봤다면 그랬던 것이겠지. 요모는 그 말의 안일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밖에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요모를 감싼 것은 자책감이었다.

  그러나 우타는 요모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해 보였다.

  “나는 렌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너는…….”

  “렌지를 보면 나는 나 스스로가 너무 싫어져.”

  우타는 요모를 지나쳐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달리지는 않았지만 아주 빠른 걸음이었다.

  “우타…!”

  요모는 우타를 바로 잡을 수 없었다. 그럴 권리가 자신에게 있을까. 요모는 이미 사라진 우타의 뒷모습을 그리며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돌아가야 할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우타와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다. 요모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주 느리지만 돌아오고 있던 일상에서 빠진 것이 있다면 우타의 존재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갔을 때 요모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요모의 손에는 그때까지 꼭 쥐고 있던 우산이 여전히 쥐어져 있었다.

  요모가 우타를 찾은 것은, 두 사람이 10대를 함께 보냈던 4구의 어느 폐건물이었다. 요모는 마른 침을 삼켰다. 우타는 유리도 없는 창문에 손을 가져다 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머리는 왜 자른 거야?”

  요모는 우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요모의 발소리가 몇 번이나 찬 공기를 울리는 동안 우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모는 우타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우타는 멀어지지 않았다. 그저 바닥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려.”

  “내가 감기 걸려도 아무 신경 안 쓸 거잖아.”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요모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아까보다 더 구름이 짙고 낮게 깔려있었다. 이제는 진짜 눈이 오려나. 요모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가 떴다.

  “글쎄.”

  그 말을 하며 요모는 우타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간만에 닿는 입술이었다. 이렇게 되고 나서야 그리움을 깨닫게 되는, 그런 감각이었다. 요모의 손에서 떨어진 검은 장우산이 바닥에 뒹굴었다.

  “내가 진짜 그럴 거라고 생각해?”

  한참 뒤에 이어진 요모의 물음에 우타는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요모의 옷을 조금 더 꽉 붙잡았을 뿐이었다.

  다시 축축한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마 눈이 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유감없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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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 안에서 본 하늘은 그저 파랗기만 했다. 요모 렌지는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는 벌써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기차는 종종 가볍게 덜컹거렸고 요모는 그 진동을 기꺼이 즐겼다.

  “렌, 무슨 생각해?”

  그런 요모의 어깨에 우타가 달라붙듯 기대어 왔다. 요모는 제 옆에 앉은 우타를 한 번 흘긋 바라보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냥.”

  “둘이서 여행은 처음인 거 같다, 그치.”

  요모의 심플한 대답에 익숙한 우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요모는 우타의 가지런한 호흡을 코트 너머로 희미하게 느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여행 같은 걸 할 여유는 없었지. 요모는 충동적으로 우타 쪽으로 제 몸을 가볍게 기댔다. 우타의 짧은 웃음이 진동으로 전해졌다.

  “기대되지 않아? 숙소도 좋은 곳으로 잡아뒀는데.”

  응, 하고 요모는 짧게 말했다. 아무리 매사에 덤덤한 요모라도 이런 일에 조금도 설레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여행 전부터 요모는 수없는 상상을 했다. 요모에게 있어서 삶은 여행이라기보다는 피난에 가까웠다. 여행처럼 어딘가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온다는 일은 쉽게 떠올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요모에게 이 첫 여행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 요모는 그것을 안겨 준 우타에게 적잖은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또한 언제나 죽음에 더욱 가까운 삶에 치여 왔던 요모이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유독 기분 좋은 일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요모는 이런 생각을 우타에게 모두 말하지는 않았다. 우타는 이런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채는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이런 감정을 터놓고 말했을 때 우타의 반응을 알 것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난리가 나겠지. 요모는 속으로 생각하며 창밖으로 재빠르게 지나쳐가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우타의 반응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 전부터 굳이 소란스러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게 스타일의 차이인가. 우타라면 이런 감정을 조잘조잘 다 말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가자 요모는 입꼬리를 살짝 웃어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기차는 어느덧 종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리자마자 바다가 있을 줄 알았는데. 요모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풍경은 도쿄 시내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아주 약간의 짠 냄새가 묻어있다는 것 빼고는 이런 곳에 바다가 있을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여기서 버스 타고 좀 더 들어가야 해.”

  “꽤 깊숙한 곳에 있구나.”

  “원래 명당은 남들이 찾기 힘든 곳에 있는 법이야.”

  우타의 목소리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요모는 그의 뒤를 따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우타가 이렇게 진심으로 신이 나 있는 것을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스는 두 번 갈아타야만 했다. 첫 번째, 두 번째 버스까지만 해도 버스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세 번째 버스부터는 싹 사라지고 버스가 완전히 비어버렸다.

  그때부터 요모의 마음에는 슬슬 불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지금 너무 외진 곳으로 들어가는 거 아닌가?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았지만 우타는 딱히 그에 신경을 쓰지 않는지, 아니면 쓰지 않으려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불안해도 우타를 믿어야겠지. 요모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버스는 기차보다 훨씬 덜컹거렸고 요모는 중심을 잡기 위해 허리에 꼿꼿이 힘을 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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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_전력 60분  #10대 우타X20대 요모

 

 

 

흔적

 

Y A G I

 

  이것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요모 렌지는 입을 꾹 다문 채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익숙하다면 익숙하고 낯설다면 낯선 아이였다. 아이는 무언가를 투정하듯 입을 비죽 내밀고 요모를 노려보듯 빤히 보았다.

  “…우타?”

  “지금 내 이름만 몇 번째 말하는지 알아?”

  어린 우타는 손등으로 제 뺨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려 하였으나, 핏물은 닦이기는커녕 도리어 어린 우타의 하얀 뺨 위에서 빨갛게 번져버렸다. 어린 우타의 발아래에는 도대체 몇 명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인간의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흘러넘치는 선혈과 달큰함을 넘어선 인간의 향기. 요모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인가. 유년 시절의 우타가 20구에 나타나다니. 요모는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요모가 내린 결정은 일단은 우타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렌지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하네?”

  아주 짧은 신호음이 이어진 후에 우타는 전화를 받았다. 우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어린 우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듯했다. 요모는 급한 마음에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바로 뱉었다.

  “여기 우타가 있어.”

  “응. 나 여기 있어.”

  우타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어리둥절함이 느껴졌다. 요모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냐, 아무것도 아냐.”

  “싱겁긴. 렌지는 항상 그렇다니까.”

  우타는 아주 미미하게 웃음기가 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요모는 순간 이것이 그저 요모의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환상이라면 우타에게 바로 상담하기는 이르지. 금방 사라질지도 모르고. 요모는 휴대전화에서 귀를 떼곤 다시 우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우타.”

  “아저씨는 누군데? 왜 내 이름을 알아?”

  어린 우타는 사라질 징조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팔짱을 낀 채 요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요모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렌지.”

  요모는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여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발음했다. 과거의 언젠가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우타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던 그 어린 시절이 요모의 머릿속에서 뭉근하게 떠올랐다.

  “렌지. 그렇구나.”

  내 친구 이름도 렌지인데. 어린 우타는 속삭이듯 우타에게 말하곤 씩 웃어보였다. 발밑에 나동그라진 인간의 시체 따위에 이제 완전히 신경이 떨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볼일이야?”

  “여기서는…… 그런 포식 행위는 안 돼.”

  요시무라 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20구의 공공연한 규칙이었다. 인간과 함께 생존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요모는 습관적으로 그 규칙을 말하면서도 어린 우타에게 이것이 통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요모가 알고 있는 어린 우타란 그런 규칙 따위에 묶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째서?”

  “이유를 설명해 주면, 들을 거야?”

  “아니.”

  “그럴 것 같았어.”

  요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적막은 대부분 어린 우타가 요모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고 요모는 그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는 식이었다.

  이 시체들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지. 그 전에 이 우타는 어쩌면 좋지. 요모는 어린 우타의 맹렬한 시선을 의식하며 생각했다.

  그때 요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린 우타이기에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요모는 고개를 돌려 어린 우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어린 우타는 슬며시 웃어보였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듯한 표정이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어.”

  요모는 몸을 숙여 어린 우타의 두 뺨을 부드럽게 감싸고는 어린 우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바다가 조각난 채 박혀 있었다.

  “뭔데?”

  “다 큰 우타에게는 말하지 마.”

  요모는 어린 우타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곧 어린 우타는 약간은 마뜩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요모는 혀로 입술을 한 번 적시곤 아주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타는 어째서, 항상 그렇게… 곧 없어질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

  어린 우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빛나는 눈동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한참을 그저 눈만 깜빡이던 우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렌지는 내가 없어지는 게 두려워?”

  “두렵다기보다는.”

  “보다는?”

  “쓸쓸하니까.”

  요모는 어린 우타가 보고 있는 자신의 눈동자에도 그 조각난 바다들이 비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가 공유하는, 그래서 서로가 볼 수 있는 조각들이었다.

  “보통은 그런 감정을 두렵다고 얘기해.”

  어린 우타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요모는 무어라 더 말을 하려 했지만, 어린 우타의 검지에 그 말이 막혔다. 어린 우타는 요모에게 바싹 몸을 붙이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어린 우타의 목소리는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그 말들은 요모의 귓가에 박히듯 들어왔다. 요모는 눈을 질끈 감고 어린 우타의 어깨를 껴안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태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걱정 마. 나는 사라지지 않아.”

  곧 부서질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심지 같은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이 깨지고도 꿋꿋이 우타라는 한 인간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심지 같은 것이. 우타의 말에 요모는 힘껏 그 심지를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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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타 부자설 가볍게 나옴  # 온니 우타  #진단메이커

 

 

거짓말쟁이의 피

 

Y A G I

 

  렌지. 너를 위한 촛불을 켰어.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가. 성당. 그 모든 것들을 싫어하는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야. 렌지 너를 위한 촛불을 켜고, 아마도 마지막일 너의 생각을 하고 싶어서. 너의 생각을 하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란 건 언제나 특별한 일이니까.

  있잖아, 렌지. 우리 같은 거짓말쟁이의 피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진하고 질겨. 태어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삼키고 감내해야만 했던 거짓말쟁이의 피……. 마치 구울의 피와도 같은 그것……. 구울의 피와 거짓말쟁이의 피 둘 다를 품고 태어난 나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어. 렌지도 아마 알고 있겠지. 렌지는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이니까.

  렌지 너는 내 숱한 거짓말 중에 얼마를 믿었고 얼마를 믿지 않았어? 이 질문을 네 얼굴을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닌, 성당의 거대한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달빛을 보며 하고 있다는 것이 퍽 유감이야. 마지막이니 직접 너에게 물어도 좋을 텐데, 그럴만한 용기가 내게는 없어서.

  모든 거짓말을 다 믿어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어. 렌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내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단 걸 누군가 깨닫는 건 지독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렌지라면 괜찮을 것 같아.

  렌지, 지금부터 나는 너를 죽이러 갈 거야. 사실은 너를 죽이기보다는 네 손에 죽고 싶은 마음이 커. 하지만 내가 너를 죽일 각오로 네게 가지 않는다면 너는 나를 죽이려 들지 않겠지. 어쨌든 우리의 유예되었던 싸움이 드디어 끝날 때가 온 거야. 살아남은 누군가의 싸움은 계속되긴 하겠지만, 그건 살아남은 사람의 몫이니까. 지금 미리 애쓰고 고민해봤자 아무 소용없겠지.

  역시 나는 아버지를 너무 닮아버렸나 봐. 사랑하는 존재를 자신의 손으로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 있는 게 아주 똑같아. 어쩌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지 못했던 것을 갈망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성격과 닮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나는 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너에게 갈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나는 네게 얼마나 기대고 있던 것일까. 너는 그 숱한 시간 속에서 얼마나 나를 견디고 있었을까.

 

  모든 것을 고백하자면.

 렌지, 나는 너를 죽이고 싶었고, 너를 사랑했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는 성경 구절에도 마음이 흔들리곤 했어. 렌지, 나는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십자가를 믿을 거야. 네가 내 이런 마음을 알아채지 않게 해달라고, 내가 끔찍이 싫어하는 그 신에게 빌어볼 거야.

  렌지, 너를 위해 켠 촛불은 끄지 않을게. 이 촛불을 네가 직접 끌 수 있기를 빌며, 나는 이제 너를 만나러 갈 거야.

 

 

 

 

넘 간만의 우타요모라 손풀기로 짧게 ㅜㅡㅜ 앞으로 다시 우타요모라이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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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AU  #담배 언급 있음

 

 

열감

 

Y A G I

 

 

여름의 열기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잡아먹고 있었다. 우타는 옥상의 좁은 그늘에 몸을 피하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 걸려있는 담배에서 하얀 연기가 느리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옥상의 문이 열리는 순간, 우타는 일순 당황해서 가볍게 손을 떨었고, 그 탓에 쌓여가던 담뱃재가 회색 페인트가 발린 옥상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요모는 자신이 열고 들어온 옥상의 무거운 문을 밀어 닫았다.

여긴 어쩐 일이야?”

왠지 옥상에 네가 있을 것 같아서.”

소위 말하는 촉, 같은 거야?”

.”

우타는 다시 입술로 담배를 가져갔다. 요모는 문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어디선가 갑자기 매미들이 악을 써대는 소리가 들렸다. 우타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매캐한 연기의 맛이 우타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며 우타는 요모를 흘긋 바라보았다. 요모의 시선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해있었다.

의외로 아무 말도 안 하네.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방과 후니까.”

담배, 피울래?”

우타의 말에 요모는 그를 잠시 멀뚱히 바라보다가 응, 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내밀었다. 우타는 선선히 요모에게 담배 한 대를 건넸다. 요모는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고, 곧 불을 붙여달라는 듯 우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타는 라이터를 켜 내밀었다. 작은 불꽃의 열기가 우타의 손끝을 매섭게 적셨다.

담배 피워봤어?”

몇 번.”

안 그렇게 생겼는데.”

사람은 겉으로 봐선 모르는 거니까.”

요모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우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수긍했다.

하긴, 그건 그렇지.”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않고 담배만을 태웠다. 아마도 여러 운동부 중 하나가 운동장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쟤들은 덥지도 않나. 우타는 중얼거리듯 말하며 요모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나 요모의 시선은 여전히 우타가 알 수 없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거기 뭐라도 있어?”

결국 우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요모에게 물었다. 요모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약간은 멍한 눈빛으로 우타를 돌아보았다. 우타는 방금까지 요모의 시선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도 없는 파란 하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그런데 왜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

그냥. 할 것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요모는 다시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우타는 거의 필터 근처까지 온 담뱃불을 바닥에 비벼 끄곤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물었다. 우타는 불은 붙이지 않은 채 담배 필터만을 앞니로 가볍게 씹다가, 다시 요모에게 말을 붙였다.

넌 집에 안 가?”

가봤자 할 것도 없어.”

나도 그래.”

우타는 묻지도 않은 것에 답하며 요모에게 슬쩍 몸을 기대었다. 희미한 땀 냄새와 짙은 담배 냄새가 우타의 코끝을 스쳤다. 요모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는 어딘가 달큰한 감각이 있었다.

비슷하구나, 우리.”

아마 그렇게 비슷하지는 않을 거야.”

거리 두는 거야?”

딱히.”

그 말에 우타는 멀겋게 웃었다. 요모는 가볍게 고개를 돌려 우타의 하얀 이마를 보다가 반쯤 남은 담배를 껐다.

맛없다, 이거.”

빌려 피우는 입장에서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우타는 웃음기가 서려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요모는 흠, 하고 숨을 뱉더니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안될 건 없지.”

그렇네. 안될 건 없지만.”

우타는 말을 이으려다 말고 멀뚱히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가 우타가 기대고 있던 어깨를 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에 우타는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그는 더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햇빛에 젖은 요모의 입술은 따뜻하다기보다는 뜨거운 것에 훨씬 더 가까웠다. 여름에 걸맞은 온도라고 생각하며, 우타는 요모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두 사람의 입안에서 담배의 향이 지워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남은 것은 열감뿐이었고, 우타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난 좀 더 맛있는 게 좋아.”

나도 그래.”

잠시 가라앉았던 매미의 울음이 다시 소란스레 공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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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병

 

Y A G I

 

 

죽음은 어째서 사랑과 가까이 붙어있나. 한손으로 턱을 괸 채 먼 곳을 바라보았다.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던 밤의 기운이 새파란 새벽 공기에 밀려 사라지고 있을 때였다. 밤을 샜지만 머리는 맑았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에, 너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뜨거운 물로 몸을 씻었다. 물줄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대규모 전투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고, 그 중에 나 자신도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따위가 아니었다. 우리에 쿠키. 그 한 인물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며 나는 다시 한 번 더, 어째서 죽음과 사랑은, 특히 욕정은 함께 오는 것인지를 고민했다. 인간이란 죽기 전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들어진 생물인 걸까, 아니면 그 대상이 우리에이기 때문에 이러는 걸까.

샤워가 끝날 때까지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평소처럼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머리를 정리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치는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 우리에 네가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너의 상처는 참으로 아름답다. 이것은 비단 네 육체적인 상처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네가 가지고 있는, 아마도 너는 필사적으로 부정할 어떠한 의식들까지도 아름다웠다. 평소라면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을 생각들이었지만 그것이 네게 존재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너는 상처마저 아름다웠다. 나는 너의 비열한 상처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감정이 사랑이 맞기는 하겠지. 나는 가끔 그것이 불안했다. 사랑 따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런 감정은 업무에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완전히 배재해 두었다. 그런 내 삶에 네가 들어왔다. 이런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우리에 너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의식이 향하고 있는 것은 전장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장은 전장이지만, 그곳의 전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싸우고 있을 우리에를 보고 있었다. 너의 손끝과 그 끝에서 시뻘건 피를 흘리며 구축될 구울들을 보고 있었다.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이 더해진 모습.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을까.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전투 때는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심장을 차게 유지해야만 했다.

아마 우리에 네가 이번 전투에서 죽는다면 나는 몹시 슬플 터였다. 그러나 동시에 너의 죽음에 도취될 것이었다. 아름다운 시절의 너를 그리워하며 나는 또다시 너를 욕정할 것이다.

우리에 네가 만약 죽지 않는다면, 나는.

나는 어쩌면 좋을까. 이 욕정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희미한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내가 파악할 수 없는 미래는 항상 두려움과 함께 있었다. 그렇다. 너는 아름다운 두려움이었다.

너 자체를 파악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너는 의외로 꿰뚫어 보기 쉬운 타입의 인간이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너 자체라기보다는 네가 내게 불러온 감정들이었다. 그래, 어쩌면 나는 나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를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면 또 어떠랴. 이미 상황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곳까지 도달했는데.

작전 개시.

내 입에서 떨어지는 목소리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너를 생각했다. 살아있는 너도, 죽은 너도 아닌 내 곁에서 내 욕망을 받아주는 너를 생각했다. 전투에 앞서 너무 부정한 생각이었나. 나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생각을 멈췄다. 다만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아름다운 너의 모습을 한 번 더 눈꺼풀 뒤에 그려보았다.

아무래도 아직 너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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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에로 동인이었습니다.

 

Y A G I

 

 

이루.”

?”

서월의 말에 이루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종종 상당히 악동처럼 보일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이었다. 또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생겼나 보군. 이루는 읽던 책을 갈무리해 베개 옆으로 밀어두었다. 저런 표정을 본 이상 오늘 더 책을 읽는 것은 무리였다.

, 해보고 싶은 거 있어요.”

그 말에 이어 서월은 이것저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루는 잠자코 그 모든 말을 듣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S자 결장을 개발하고 싶다고?”

. 어때요?”

에로 동인도 아니고, 거기까지 들어갈 리가 없잖아…….”

한숨처럼 내쉰 말이었다. 이루는 머릿속으로 S자 결장의 위치를 그렸다. 수사관을 준비하던 시절 쌓아두었던 지식이 이럴 때 쓰일 줄이야. 그는 속으로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나 이루가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해서 바로 포기할 서월은 또 아니었다.

왜요. 될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하며 서월은 자연스럽게 이루의 위로 올라탔다. 이루는 자신의 상의 아래로 들어오는 서월의 손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이루도, 싫지 않잖아요.”

싫지는 않지만.”

대신에 그는 그 손목을 붙잡았다. 한 손에 들어오는 얇은 손목이었다. 이루는 눈을 깜빡이며 서월을 보았다. 그의 다소 의문스러운 눈빛이 이루에게 와닿았고, 그 시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루는 그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이렇게 갑작스레 해버리는 거야?”

싫어요?”

말했잖아. 싫진 않다고.”

그는 양손으로 부드럽게 서월의 양 뺨을 감쌌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입을 맞췄다. 농도가 짙지 않은, 아주 가벼운 키스였다. 서로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서월은 다시 이루의 목을 껴안아 그의 입술 속으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은 아니었기에 이루도 가볍게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진득한 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를 채웠다. 이루는 서월의 손이 제 허리를 섬세하게 쓸어내리는 것을 느끼며 몸을 움찔 떨었다. 서월은 이루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서월은 이루보다 그를 어떻게 자극해야 그가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루는 달뜬 숨을 뱉으며 입술을 떼어냈다. 서월의 입술은 바로 이루의 목덜미로 향했다. 그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며 서월은 이루의 체취를 느꼈다. 이루는 자신이 이렇게 달콤한 체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섹스를 할 때마다 글자 그대로 먹어버리고 싶은욕망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어쩌면 이루는 그런 것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을지 몰랐다. 서월이라면 정말로 먹혀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서월은 눈을 내리깔아 과거 자신이 이루에게 남긴 흉터를 바라보았다. 끓어오르는 식욕에 이루를 한 입 베어 물었던 흔적이었다. 그때 이루의 반응은 어땠던가. 생각보다도 더 담담하지 않았던가.

이루의 신음이 서월의 귓가에서 낮게 끓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자신의 아래에서 이루가 들끓는 욕망으로 몸을 움찔거리고 있는 이 상황이 가장 중요했다. 서월은 이루의 상의를 위로 말아 올리며 그의 아랫배에 입을 맞췄다. 이루는 언제나 그렇듯 꽤 예민하게 반응했다.

서월은 한 손으로는 이루의 바지 버클을 풀며 다른 손으로는 연신 이루의 가슴팍을 쓸었다. 이루는 이를 악물어 신음을 참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그 노력이 보잘것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꼭 그랬다. 서월은 굳이 이루의 입을 벌려 그가 신음을 뱉어내도록 하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그 스스로 제 몸을 주체할 수 없게 될 것이기도 했고, 참아내듯 흘리는 신음을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었다.

서월은 익숙한 듯 이루의 바지를 벗겨 침대 아래로 던져버리곤 속옷 위로 빳빳하게 드러난 그의 페니스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그 예민한 감각에 이루는 허리를 가볍게 비틀었다. 간지럽기도 하면서 미묘하게 자극이 되는 그 감촉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이루는 앞니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서월의 손이 스칠 때마다 이루는 발끝에 힘을 줬다가 뺐다가를 반복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서월은 이로 이루의 속옷을 끌어 내리며, 손바닥으로는 단단하게 발기한 그의 페니스를 쓸었다. 이루는 한껏 축축해진 목소리로 연신 서월의 이름을 불렀다.

서월, 서월아…….”

, 이루. 나 여기 있어요.”

서월은 소리 없이 웃으며 이루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는 더는 신음을 씹어 삼키지 않았다. 이루의 얼굴은 잔뜩 달아올라 입을 맞출 때마다 홧홧한 열기가 전해졌다. 서월은 혀를 뻗어 이루의 목덜미를 핥았다. , 하고 이루가 새된 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서월은 손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며 이루의 귀두를 혀끝으로 핥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이루의 페니스는 벌써 그 끝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아, !”

이루는 야하다니까.”

이루는 생각보다 금방 절정에 다했다. 생각해 보면 최근 들어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 이루는 이루 나름대로 참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월은 제 손에 묻은 이루의 정액을 손가락에 묻혀 그의 뒤를 풀어주었다. 금방 눅진한 느낌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져 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서월은 다른 손으로 연신 움찔거리는 이루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아프면 말해요.”

잠깐, 오늘, 하윽, 너무 밀어 넣으면!”

말했잖아요, 개발한다고.”

어쩌면 평소보다 조금 난폭한 섹스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무리가 된다고 생각하면 바로 말할 사람이고, 조금은 상냥하지 않은 섹스도 나름의 맛이 있었으니까.

이루는 침대 시트를 꼭 붙잡은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루의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움직였다. 서월은 몸을 숙여 이루의 안에 제 것을 좀 더 꾹 밀어 넣으며 손을 뻗어 이루의 턱을 잡아 그의 얼굴을 제 쪽으로 돌렸다. 그의 눈꼬리에 눈물이 방울져 있었다. 제 몸의 아래쪽으로 잔뜩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루, 나 봐요.”

, 서월아, !”

여기가 좋아요?”

이루의 표정 변화를 놓칠 서월이 아니었다. 이루는 연신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움찔거렸다. 서월은 이루의 안이 꽉 조여오는 것을 느끼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루는 여기가 좋은가 봐.”

하읏, 더는, 안 돼, !”

싫어요? 그만할까?”

아냐, , 아냐, 더 해 줘, 서월, !”

서월은 제 허리를 감싸고 있던 이루의 발목을 쥐고 제 어깨 위로 올렸다. 제 것을 더 깊숙이 박아넣기 위함이었고,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지 고개를 잔뜩 뒤로 젖힌 이루의 입에서 엉망진창으로 신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루가이루가 원하면 더 해줘야죠.”

서월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허리를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랫배에 이루의 뜨겁게 달아오른 페니스가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자극적이라니까, 이루는. 서월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이루의 입술을 찾았다. 이루의 팔이 서월의 머리를 껴안듯 끌어당겼고, 두 사람은 호흡을 쏟아내며 입을 맞췄다.

 

*

 

어땠어요?”

솔직히 말하면, 평소랑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어.”

이루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역시 S자 결장을 개발하는 건 무리라니까. 그러나 서월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루는 참을성 있게 서월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잠시간의 침묵 뒤에, 서월의 질문이 이어졌다.

, 잠시만요 이루.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했죠?”

한두 번도 아니고. 딱히 세려고 노력한 적도 없어서.”

이미 개발된 거 아니에요?”

? 이루는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서월을 바라보았다. 이미 개발됐다고? S자 결장이?

안 되겠다. 한 번 더 해서 실험해 봐야겠어요.”

잠깐, 잠깐, 잠깐.”

이루는 손을 뻗어 다시 제게로 달려드는 서월을 제지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니, 이게 진짜로 가능한 건가? 서월의 의문스러운 표정에 이루는 얼른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나 조금 충격받아서 그래.”

뭐가요?”

이미 그렇게 됐다는 게.”

그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인가요.”

서월은 빙그레 웃으며 이루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는 몸을 다시 뒤로 물리기 전에, 이루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좋으면 끝 아니에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루는 그렇게 말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 S자 결장이고 뭐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아예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서월의 말대로 확실히 섹스라는 건 좋으면 끝인 것이니까.

그러면 자, 얼른 한 번 더 해요. 나 확인하고 싶으니까.”

어떻게 확인할 건데?”

글세, 이루가 좋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뭐야, 그런 거라면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이루랑 한 번 더 하고 싶어서 한 말인데, 안 되나요?”

안될 게 어디 있겠어. 이루는 그렇게 말하며 서월을 끌어당겨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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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모 생일 축전으로 쓰려던 글

 

 

이제는.

 

Y A G I

 

 

 

  1

 

 

너는 태어난 걸 후회하지 않아?”

요모의 말에 우타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시선을 요모에게 돌렸다. 그런 말을 해놓고 요모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타는 반쯤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곤 요모를 바라보고 누웠다. 요모는 눈을 내리깔곤 나른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데?”

너라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후회라. 우타는 흐린 시선을 천장의 어딘가에 두었다. 요모는 참을성 있게 우타의 다음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염색한 것이 분명한, 우타의 노란빛 머리카락이 그의 어깨 위에서 한 번 흔들렸다가 가라앉았다.

별로. 후회라거나,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래.”

질문에 비해 대답은 꽤 담백했다. 우타는 호기심이 담뿍 묻은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 다시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우타를 대했지만 으레 있는 일이기에 우타도 그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도리어 우타는 그 굳을 얼굴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우타를 제외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표정이란 게 존재하는 얼굴이었으니까.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벗은 어깨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요모는 그 손의 온도에 살짝 몸을 움츠리면서도 그의 손을 받아내었다.

우타는 사뭇 다정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말을 건넸다.

렌지는 후회해?”

모르겠어.”

즉답이었다. 확실히 요모의 속에서 많이 숙성된 질문인 모양이었다. 태어난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 요모는 그 질문을 제 속에서 얼마나 굴린 후에 물어본 것일까.

어떻든, 렌지 생일 때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생일이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괜히 생각하게 되잖아. 우타는 요모의 말에 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못 하게 해줄까?”

뭐야.”

생일 선물.”

우타는 그렇게 말하며 요모의 위에 올라탔다. 그의 따뜻한 입술이 요모의 몸 곳곳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밀어내지 않았다. 확실히, 아무 생각 안 들게 만들어 주긴 하지. 우타의 손끝이 제 허리를 쓸어내리는 것을 느끼며 요모는 우타의 목을 껴안았다.

생일이라고 해서 평소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기분의 차이, 같은 애매한 말도 없었다. 그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는 느낌, 그리고 그것을 채우는 낯설지 않은 욕망. 그런 것들만이 요모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우타의 마른 어깨를 껴안고 모든 것을 쏟아냈을 때, 요모의 머릿속엔 다시 한 번 더 그 질문이 떠올랐다. 너는, 과연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2

 

예전에 그런 말 했던 거 기억나?”

지금의 우타는 담배 같은 것은 피우지 않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짧은 일탈이라고 했던가. 대신에 그는 침대에 엎드려 천장을 바라보고 새된 숨을 내뱉고 있는 요모를 바라보았다. 우타의 질문에 요모는 눈동자만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우타는 싱긋 웃어보였다. 뭐가 그렇게 마냥 좋은 건지. 다음부턴 포지션을 바꾸자고 해야겠어. 요모는 우타에게 몇 번이나 물려 약간은 쓰라린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떤 말?”

태어난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

요모는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뱉으며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요모의 기억이 맞다면 그때도 자신의 생일이었을 것이었다.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손끝과 자신의 손끝을 맞대었다.

지금은 어때?”

글쎄…….”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뜻일까. 우타는 요모에게로 몸을 가까이 붙이며 말했다.

내가 있는데도 후회가 돼?”

무슨 상관이야, 그건.”

뻣뻣하다니까, 렌지는.”

우타의 목소리는 나긋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다지 불만스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우타가 있으면, 된 건가. 요모는 포지션을 바꾸지는 말도 잊고 제 위로 타고올라오는 우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요모는 자연스레 제게 입을 맞추려 드는 우타의 얼굴을 밀어내었다. 우타는 한쪽 눈썹을 밀어올리며 의문스러움을 표했다. 요모의 표정은 어딘가 굳어있었다. 싫은건가, 하고 우타가 생각할 때, 요모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지며 신중하나 아주 무겁지는 않은 말을 뱉어냈다.

후회하지 않아.”

그럼 됐어.”

요모의 말에 우타가 픽 웃었다. 곧이어 우타의 입술이 요모의 입술에 닿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목덜미를 껴안으며, 후회하지 않는다는 요모의 말을 되뇌고 있었다.정말로 그럼 됐다. 렌지 네가 더는 살아남은 걸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걸로 우타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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